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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도링 Jan 15. 2022

34살, 수험생이 투잡이 되다.

다시 공부를 하게 될 줄이야

약사로 제 2의 삶을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PEET'를 볼까봐요

몇개월 전 이직한 4살 어린 친구가, 점심시간에 산책하다 내뱉은 한 마디에 잊고 살던 마음이 꿈틀거렸다.

'서른이 넘었는데 제 2의 삶...?'


9년 전 졸업 시즌, 내 페이스북 피드엔

출발선에서 너무 멀어져, 돌아가기도, 다른 길을 가기도 어려워져 버린 나이라

이제 막 출발선에 선 20살 새내기가 부럽다는 글이 올라왔다.

25살이 뭐가 늦었냐고, 너무 빠르게 이루려고 해서 그렇다는 동기오빠의 댓글은 위로로 닿지 못했다.


25살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강산이 한 번 변할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직업은 안정적이고 집안은 별 일 없고, 주변까지 평화로운 생활이 이어지다보니

더 이상 출발선에 선 20살 새내기가 부럽지 않았다.

심지어 '이렇게 고민 없이 만족하며 살아도 되는가'가 고민이 될 정도였으니...

(혹시 지나가던 유퀴즈를 만나 내게 요즘 고민이 뭔가요?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하지가 고민이었다.)

배경 사진 출처 : 와제's 블로그 (페이커 편)


솔직하게 말하면,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한 번쯤 찐하게 치열했던 적은 있었으니까.

그때 그 기억은 지금의 내가 '그래 나 쫌 멋있었지'하며 나를 단단해지게 하지만,

당시에는 꽤 많은 것을 포기하고 미뤄야만 했던 시간이었기에

이제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치열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적당히 흘러가고 있었다.


썩 적성에 맞지는 않았지만, 나름 조금의 인정은 받으며 안정적인 돈벌이를 할 수 있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음에 감사했다.

업무적인 지식과 경험 정도 쌓아가며, 틈틈히 책도 좀 읽고 영어공부를 매년 다짐하며

작년보다 올해에 조금 더 성장해나가면 됐지 싶었다.

인생 2막 같은 건 결혼 후 열리는 새 세상 정도라고 생각했지 현재의 내가 '제 2의 삶'을 생각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제 2의 삶'이라는 단어가 왜 이렇게 마음을 건드리는건지...


치열해지고 싶지는 않은데 흘러가고 싶지도 않아


이게 바로 나란 사람의 이중성이다!


어쩌면 적당히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깊게 들여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시간이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멋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지금 행복한 것도 충분히 멋진 인생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아버린 서른 네 살의 나지만,

스물 다섯 아무 것도 모르던 때의 내가 꿈 꾸던 멋진 인생도 살아주고 싶어졌다.


나는 '지금' 충분히 행복하지만,

'내일'도 조금은 멋지게 살아야하기에


다시,

치열했던 그때를 흉내내본다.


그렇게 수험생이 투 잡이 되었습니다.


P.S. 내가 시작한 수험생활은 'PEET' 시험이 아니고, 업무 관련 전문 자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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