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에 나온 해석은 오로지 저만의 개인적인 해석이며, 예술 작품이란 본디 사람마다 해석하는 바가 다르고, 제 해석이 앨범을 관통하는 절대적인 것임이 아님을 명시하며, QM님의 앨범을 왜곡하거나 비난할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QM을 처음 알게 된 건 QM이 VMC 입단을 하게 된 때였다. 당시 힙합을 들은 지 얼마 안 되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솔직히 VMC가 뭐 하는 곳인지도 제대로 모른 채로 VMC 입단을 알린 앨범 [HANNAH]을 들은 기억은 난다. 초등학생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웠던 가사들 덕에 제대로 앨범이 뜻하는 바는 몰랐으나 '나 이런 고차원적인 힙합 앨범도 듣는다.'라는 같잖은 허영심에 친구들에게 '이 앨범 개 쩐다.'라며 구시렁거렸던 기억이 있다. 지금 보니 어이없기도 하고 나름 귀엽기도 하고 그런다.
[돈숨]은 2020년에 나왔으나 지금에서야 제대로 듣게 된 건, 내가 IMJMWDP (현재 AP Alchemy로 통합되었다.)에 빠져 VMC를 잘 몰랐던 것도 있고, QM에 그렇게 크나큰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돈숨]을 봤던 건 2020년 한국 힙합 어워즈에서 [돈 숨]이 '올해의 과소평가된 상'을 받았을 때인데, 당시 QM이 감사 인사를 전하는 동시에, '올해의 과소평가된 상'이 폐지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말을 해서 시상식에서 저런 말을 하다니 패기 좋네,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다 간간이 QM의 곡을 들었고, 최근에서야 앨범을 통으로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QM의 [돈숨]은 QM이 한국 힙합씬에 등장하고, 점점 몸집을 키워가면서, 겪어야 했던 이념과 현실의 갈등과 갈 곳 없는 세상에 나만의 둥지를 터야 했던 외로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앨범이다. 앨범 설명을 빌리자면,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세상, 31세 홍준용은 부유하는 섬'이라는 문장이 적절하다. 숨만 쉬어도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돈, 그리고 그 돈과 타협해야 하는 나의 이념들, 그리고 내가 살아가야 할 곳을 마련해야 함의 쓸쓸한 외로움들. QM의 [돈숨]은 그 이야기가 여실히 담겨있다.
은-QM / 36.5-QM (feat. 넉살)
[돈숨]의 첫 트랙 '은'은 자신의 조부모님이 돌아가신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조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남은 '고아'가 된 아버지를 보며 성공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며 앨범을 시작한다. 뒤이어 '뒷자리'라는 트랙은 어렸을 적 버스 맨 뒤자리에서 앞자리까지 차지한 이야기를 전개하며 학교를 힙합씬으로 비유하여 소위 '일진'을 제치고 당당히 앞 좌석을 차지한 QM의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풀어낸다. 동시에 '반짝이는 걸 목에 걸어야 잘 나가는 거래, 함 걸어봐 줄까 새끼야 색깔, 별로 근데 야 보석돌'이라며 명품 시계, 체인, 옷만을 성공의 증거로 제시하는 래퍼들의 허영심을 낱낱이 지적한다. 이에 넉살의 피처링은 이 트랙 특유의 당당함을 잘 짚어낸다.
이어지는 트랙 '36.5'에서는 앞 트랙의 당당함은 없이 자신의 위치를 한탄한다. 어머님의 위중함에 급해진 가운데 제대로 된 처치가 이루 지지 않는 응급실에서 편찮으신 어머님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을 비관하며, 그의 능력은 공연장 위 아니면은 하등 쓸모없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앞에서의 트랙의 당당함과 자부심과 대조되며 이 것들이 쓸모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강조한다. 또한, 이 트랙은 코로나19로 더욱 두꺼워진 의료의 벽을 비판하는 사회적인 메시지도 담겨있다.
다음 곡 'Island Phobia'는 저스디스를 디스 한 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쇼미 더머니 11에서 사용한 벌스가 담긴 곡이기도 하며, ‘어그로 끌까 나도 신념타령 은퇴를, 가사는 칼 누군가를 베었다가도 부메랑처럼 돌고 돌아오지 shit’이라는 가사를 통해 은퇴를 암시했다가 번복한 저스디스를 디스 했다. 단지 은퇴를 암시했다가 번복했다는 이유로 디스를 한 건 아닌 것 같고, 저스디스의 미디어를 향한 변절적인 태도를 지적하는 것 같다 (QM이 이후에 디스 한 곡의 가사를 고려하면).. 다만, 이 곡의 주제는 단지 저스디스를 디스 하는 것이 아니다. 곡의 제목을 보자. ‘섬 공포증’. 홀로 있는 이 외딴섬이, 점점 그에게 공포로 다가오면서, 그 섬에 대한 탈출을 갈망하고 자신의 위치를 부정한다.
