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우리 추억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해, 가자 아들아
떠나자 아들아!
우리의 치료가 진행될수록 나는 더 많은 일들에서 손을 놓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데 집중하였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영유아기 때처럼 나를 미치게 하는 상황은 이미 아니었을뿐더러, 아이는 내가 안아주고 뽀뽀하고 함께 있을 때마다 혀 짧은 유아어를 쓰며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다. 주치의는 그것이 일시적인 퇴행이며, 진일보의 증거라고 말했다. 아이와 함께 할수록 나날이 내가 이전에 육아에서 느껴 보지 못한 재미와 기쁨과 성취가 생겨났다.
어쩌면 나는 엄마로서는 빵점이겠지만 고학년, 청소년기 친구로는 적합한 자격을 갖추었고, 그것이 나의 적성에도 매우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말하자면 [고학년용 엄마]에 특화된 것이랄까. 내가 진즉에 [적성제로육아]를 외쳤던 것에는 최악의 2세-7세이지 않았던가. 왜 엄마라는 생물은 모든 연령에 다 유능해야 하는가. 나처럼 특정 연령대는 정말 때려죽여도 할 수 없는 육아포기자 즉 '육포자'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가 성장하여 자신의 가방을 메고, 필요한 준비물도 찾아내고, 엄마가 깜박깜박하는 걸 대신 챙기는 뭐랄까 도반의 역할이 가능해지면서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다. 이에 자신감이 생겨 아이의 놀이치료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급한 불이 일단 꺼지면서부터 우리는 주말에 국내여행을 계획하고 떠나고 경험하고 느끼고 돌아오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하루 만에 돌아와도 좋았고, 이틀 동안 다녀와도 좋았다. 그중에서도 나흘 동안 경주에서 보낸 시간과 닷새 동안 거제도에서 보낸 시간은 너무너무 좋았다. 가까운 산을 시작해 국립공원 등반을 시작했고 아이의 손을 잡고 정상까지 올랐다.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루지를 타고, 짚라인을 타고, 나는 평생 하지 않을 법한 체험을 아이를 위해 찾아다녔다. 그러면서 우리의 여행기록이 추억이 되어 한 장씩 쌓일 때마다 아이와 나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대화를 나누는 것에서 편안함이 느껴졌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만큼 웃고 떠드는 일들이 늘어나는 것을 알게 되고, 아이가 엄마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아이가 더 자라기 전에 우리의 평생 가는 추억을 더 많이 만들고 싶어졌다. 앞으로 어떤 사춘기를 겪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 시기가 오기 전에 우리가 함께 보낸 즐겁고 뜻깊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다.
뭐든 시기가 있는 법, 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우리 이제 한 달 정도 여행을 다녀와도 되지 않을까?"
라고 말하던 그 순간에 말이다,,, 나는 내 몸 저 깊숙한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에너지와 긍정의 기운에 오랜 기간 내 몸에 기생해 온 우울이 내쫓기듯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완전하게 낯선 곳으로의 여행 계획을 생각하는 그 자체로 지난 시간 나를 괴롭혀온 깊고 넓은 우울의 병이 다 낫는듯했더라니 나는 지금껏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었을까... 출산 이후부터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도 될 만큼 아이가 자라주기를 얼마나 간절히 기다려 왔던가!
엄마의 이 지독한 역마살을 물려받은 아들의 DNA는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녀석은 생후 30일 때부터 매달 비행기를 타고 이동을 했음에도 기내에서 단 한 번도 울어 본 적이 없었다. 너무 조용해서 아이가 있는 줄도 몰랐다는 승무원들의 칭찬은 그저 당연한 추임새에 불과했다. 근처 자리에 앉은 스위스인 중년 여인이 아이를 안아보고 싶다고 하여 젖병으로 분유를 먹이고, 트림까지 하고 내 자리로 돌려보내질 정도였다. 생후 6개월 차에 나타난다는 낯가림은 정확하게 이틀 정도 현상으로 지났나 보다. 낯선 곳을 주저함 없이 탐험하고 즐기는 것에 최적화된 DNA에 강력한 호기심과 환경이 아이를 그렇게 성장하게 하였을까. 아이는 여행을 즐겼고, 무엇을 하든 늘 더더더!!! 를 외치는 익스트림 E 성향의 타고난 명량세포 ADHD였다.
그에 비해 엄마인 나는 E의 탈을 쓴 I성향의 최대치로 INFJ-T가 그러하듯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걸 극도로 참을 수 없어 뭐든지 한눈에 보이게 한 장에 정리되는 것을 몇 날 며칠 밤을 새더라도 직접 해야만 하는 과몰입형 ADHD였다.
때마침 아이가 '엄마, 미국에 가 보고 싶어'라고 했을 때 아이는 어쩌면 '엄마, 나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와 같이 무심하게 흘린 말이었겠지만, 그것은 사냥하는 매의 반짝이는 레이다에 걸린 키워드가 되어 내 심장 속에 들어왔다. 어쩌면 이미 전 세계의 반을 돌아보며 살아온 내가 선택하기에는 다소 뜻밖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곳이 어디든 아이가 처음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던 곳, 나는 그곳에 아이를 꼭 데려다주고 싶었다.
-3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