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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쌍 May 08. 2022

나는 열심히 살기 싫어졌다

인테리어 & 리모델링 업체를 대하는 편견에 관하여


나라고 처음부터 강직하고
곧은 성격은 아니었다.


아마도 여섯 살이었거나 일곱 살 즈음이었을까?

어쩌면 여덟 살 초등학생 때였는지도 모르겠다.


과자 사 먹고 싶은데, 돈은 없었을 테다. 

외출하고 벗어놓은 아빠 바지 주머니에서 동전을 몇 개 꺼내와 메이커 없는 과자를 사 먹었더랬다.


그런 대담한 행동을 하기까지 공범(!)으로는 두어 살 많은 친척 언니였을 게다. 그렇게 몇 번 과자를 사다 먹다가 아빠에게 들켜 야단을 맞았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혼나니 무섭다'가 아니라 '너무 부끄럽다'였다.


아빠 앞에서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던 일곱~ 여덟 살의 꼬마는 그 뒤로는 누구의 물건이라도 내 것이 아니면 손도 안대는 강박증(?) 비슷한 것이 생겼더랬다.

남의 물건이 탐날 만큼 좋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부럽다는 감정이 들지 않다 보니 내 것이 아닌 건 그냥 관심조차 없 것이었다.


그런 내가 '청렴'을 강조하는 모 공기업에서 오랜 기간 일을 하면서 큰돈의 숫자가 오가는 일을 할 때마다 더욱더 '청렴해지게' 된 것은 연했다. 조직에서 길러진 청렴의 가치는 사회에 나왔을 때, 창업을 하면서 나름대로의 확고한 기준으로 자리했다.

 

나의 운영방향은 한 가지 철칙이 있었다.

그건 바로 리모델링 공사비의 100% 금액을 받고 일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나를 믿고 맡겨준다는 고객과의 신뢰를  바라는 바였고, 그렇게 신뢰를 보여주는 고객에게 그만큼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대체되었다. 그건 진심이었다. 따라서 한 번 금액이 결정되고, 100% 결제가 이루어진 이상 현장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소한 추가 비용은 내가 부담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설명에 나와 계약하는 모든 고객들은 100% 선금을 지불했다. 인테리어 & 리모델링하면서 선금 100% 내고한다니 대한민국 최초라는 말도 들어봤고, 내 영업력이 대단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인테리어 업자를 믿느냐며, 객들 주변에서는 다들 미쳤다고 했다지만 나와 긴 시간 상담을 하고, 설계를 보고 논의하고 결정한 고객들은 나를 믿었다. 그리고 100% 선결제를 당당히 외칠 만큼 자신감 있는 내 모습에 '잘하겠지,  더 믿음이 간다' 고 했다.


그만큼 책임감이 커졌고, 현장에 대한 나의 부담도 커졌지만 중도금을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나, 잔금을 걱정하며 치사한 실랑이할 필요는 없으니 현장에 집중할 수 있어 업무 효율성은 더 좋았다. 가 책임지고 끝까지 최선의 마감을 위해 마무리하고 약속을 지켜주면 되니까!


문제는 내가 하는 일이 더 이상 청렴을 강조하는 공기업 조직이 아니라 인테리어 & 리모델링을 하는 업체라는 거였다. 내가 아무리 열과 성의를 다해 내 집보다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해도 말이다...


현장에서 늘 터지는 이른바 철거 후 변수들... 철거를 해 봐야 확인되는 여러 상황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리모델링의 묘미다. 마감 퀄리티에 중요한건 직접 시공한다.



 '인식'

 사람들의 인식, 인테리어 업자는 사기꾼, 도둑놈이라고 색안경을 쓰고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이라는 것 말이다.   


주택이나 상가 인테리어나 리모델링은 가방이나 가전처럼 완성된 기성품을 파는 게 아니다. 처음부터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기계로 찍어내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보니 최선을 다해한다고 해도 도배 끝부분이, 마감 끝이 매끄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자의 기준으로 따지고 보면 그건 완벽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들의 소중한 비용과 공간으로 사기를 친다거나 장난을 친 게 아니다. 문제가 있으면 방법을 찾아 해결하면 되고, 그만큼 비용을 들여 다시 하는 게 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실랑이를 하기 싫어 내 눈에도 아닌 건 느 업자들처럼 말로 넘어가는 게 니라 바로 인정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왔다.


