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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쌍 Jul 21. 2022

인테리어 & 리모델링 사업하면서  실망한 이유

이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고서야...


오늘은 인테리어업을 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저야 뭐 초보자였던 상태로 인테리어 & 리모델링 업계로 들어와 보니 처음에는 뭐가 뭔지 몰랐지요. 이렇게 해야 되는가 보다 하고 무작정 닥치는 시작 했지요. 그런데 정신없이 몇 개월을 하다 보니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이게 맞은 것일까 고민하며 현실인식이 끝나니 결론은 기가 막히더군요. 그중에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무료 실측 & 무료설계 & 무료 견적 & 무료상담]이었습니다. 


직접 해 보니 바로 이 무료 서비스가 사람 잡는 일이더군요. 워낙 업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이렇게 무료 서비스 시장이 만들어졌을까요? 내가 2년 동안 인테리어 & 리모델링 업계에 발을 담그고 내 자본을 투자해 창업을 하고, 사업체를 운영해 본 입장에서  내린 결론은 말입니다. 그건 인테리어 &  리모델링 사업도 대기업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나머지 시장이 불가항력적으로 이끌려 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대기업 브랜드는 [무료 실측 & 무료설계 & 무료 견적 & 무료상담]을 강행할 수 있지요. 왜냐면 그들의 시간과 돈과 인력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바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있는 그들의 브랜드 대리점 사업자들의 몫이니까요. 여느 프랜차이즈와 달리 인테리어 & 리모델링을 하는 브랜드의 대리점에서는 무료로 이렇게 많은 것들을 해야 합니다.


1. 홈쇼핑을 통해 모객이 되면 전국 각 대리점에 배분됩니다. 무료 실측을 하러 갔다 옵니다. 왜냐면 홈쇼핑 콜 하나를 받으면 약 15만 원 수수료를 내야 하거든요. 보통 일주일에 4~5개 들어오고, 한 달 누적 10개~15개가 됩니다.

AI가 무작위로 배분해 콜이 들어오면 돈이 나가다 보니 실측을 안 갈 수가 없습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아무리 멀어도 다녀와야지요. 이동시간 빼고 실측만 적게는 20~30분, 많게는 한 시간도 넘게 걸립니다.
2. 무료 설계를 합니다. 자체 캐드 홈플래너를 통해 실측해 온 공간을 설계합니다. 적게는 20~30분, 전체 리모델링의 경우 전체 평면도를 그리고 설계하다 보니 많게는 밤을 새우고, 며칠이 걸리지요.
3. 무료 견적서를 작성합니다. 일반공사까지 더해 실내 적산을 하는 일은 기본적인 시간을 할애해야 하죠. 자칫 견적서 잘못 쓰면 그 공사 안 하니만 못한 결과가 만들어지니까요.
4. 무료상담을 합니다. 3D 설계와 렌더링, 그리고 견적서가 준비되면 사무실로 와서 상담을 시작합니다. 짧게는 1시간, 길게는 2시간, 길게는 4시간, 5시간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걸 다하면서 말이죠. 그날 그날 처리해야 할 업무를 또 해야 합니다. 현장에도 가야 하고, 발주도 해야 하고, 뭐가 없으면 없는 걸 해결해 줘야 하고, 안되면 안 되는 걸 해결해 줘야 하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야 하고...

 

그렇게 정신없이 한 달에 5개~10개 현장까지 계약을 진행하면서 미친 듯이 바쁨을 경험하며 깨달은 건... '대리점의 뼈를 깎는 희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결론은 매출 매출 매출!!!




아침마다 "조금만 더 하시면 매출 얼마입니다! 신기록입니다!"를 외쳐주는 담당 TR, 매출이 적을 때는 매출 적다고 와서 힘들다고 푸념하는 TR도 있었고, 질책하는 TR도 있었고, 내가 돈 들여 내 사업하는데 참 별일이구나... 싶었습니다.


시간에 쫓기느라 너무 바쁘고, 너무 정신없고, 발주까지 대리점이 직접 해가면서 정작 내 몸은 죽고 싶을 만큼 힘이 드는데, 그것은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매출을 만들어 내는 기계가 된 기분이었죠. 2022년이 아닌 19세기 말, 20세기 초 산업을 경험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시스템화라는 이름하에 발주까지 대리점에 떠 앉아 모든 걸 직접 하고, 그 중간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사고는 100% 명백하지 않은 이상 대리점의 책임 또는 대리점이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넘어가니 정말이지 온몸에 사리가 아닌 가시가 돋아나기 시작했더라죠.


점점 회의가 들기 시작했고, 이 길이 맞는 것일까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투자했던 비용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대리점 오픈 규정에 맞는 인테리어를 해야 한다고 하여 설계도면을 몇 번이나 다시 그려가면서 고민하고 연구하여 지금의 매장을 만들고, 정성을 쏟았던 이 사무실 인테리어 말입니다.




대리점 사업자로서 느꼈던 여러 상황에 대해서는 내가 더 많이 알고 나아지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가장 많이 힘 빠지는 일이 무료 실측, 무료설계, 무료견적, 무료상담에서 오는 한계였습니다. 계약을 할지 안 할지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시간과 인력을 계속 쏟아부었지요.


