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카너먼
'제한된 합리성.' 경영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개념이다. 이 개념은 모든 선택지를 고려하여 최선의 선택을 내리려는 시도는 애당초 인간은 모든 선택지를 고려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제한된 선에서만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뜻을 의미한다. 다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은 자신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올바른 판단과 사고를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는 인간에게 반박할 수 없는 통계적 자료와 수없이 많은 연구 및 조사 결과를 통해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합리적이지도 뛰어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카너먼에 의하면 인간은 절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일관되고 합리적일 수 없다. 인간이 이런 합리성의 한계를 가지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인간에게 상반된 성격과 기능을 가진 두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카너먼이 이름 붙인 시스템 1과 시스템 2는 한마디로 직관과 논리이다. 직관과 논리는 가끔 상호 작용하며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직관과 논리는 대립하고 논리는 직관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직관은 빠르며 논리는 느리다. 인간은 직관을 선호하며 논리적인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 현상은 모든 인류에게서 발생하며 교육 수준이나 직업, 사회적 지위에 영향받지 않는다. 인간은 직관적 판단에 의존하여 대부분의 판단을 내리며 논리적으로 따지는 것을 선천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에 카너먼은 인간은 절대로 경제학(이콘)처럼 합리적이며 정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심리적 현상들, 예를 들어 후광효과, 속단, 회상 용이성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생각에 관한 생각>은 독자들을 겸손하게 만드는 책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페이지를 넘기며 독자들이 발견하는 사실 이라곤 자신들이 얼마나 부족하고 결점 투성이이며 과신 착각을 일삼는 존재인지다. 책의 두께와 내용을 고려했을 때 독자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열심히 지식을 쌓아왔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고려했을 때 다수의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몰랐던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실망과 두려움, 슬픔 등 다소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논리, 판단능력과 기억, 경험과 지혜 등 자신이 생각하기에 올바른 판단과 사고를 하는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삶을 계획하고, 기억해내고, 판단을 하며 최선의 아웃풋을 만들어 내기 위한 일처리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카너먼에 의하면 실제로 그들이 하는 것이라곤 그저 생각하기 편한 대로 생각하기, 편협한 경험과 기억에 기반하여 올바르지 못한 선택을 내리기, 그때그때 다른 선택을 내리기, 엉터리 기억과 경험에 의존하여 엉터리 결론을 내리기 뿐이다.
이런 엉터리 결론은 때때로 인류에게 큰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올바르지 못한 판단과 선택은 큰 잠재적 위험성을 가진다. 그 판단과 선택이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이 클수록 리스크의 규모 역시 커진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인간은 지속적으로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내리기 위해 학습해 왔으며 사회 각계각층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활용해 판단과 선택을 내리는 사람들은 주로 경험이 많고 현명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이 되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는 올바르지 못한 판단이 얼마큼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리먼브라더스,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미국의 유수 투자은행업계에서 일을 했던 금융인들은 당시 미국의 경제전망을 실제보다 훨씬 더 좋게 판단했다. 미국의 투자은행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우수한 금융지식과 능력을 갖추었다고 판단되었으며 상위 1%로 인정받는 엘리트 그룹이었다. 그들은 많은 금융지식과 업계에서의 경험, 금융시장에 대한 축적된 노하우를 통해 자신들이 올바른 예측과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IT버블에 의해 미국의 부동산 시장이 잠시 붐을 일으킨 것뿐이었으며 머지않아 버블이 빠지면서 부동산 시장이 위축될 것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예측하고 있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과신한 채 미국 내 부동산 시장은 훨씬 더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뿐만 아니라 이 기회를 활용하여 은행으로부터 주택담보대출채권을 사들여 이를 파생금융상품으로 만들어 전 세계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유치,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시장 버블이 급격히 빠지면서 경기가 침체되었고, 부동산 시장이 악화되었으며 자연스레 주택담보대출채권을 기반으로 금융상품을 만들어 판매한 투자은행들은 그 빚을 고스란히 떠 앉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전 세계에 2008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막강한 피해를 입히게 된다. 나는 금융인들의 금융능력 착각이 이런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일반인들과 다름없는 금융 예측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지식과 능력을 과신한 채 올바르지 못한 선택을 한 결과로 전 세계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것이다.
카너먼은 실제로 통계적으로 금융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과 아무런 금융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 사이에 금융시장의 미래 전망을 예측하는 능력이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 사례는 많은 지식을 쌓은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더 많이 착각하게 되어 비현실적으로 자신만만해진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금융위기의 결과를 보면 직관에 의존하여 온전히 합리적인 선택을 내릴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힘이 빠진다. 아무리 공부하고 지식을 쌓아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하려고 시도한다고 해도 마치 인간은 절대로 온전히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할 것만 같다는 일종의 암시처럼 들린다. 마치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존재, 이를테면 외계행성에서 온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한 족속들이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다. 온 인생을 바둑에 투자한 이세돌에게 형체도 없는 알파고라는 존재가 승리를 거머쥔 것처럼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아무리 공부하고 노력해도 절대로 인간은 완벽한 선택을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안주하며 살아가야 할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렇지 않다. 인류는 애초에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모든 사고와 판단이 완벽할 수 없고 앞으로도 100% 완벽한 판단을 내리기는 힘들다. 하지만 인류는 과거부터 학습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과거보다 지속적으로 성장해 온 지구상의 유일한 생명체이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방대한 양의 자료를 컴퓨터로 검색하여 기업 프로젝트의 모든 가능성을 검색하고 분석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핸드폰을 통해 이메일을 보내고 자료를 검색하고 사진을 전송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인류는 과거로부터 자신의 약점인 제한된 합리성, 방대한 양의 자료를 찾아내는 데 필요한 체력과 능력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인간의 부족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이 쓰인 이유 역시 인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카너먼은 학습을 통해, 그리고 자료를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며 이를 통해 몰랐던 사실을 인지하고 과거로부터 성장할 수 있다.