그런데 아주 작은 부분이 잘못되어도 마치 인테리어 사장에게 옳다구나, 꼬투리 하나 잡았다 싶어 군림하려 드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항상 죄인이 되는 게 한편 억울하기도 했다. 우리 집도, 우리 사무실조차도 마감을 가만히 살펴보면 완벽한 것은 없다. 사람의 손으로 하는 일을 100% 완벽할 수 없다.


화내거나 따지지 말자. 눈에 보이건 다 똑같다. 고객 눈에는 문제가 보이는데 인테리어 사장 눈에는 안 보일까. 아닌 건 아니 거고 바꾸면 된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해결력이 인테리어 & 리모델링 일의 88% 비중을 차지한다.




강남 건물주 강의를 진행하며, 만나는 사람들 중에 대수선과 같은 리모델링이 필요한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은 여기저기 견적을 받아보는 일을 너무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하물며 인테리어나 리모델링이야 견적서가 얼마나 쉬워 보이겠는가. 그런데 그건 모든 게 업체의 노동력이고 즉, 돈이고 시간이다. 설계에 따라, 디자인에 따라, 자재의 종류에 땨라 모든 똑같은 견적서는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걸 공짜로 받으려 하는가.


건축설계는 설계비를 받고 시작한다. 변호사도 수임료를 받고 시작한다. 공짜라는 건 없다. 런데 인테리어 & 리모델링은 이 모든 게 무료다. 누가 왜 무료 실측, 무료상담을 만들어 놓았는가. 경쟁이 치열해지니 무료 실측과 무료 설계, 무료견적 상담을 해 놓고 더 값을 올려 받지는 않았던가.


초보창업자였던 지금까지 나는 남들 다 그렇게 한다고 하니까 실측 문의가 들어오면, 현장 방문하여 실측하고 컨설팅하고, 설계하고 견적서를 쓰기까지 꾸벅꾸벅 졸면서, 잠을 포기하고서라도 했다. 매일같이 와서 설계 여기를 수정해 달라 저기를 수정해 달라면서 일주일 기간이 넘게 사람 진을 빼가면서 빨리 견적서 달라고 닦달하던 사람들도 있었.

나는 그들이 계약을 할 줄 알고 한없이 끌려다녔다. 그럼 그들은 계약을 했을까?


그러나 정작 그런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설계했는지 궁금하고, 그걸 가져다 싼 곳에 맡기려 가격을 비교하고 싶어서였다는걸, 견적서를 받고 나면 전화 한 통 없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경험했다. 일요일에 점심밥 먹다가도 지금 당장 사무실 문 앞이라는 말에 달려 나가 4시간, 6시간 동안 상담을 한 적도 있었다. 탈진되어 집에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힘들었다.


'마치 할 것처럼'


그동안 미친 듯이 밤을 새우면서 일 년 반 동안 그린 설계도면만 오백 여개에 육박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열심히 남 좋은 일을 해왔구나... 생각했다. 무료로 컨설팅받고, 무료로 견적서 받고 이게 다 누군가의 시간과 에너지와 노력 재능을 갈아 넣어서 만드는 건데 왜 무료견적을 너무나 당당하게 요구하는 걸까. 성의없이 전화로 견적서를 보내달라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제 열심히 살기 싫어졌다


이제는 계약금을 내지 않으면 설계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공짜로 도면을 그리고, 밤을 새워서 견적서까지 뽑아주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인테리어업에 종사하는 이들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는 기본적인 불신이 있는 데다 더더 따지는 분들이 있다. 나는 그런 분들에게는 절대로 견적서를 주지 않는다. 이미 시작 전부터 이미 불신으로, 불만으로 가득한 이들과의 관계에서는 힘든 현장을 마무리하고 나서도 일에 대한 보상은 커녕 보람도 성취도 없는 까닭이다.


나는 열심히 살기 싫어져서 말이다.

내가 밤새 고민해서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완성한 설계를 보고 싶으면 설계비용을 내야 한다고 정했다.

리모델링 컨설턴트로 활동을 시작해도 마찬가지다. 한 번 계약한 이상 끝까지 완벽하게 책임을 지고 전적으로 맡아서 시공업체를 감리하기까지는 고객이 나에게 보여주는 신뢰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뭐 어쩌겠는가...

더 이상 밤새서 남 좋은 일 열심히 하고 싶지 않아서이니까,

내 시간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도 없는 업계 관행에 나는 더 이상 희생되고 싶지 않아 졌을 뿐이다.


나의 가치를 알고, 알아주고, 그리고 믿고 선택해 주는 분에게 나의 시간과 노력을 진심으로 쓰고 싶을 뿐이다.


좀 덜 열심히 살면 어때.
돈 덜 벌고 시간을 벌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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