약 열 명을 그렇게 만나 상담까지 하고 나면 한 명이 계약하는 상황이 여러 차례 이어지자 과연 이것이 맞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 담당 TR은 마진을 줄이고 견적서를 싸게 넣으라고 말했더랬지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 친구의 의견은 나보고 이 사업을 하지 말라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개의 현장을 위해 들어가는 품이 얼만데, 사람의 인력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는 일인데, 마진을 줄이고 계약을 많이 하라니요.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토요일, 일요일이고 상담을 원하는 고객이 원하면 밥을 먹다가도 나가서 상담을 해야 하는 끌려다니는 을이었던 것입니다.


"아, 제가 지금 식사 중이어서요"라고 말하면 빨리 오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요. 그래도 좋습니다. 누군가의 귀한 시간을 함부로 생각하지 않는다면요.


한 번은 일요일에는 오후 1시부터 저녁 7시까지 50대 초반 부부의 신축 실내 인테리어 상담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끝도 없이 요구하는데 지쳐서 나가떨어질 만큼 힘이 들었지요. 끝나고서는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하고 돌아갔습니다.


물론, 그 이후로 그들의 연락은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일요일 오후 하루 종일 TV 앞에 앉아서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렸을 아이를 보면서 통곡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점차 굳어져갔죠.


한 분은 신축주택을 계획하면서 설계도면을 백 여 페이지 가져와 약  열흘 동안 매일 같이 나를 찾아왔죠. 사장님의 센스가 너무 좋다며 마구 추켜올리면서 사장님과 계약하고 싶다며 설계도면 다 물어보고, 견적서 빨리 달라고 달하고, (견적서 달라고 독촉하지 마세요. 본인이 견적서를 못 받는데도, 업체에서 견적서를 안 주는데도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렇게나 모든 걸 다 확인하고는 어느 순간 아무런 연락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결정적으로 '100% 선불 결제조건이 맞지 않아서'라는 이유로 어려울 것 같다고 하더군요. 결제조건은 처음부터 알고 시작했으면서 말입니다.




나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알고 싶어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며 힘을 빼니 사람에 지쳐서 일에 완전히 흥미를 잃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내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가며 희생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도 없이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거절할 수 없는 서비스 메뉴얼은 도대체 무엇인란 말인가요.


그 시간에 책을 한 권 더 읽고, 공부를 해야 하는데, 사람들에게 무작정 끌려 다니는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많은 생각이 시작되었지요. 시간에 쫒기느랴 오히려 조금도 자유가 없는 생활을 살면서 나는 이 시스템의 노예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지요. 인을 이롭게 며 결국 나는 취되는 구조 속에 놓여졌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걸 내려놓고 나의 상황을 차분히 들여다 보니 말도 안되는 상황이란걸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을 맡겠다는 욕심을 다 버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더랍니다. 러면서 창업 2년 동안  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공황장애 치료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 평균 100여 통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전화벨만 울리면 발작이 시작되MZ는 아니지만 [콜 포비아] 증후군입니다.  




어제 지인 동생이 연락을 해 왔습니다. 오래된 할머니가 쓰시던 흙집을 독채펜션으로 리모델링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독채펜션으로 운영하기에는 너무나 좋은 위치여서 공사만 잘 해 놓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제는 공사비지요..
신축보다 더 비싼 공사비가 요구되는 조건! 이미 인근 도시 업자들에게서 모두 거절당했다는데 더 멀리에서 가려면 비용이 더 들겠지요.
그리고 지인동생이 보내온 작은 선물! 생각지도 않았던 이 마음을 보면서 이 녀석은 앞으로 무엇을 해도 잘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주 우연찮게 주고 받은 이 지인 동생과의 짧은 톡에서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그동안 사람들에게 나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서 실망한 것에는 엄청난 에너지를 써서 상담을 했음에도 아무런 보람도   느껴보지 못했던 까닭이지요. 짧게라도 상담 고마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려울 것 같다... 등등의 메시지라도 한 줄 받았더라면 사람에게 상처받고, 실망하는 일은 덜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론 그랬던 분들도 간혹 있었습니다. 정중하게 문자메세지로 전하는 그들의 문장에서 예의가 느껴지요. 그러다 나중에 전화를 받더라도 반가웠지요. 타인의 시간과 에너지를 활용했다면 기본적인 매너는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상대의 시간을 일부러 뺏거나 악용하려는 생각은 없겠죠. 다만, 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면 잠깐 시간 내어 아주 작은 문자메시지라도 하나 보내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 문자를 받은 상대는 허탈하고 괘씸한 감정이 아닌 이해하는 마음으로 그  시간들을 훌훌 털어버 수 있을테니 말이죠.


작은 고마움을 표현하는 메세지, 마침표 하나로 서로가 따뜻해지는 시간을 만들어 내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인건비는 갈수록 치솟는데 왜 무료 실측, 무료설계, 무료견적, 무료상담 계속하는 거죠? 인테리어 & 리모델링 무료 4종 세트는 인건비가 치솟는 이 시대에 사라져야 할 업계 내 고질적인 '제 살 깎아 먹기'라는 생각입니다.


그냥 견적이나 한 번 받아봐...  말이 짜로 해도 된다는 표현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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