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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쌍 Feb 06. 2022

엄마 오늘 일찍 와!

번아웃 엄마와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아들은 요즘 부쩍 A4 종이를 꺼내놓고 논다.

30cm 자를 대고 연필로 선을 그리기도 하고, 색연필로 정체모를 큰 동그라미 작은 동그라미가 연결되는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한다. 아이에게서 엄마 아빠를 닮은 모습을 발견하는 뜻밖의 놀라움은 육아하는 기쁨 그 첫 번째이지 않을까. 놀아주지 않아도 조르지 않고 그 스스로 혼자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레고를 조립하고 집중하 완성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요즘엔 정말이지 엽다.


한글을 배우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휴대폰을 사줬더니 제페토는 엄마보다 훨씬 더 빠르게 적응하고 응용하여  가르쳐준다. 모르면 만 5세 아이에게라도 물어서 트렌드에 발맞춰 가야 하는 법...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녀석이


"공부는 절대 싫어. 공부는 학교 가서 하면 되잖아"


라고 하기에, 싫으면 하지 말라고 애써 쿨하게 대처했다. 대신 한 가지만 잘하라고 말해줬다. 경제활동이 가능한 딱 한 가지만 잘하면 된다고, 모든 걸 다 잘하지 않아도 된다고 대답해줬다. 또래들보다 2년 먼저 한글을 깨쳤다고 성인이 되어 인생 2년을 더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픈 개인사를 통해 깨달았 까닭이다.


결국 우리 집 아이는 마음껏 논다. 태권도, 수영, 농구, 야구 사교육이란 온통 운동하는 것일 뿐, 아이에게 공부란 '학교 가면 다 하는 것'이다.


종이에 어몽어스 그림을 그려줬다. 그리고 트레이싱지를 대고 펜으로 베껴보라 하고 함께 색을 칠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 이런게 육아라면 누워서 떡먹듯이 하겠다 싶었다.


오랜만에 일찍 저녁을 먹고 씻고, 거실 바닥에 엎드려  함께 그림을 그렸다. 다 그린 그림을 아이 스스로 큐레이터처럼 그림에 대해 설명하는 동영상도 찍어보고 놀이가 입체적으로 좀 더 진화되는 느낌이랄까. 늘 시간에 쫓기듯 살아가고 있다 보니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해 미안한 마음뿐이었데 엄마와 함께하는 찰나의 놀이에 아이는 까르르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매일 아침 자신의 휴대폰과 애착 인형을 일부러 엄마 가방에 넣으면서


"엄마 오늘 일찍 와"


를 말는 아이다. 아이 나름대로 엄마의 이른 귀가를 위해 가장 아끼는 물건을 담보로 걸고 리를 써서 노력는 것이다.  모습을 보며 애써 무심하게 '응, 알았어!'를 말하는 엄마 마음은 무겁다. 이 약속을 지키고 싶지만 지키지 못할 확률이 더더 높다는 것을 너무 잘 아는 생활이니까.


매일 무엇에 그리 바쁜지 시간을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쫓겨가는 생활에 지친 나머지 Burn out이 심하게 왔나 보다. 더 늦기 전에 아이와 함께 또는 오롯이 혼자서만 하는 재충전이 필요한 것 같다. 아이가 내년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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