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담 Feb 15. 2023

와아 굉장해.

대운이 들어왔다.

새해 첫날 운세를 봤다. 대운이 들어온단다. 88점. 굉장했다. 좋은 기분으로 출발했다. 아빠의 여든 번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여행을 하기로 했다.

교통사고가 났다. 한 달이 지났다. 오른쪽 다리의 감각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부러지거나 피가 나는 게 아니니 다행이라 맘먹었다. 법이 바뀌어 4주 이상 치료받으려면 진단서가 필요하단다. 추가 치료도 2주가 끝이다. 그 안에 감각만 돌아오길 바란다.

아,  소박하고도 기약 없는 바람이다.


아빠와의 여행은 취소되었고,  아빠는 마지막 항암치료까지 마쳤다.


운전하는 게 겁이 나서 버스 타고 출퇴근을 한다.

걷다가 차만보여도 심장이 쾅쾅 뛴다. 횡단보도 앞이라도 저 멀리 차가 보이면 얼음이 된다. 차가 안 보여야 안심이 된다.  국가대표급 소심함이다.


5~6년 전 건강보험 건강검진에서 추가검사가 필요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이상이 없어서 1년에 한 번 정밀검사를 받고 있다.

저번주 토요일 검사를 받았는데, 없던 게 보인단다.

부모님보다  노노가 걱정됐다.


오늘 조직검사를 했다.

"힘주지 마세요. 검사 끝나면 가슴이 아파야 하는데 그러다 어깨가  아파요."

그 개그코드가 너무 좋 떨면서도 웃었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혈압이 안 떨어져서 한참을 호흡을 가다듬으며 앉아있었다. 어지럽다.

대운이니까 이 정도로 끝나나 보다.

결과도 분명 좋으리라 믿는다. 병원에서 휴대폰으로 글을 쓰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런. 눈물샘조정도 내 뜻대로 안 된다.



입원이 필요하다는 말에 "제가 평일날 쉬어도 될까요?"라고 처음 만난 의사 선생님께 물었다.

"그럼요, 그럴 자격 됩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니 이거 무슨 의사면허는 배려대마왕순으로 ?

"별일 없으셨어요?" "무리하지 마세요."는 기본이고, 출근 때문에 퇴원한다는 말에 "출근하지 마세요. 더 쉬세요." 하는 단호함까지 겸비했다. 나는 그 말에 힘을 얻어  퇴원하고 3일을 더 쉬었다.

그리고 사노요코 씨의  「그렇게는 안되지」를 만났다.

네 살 때는 '내일'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의 미래였다. 열아홉 때는 미래는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다. 서른다섯 때, 나는 조금 지쳤다. 앞으로의 10년은 아이를 위해 애쓰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제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다. 「그렇게는 안되지」 73p

쉰셋인 지금 서른다섯의 요코 씨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어릴 적엔 알사탕 하나가 입에 들어가면 엄청 기분이 좋았다. 지금은 뭘 먹어도 기분이 들쑥날쑥 한결같지가 않다. 내일 먹으려고 넣어둔 부침개 반죽은 냉장고에 들어가는 순간 잊어버린다.

그렇게 나이 들어간다.

작가의 이전글 버티는 중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