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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다 Dec 22. 2021

세계를 뒤흔들었던 버블 붕괴의 역사 <근대편>

세계를 뒤흔들었던 버블 붕괴의 역사 <근대편>
세계를 뒤흔들었던 버블 붕괴의 역사 <현대편>


최근 워렌 버핏과 함께 세계경제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찰리 멍거는 "지금의 자본시장의 버블은 매우 심각하며,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 때보다 심하다"라고 했어요. 그의 말 한마디에 투자 심리는 위축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금리 인상, 부동산 가격 하락 등이 버블 붕괴의 징조는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증시에 버블이 있는지 가장 쉽게 확인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버핏 지수이에요. 각국 증시 전체 시가총액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누어 계산하는데요. 100%가 넘으면 주식에 버블이 있는 것으로 추측해요. 실제로 지난 11월 기준 한국은 121% 미국은 210%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어요.


해당 분야에 전문가라도 100%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그래서 과거를 되짚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해요. 그럼 지금까지 어떤 버블 붕괴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집보다 튤립이 더 비싸요, 튤립 버블(1634년)


튤립 버블은 세계 최초의 버블로 기록되고 있어요.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예쁜 모양을 가진 튤립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어요. 지금 인기 많은 한정판 신발이 1,000만원 이상 거래되듯이 더욱 희귀한 품종의 튤립의 가격은 수십 배 이상 비싼 가격에 판매가 되었어요. 그래서 튤립에 투자하면 무조건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나며 튤립 사재기 현상이 발생했어요.

사람들은 집과 땅을 팔아 튤립을 샀으며 심지어 아직 피지도 않은 튤립에 가격을 매겨 사고파는 선물거래까지 등장했어요. 1630년대 중반에는 튤립 뿌리 하나가 8만7천유로(약 1억 6천만원)까지 치솟았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가격이죠? 하지만 튤립의 버블은 튤립이 자산으로 가치가 없다는 네덜란드의 법원 판결 이후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이를 계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파산했고 경제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어요.




중력은 계산할 수 있었어도 주식은 계산할 수 없었다, 남해회사 주식 버블(1720년)


첫 버블 붕괴 이후 100년의 시간이 지나 영국에서 버블이 발생했어요. 이 버블의 장본인은 <남해회사>인데요. <남해회사>는 영국 국가의 허가를 받아 설립된 무역회사로, 남아메리카와 카리브 해역에 노예무역을 독점하고 영국 정부의 국채를 매입하여 돈을 벌었어요. 주식을 국채로 교환해주는 방식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고 주가가 치솟게 되자 투자자들이 몰려들었어요.

일단 주식을 사기만 하면 돈이 복사가 되니 너도나도 돈을 들고 와 <남해회사> 주식을 샀어요. 남해회사의 주가는 6개월 동안 10배 상승하여 1720년 1월 100파운드인 주가는 같은 해 6월 1050파운드까지 치솟아요.

<남해회사>의 버블이 붕괴된 계기는 정부의 규제인데요. <남해회사>와 유사한 형태의 회사들이 무허가로 증가하며 여러 군데에서 피해가 속출하자 정부가 나서서 규제법을 만들었어요. 결국 시장은 안정을 되찾았으나 <남해회사>의 주가는 폭락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피해를 입게 되었고 이 중에서 물리학의 아버지인 아이작 뉴턴 또한 <남해회사>에 투자 후 수십억 원의 피해를 보았다고 해요. 그리고 이런 말을 남겼어요. "중력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측정할 수 없다."

<남해회사> 주식 버블 사태 이후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사업은 회계감사를 필수적으로 받게 되었고 이는 공인회계의 시초가 되었다고 하네요.




프랑스혁명의 원인이 된 미시시피 회사 주식 버블(1720년)


1720년 당시 프랑스는 태양왕 루이 14세가 집권하며 식민지 정복에 적극적이었어요. 당시 루이지애나 주이자 지금의 미국 영토인 미시시피 강 주변도 정복에 나서며 이 주변을 개발하기 위해 <미시시피 회사>를 설립했어요. 루이 14세가 흥청망청 돈을 쓰자 프랑스 정부는 재정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고 <미시시피 회사>에 나라의 부채를 양도하는 대신 미시시피 강 주변의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양도했어요.

당시 미시시피 강 주변에 엄청난 양의 금이 매장되어 있다는 소문이 프랑스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던 <미시시피 회사>의 주식은 40배 이상 치솟기 시작했어요. 채권을 보유한 사람들은 <미시시피 회사> 주식으로 바꾸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투자할 수 있도록 <미시시피 회사>에서 지폐를 찍어내며 대출을 해주었어요.


경기가 심각하게 과열되자 사람들은 의심하기 시작했고 결국 엄청난 금이 매장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주가는 폭락했어요. 무작위로 찍어내던 지폐는 가치가 절하되어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어요.


<미시시피 회사> 버블 붕괴로 프랑스에게 루이지애나 땅은 가치가 없는 땅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결국 그 미국에서 판매하는 결과를 초래했어요. 또한 파탄난 재정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물가 안정과 세금 제도 개혁을 시도했지만 귀족들의 반대로 실패했어요. 결국 프랑스혁명의 원인이 되고 말아요.




최초의 기술 버블, 영국 철도 버블(1845년)


1825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철도가 개통되었어요. 말과 마차가 다니던 시대에 지치지 않는 철도라는 이동수단은 획기적이었기 때문에 임팩트가 강했습니다. 사람들은 철도 산업에 무조건 낙관적으로 바라보며 투자가 아닌 투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은행들은 철도회사에 저렴한 금리로 대출을 내주었고, 영국 전역에는 철도 회사 주식을 매매하는 거래소가 곳곳에 설치되었어요. 당시 영국 국민의 총생산액이 5억 5천만 파운드인데 철도 회사의 빚이 6억 파운드였다고 하니 1년 동안 영국 국민들이 번 돈이 모두 철도회사 주식 투자에 이용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었어요.

문제는 철도 건설이 시작되면서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철도 노선 건설 계획에 차질이 발생하며 주가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이를 계기로 대금의 10%만 우선 지급하고 나머지는 분할 납부하기로 한 투자자들이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식을 팔기 시작하며 주가는 결국 반토막이 되었어요. 


영국 철도 버블은 최초의 기술 버블로 이전 버블과는 달리 유형의 상품에 대한 버블이었기 때문에 당시 투자금은 결과적으로 영국 철도 산업의 눈부신 성장을 이끌게 되었죠. 철도 버블로 계획했던 철도 사업의 3분의 2만 완성될 수 있었지만 현재 영국 철도길이가 1만8천km 인데 영국 철도 버블 시절인 1844 ~ 1846년 사이에 1만km의 철도가 건설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울 따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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