인간이 이콘처럼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받아들여도 이콘을 만들어낸 존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통계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통계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었으며 여러 가지 통계 이론과 도구를 사용하여 부족한 판단과 사고에 참고, 자신들의 결점을 보완한다. 인간은 복잡한 계산을 암산으로 풀어낼 수 없지만 이를 짧은 시간에 풀어낼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 자신들의 결점을 보완한다. 즉, 인간은 자신들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을 도와줄 여러 가지 공식과 이론, 컴퓨터와 기술들을 개발해 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은 인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다 자세히, 보다 면밀히 조사하여 각각의 부족함에 대해 심리학적인 명칭을 붙이고 이를 통계학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연구결과일 뿐이다. 이 연구결과를 통해 인류는 자신들의 부족함을 보다 자세히 마주하게 되었고 그 부족함의 원인에 대해서 보다 세밀히 알게 되었으며 이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인류가 앞으로 성장해 나가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은 철학적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재빨리 삶에 대해 점수를 매기는 실험을 진행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일생동안 경험했던 중요한 경험이나 기억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사건들로 자신의 삶을 평가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머리를 쓰기 싫어하는 인간의 직관적 사고 본능 때문이다. 찬물에 손 넣기 실험을 통해 인간의 기억은 절대적인 효용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서 느꼈던 쾌락이나 고통의 정점(climax) 혹은 경험의 강도에 의해 좋은 기억 혹은 나쁜 기억으로 자리 잡는 것을 보면 허무한 감정마저 든다. 내가 지금 기억하는 그때의 경험이 잘못된 것인가? 그때 그 상황을 온전히 기억한다고 믿었는데 단지 내가 믿고 싶은 대로,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고 있다고? 기억이 과거를 대변하는 인간 삶 속에서 이는 꽤 중요한 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기억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이고 과거를 온전히 기억해 낼 수 없다는 사실은 자신의 과거를,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맞닥뜨렸을 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면 결국 그 기준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만약 그 기억이 온전하지 못하다면, 그저 내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할 뿐이라면 과연 그 기억은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인간이 자신들의 기억을 객관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동일한 현상 혹은 진술에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특성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축구에서 졌다'와 '일본이 축구에서 이겼다'는 같은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한국인은 나쁜 감정을 가지고 이 사실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큰 반면 일본인은 행복에 겨워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축구에서 승리한 날이 그들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만큼 인상적으로 기억에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우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같은 경험이나 사실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인간은 과거 똑같이 발생한 경험을 두고서도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각기 다른 기억을 가지게 된다.
인간관계에서 기억에 대한 차이 문제는 중요한 이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에서 갈등은 땔레야 땔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다투는 이유는 나의 입장과 상대방의 입장에서 간극이 발생하기 때문인데, 대개 그 입장 차이는 과거 상대방의 언행에서 비롯된다. 내가 상대방의 언행을 기억하는 것과 상대방이 나의 언행을 기억하는 것에 차이가 발생한다면, 그 기억의 차이에 의해서 추후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카너먼에 차가운 물에서 손 빼기 실험을 포함한 여러 가지 실험에 의해서 우리는 이미 인간의 기억은 어떤 현상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대로, 느꼈던 경험의 강도에 의해서 기억하게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나와 상대방이 같은 현상을 경험했을 때 느끼는 경험의 강도는 제각각일 것이며, 이는 두 사람이 어떤 현상을 기억해내는데 차이점을 유발한다. 이는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한 사람의 언행이 다르게 기억될 수 있다는 뜻이며 바로 이 기억의 차이에서 입장의 차이가 발생하고 입장의 차이는 갈등으로 이어진다. 인간이라면 모두 제각각 경험을 기억한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인간은 평생 갈등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생각하고 분석할 수 있는 인간 심리에 대해 다루고 있다. 책의 대부분은 인간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실험과 조사, 통계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심리적 현상에 대해서 독자는 심리학, 경제학, 경영학, 인문학을 포함한 여러 가지 학문과 연관 지어 새로운 관점에서 인간 행동의 동기를 파악할 수 있고 이를 적용하여 실생활에서 현재보다 더 온전한 판단과 선택을 내리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커너먼은 인간의 부족함을 논리적으로 증명해 내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인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인간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사실, 인간이 나약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은 인간이 지금까지 학습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해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커너먼이 제시한 여러 가지 인간의 본능적 성향을 이해했으니 이제 우리가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어떻게 보완해 나가야 하는지를 찾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