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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쌍 Jun 29. 2022

여름에 조심해야 할 냉방병을 아시나요?



"언니, 안 더워? 아휴~ 이렇게 더운데 에어컨도 안 틀고 있어?"


집에 놀러 온 사촌동생은 덥다며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티셔츠를 펄럭거리며 서 있다.

7세 아들과 나는 이 정도 실내온도는 덥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을 보면 우리가 이 온도에 익숙해지기는 했는가 보다 생각했다.


우리나라 여름이 푹푹 찌기로 유명한 것은 사실이다. 동남아보다 더 동남아스러워진 초열대성 기후, 더 이상 온대기후가 아니라 스콜성 호우로 바뀌고 있다는 이상기온은 더 이상 낯설지도 않은 날씨정보다.  


습도가 높은 더운 여름 날씨는 누구든 불쾌지수를 상승시키는 것은 맞다. 그건 나도 아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우리는 불편함을 조금 더 참아내는 것일 뿐!

전기세를 아끼려 하는 자리고비 정신이 아니다. 사실 내가 그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2011년 12월 말, 머리가 깨질 듯 아픈 증세가 벌써 2개월을 넘어섰다.

10월에 아프리카 근무지로 왔는데,  11월에 말라리아에 걸렸다.


"Madame, vous avez la Malaria!"

("말라리아에 걸리셨어용~~")


극심한 두통과 근육통으로 병원을 찾아 피검사를 하자마자 말라리아에 걸렸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조심한다고 얼마나 유난을 떨었는데 아... 나 이제 죽나 생각했다. 독일에서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강박적으로 약국에서 주워 담은 것들이 모기퇴치제 등등 비상약품이었는데 결국 걸려버린 것이다.


약을 주섬주섬 받아 들고 사무실에 전화로 말라리아 진단을 받았음을 알리고는 곧장 집으로 왔다. 일단 누웠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는다. 죽기 전게 실컷 먹고 싶은 것이나 먹자고 결심하고 찾은 것은 초콜릿이었다. 우걱우걱 초콜릿의 달달함을 느끼며 비통함을 삼켰다. 여기저기서 소식을 듣고 위로 전화와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죽기 직전인데 만사가 귀찮아졌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근육통은 점차 덜해졌지만 머리를 깨는듯한 두통은 여전했다. 몸의 고통을 잘 이겨내는 편이라 일주일 후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벨기에인 의사는 머리를 갸우뚱하며 말라리아는 치료가 끝났는데, 두통이 여전하다면 아마도 레지오넬라증이 의심된다며 다시 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집에 오자마자 에어컨 필터를 청소했다. 레지오넬라증은 에어컨 물통과 필터와 같은 곳에서 서식하는 세균이라 했다. 그리고 처방받은 약을 열심히 먹었지만 말라리아와 함께 시작된 두통은 한 달이 넘고 두 달째 지속되었다. 너무 아플 땐 무식한 방법으로 벽에 머리를 쿵쿵 부딪혀서 충격으로 통증을 잊으려 하기도 했다.


결국 한국으로 병가를 내고 돌아와 검사를 시작했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할 때는 반팔에 반바지였는데, 한국은 연말 한파에 옷깃을 여며야 했다. 호호 입김을 불며 짐을 챙겨 입원 수속을 밟았다. 입원하여 MRI를 찍고 정밀검사를 했다.


왼쪽 뇌가 부운 것 같다고 해서 나 이제 진짜 죽나 보다 하며 펑펑 울었던 셋째 날, 불꽃처럼 살다 가라며 농담하던 친구, 이틀 후 왼쪽 뇌실이 오른쪽보다 선척적 기형으로 큰 것이라고 결론 났지만, 어쨌든 최종 진단은 [상세불명의 두통]이었다. 한국에 오면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말라리아 후유증 또는 여전히 미스터리 두통으로 남았다.


2주 치료가 끝나갈 즈음, 아프리카에서 사업차 자주 다니시던 한 업체 대표님이 잠시 들러 병문안을 오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하시는 말씀이


"혹시 냉방병 아니야?"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마치 박하사탕이라도 하나 들어온 것처럼 시원해졌다.

아프리카 날씨가 덥다며 에어컨을 얼마나 틀어댔던가, 온 방마다 에어컨을 틀어놓는 게 일상이었던 그 짧은 아프리카 생활을 돌이켜 보며 생활방식을 바꿔야겠다 결심했다.




아프리카로 다시 돌아온 이후 나는 에어컨을 직접 쐬는 일을 자제하고 잘 때는 거실에만 틀었으며, 타일 바닥에서 맨발로 지내던 생활을 바꾸고 슬리퍼를 신기 시작했다. 그리고 잘 때는 꼭 수면양말을 신었다.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홍삼을 먹고 수영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 가장 좋은 것은 실내온도를 2~3도 높인 것과 양말이었다. 양말을 신는 습관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한여름에도 꼭 양말을 신고 다니는 것은 나름대로 찾은 생존 방식이 되었다.


물론 그 상세불명의 두통은 금방 사라지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머리가 멍하고, 깨질듯한 통증으로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점차 줄어드는가 싶더니 약 6개월 후부터는 머리가 아프다는 생각을 잊고 살 수 있을 정도로 나아졌다. 그 당시 주위에서 말라리아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여러 지인들이 있었던 터라 말라리아 후유증으로만 여겼더라면 소위 냉방병이라고 말하는 이 어마어마한 두통은 해결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도 우리 집에서는 한여름 에어컨을 방 한 곳에만 설치하였고, 그곳에서 트는 6평 에어컨 한 대와 선풍기, 그리고 써큘레이터 하나로 한 여름을 난다. 물론 도심 한가운데 있는 집이 아닌 시골이라 도심 열대야가 없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차 안에서 운전을 할 때도 에어컨을 최소화하고, 장시간 운전할 때는 컸다가 창문을 열고를 반복한다. 이미 냉방병으로 엄청난 [상세불명의 두통]을 경험했던 나로서는 어지간한 더위는 참아내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하고 불편함을 조금 견디는 것을 선택할 것 같다.  




어제는 청담동 카페에서, 식당에서 여러 시간을 보내면서 모처럼 지인들을 만나 밤늦도록 담소를 나누었다. 너무나 시원하다 못해 추웠던 나머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두통과 구토가 나올 것만 같은 증세를 느꼈다. 혹시라도 여름철 원인을 모를 두통으로 고통받는 분들이라면, 아침에 일어나 머리가 지끈거린다면 에어컨 사용을 자제하며 실내온도를 조금 높여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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