잇단 ‘카누’라는 곡에서는 노를 젓는다. 존나게 노를 젓는다. 하지만 노를 저으면서 놓친 것들과 순수했던 꿈과는 결별한다.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틀릴 수도 있지만, 예술은 자신이 해석하기 나름이므로 이렇게 말해본다. ‘봐 3만 원 있는 사람 마신 소주는 불쌍해, 반면 3억 있는 사람 마신 소주는 겸손해.’라는 가사를 보며 돈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관찰한다.’ 그리고 ‘체념’한다. 왜 ‘관찰’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냐면, 그는 비관한 것도 사람들의 태도를 지적한 것도 아니다. 3만 원 있는 사람이 마신 소주는 불쌍하고, 3억 있는 사람이 마신 소주는 겸손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다. 누구도 이것을 비관하거나 비판할 필요가 없다. 짐작하건대 QM조차도 그렇게 바라볼 것이다. QM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는 돈에 대해서 더 이상 부정할 생각이 없다. 다만 이 현실을 머금고 체념할 뿐이다. 3만 원 가진 사람이 마시는 소주는 너무나 처량한 것을, 본인도 처절하게 알기 때문에.
6번째 트랙 ‘돈숨’은 본격적으로 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트랙이다. 인상 깊었던 가사는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어 넌, 네가 벌지 않을 때 가족이 쓰러진다면, 넌 못 부려 고집, 빌리지 못해 꿈, 겁쟁이 손가락질 네 가치는 그냥 폐품’라는 가사이다. 이 가사는 네가 네 꿈을 고집부리며 간간이 생활을 이어가던 중 네가 제어할 수 없는 갑작스러운 일, 가족이 쓰러지는 일이 생긴다면 그때 가서도 고집부릴 수 없을 것이며,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버리는 것은 고작 겁쟁이 짓이고, 사회적으로 당신의 가치는 그냥 세포덩어리나 폐품뿐인 거라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또, ‘발바닥 안 봐줘 과정은 아름다운 것-이란 말은 패자들이 모여 자위하는 법, 저 래퍼들은 변했네 돈 벌고 가난 팔아서’라는 가사는 솔직히 찔렸다. ‘과정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은 특히 내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가끔 나도, 이게 그냥 합리화 혹은 자위행위 (’그’ 자위 아닙니다.)밖에 안될 거라는 생각을 내심 했기 때문이다. 또 가난 팔아 돈 번 래퍼들-이라는 말은 꽤나 쓸쓸하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가난을 파는 것이 죄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가난을 팔아야만 소비하는 대중들이(물론 나도 그 대중 중 하나지만) 애석할 때도 있었다. 누구나 서사는 필요하다. 다만 그것이 꼭 가난일 필요는 없긴해도 유독 가난이라는 소재에만 버튼 눌린 듯 반응하는 사람들을 보면 길고양이에게 주는 츄르처럼 단순 동정심 아니면 뭘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가난 팔아 돈 버는 래퍼들을 비판하고 싶은 것은 아니나, 그래야만 하는 현실이 다소 쓸쓸할 뿐이다.
가성비-QM / 만남조건 -QM (feat. jerd)
가성비라는 트랙은 사랑 노래가 시작된다. 사랑을 할 때조차 ‘가성비’를 따지며 마음만큼은 많이 주기를 바라면서 그러기 위해서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는, 사랑마저도 계산적이게 된 현실을 담담히 뱉는다. 이어지는 트랙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성을 찾아 클럽에 도착한 QM은 내심 자신을 알아보길 원하지만, 자신이 아닌 옆에 있는 잘생기고 유명한 친구인 빅원을 원하는 여성을 보며 또다시 낙담한다. 클럽이란 철저히 겉모습으로만 이루어진 공간이므로 그는 자신을 들렸다 지나가는 그녀를 보며, 그저 안녕을 빌어줘야 한다. 어쩌면 그는 크나큰 항구일지도 모른다.
Chantey Interlude-QM / 닻-QM (feat. Khundi Panda) / 다시 섬-QM
다음 트랙은 인터루드인데, 아슬하게 들리는 목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우리 엄마한테 자랑스러운 직업이었으면 좋겠어.’ 이로써 다음 트랙은 래퍼라는 불안정하고 다소 겉멋만 든 일진 같은 직업이라는 선입견에 사회, 사랑에 부딪히는 내용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다음 트랙 역시 그렇다. ‘닻’이라는 트랙은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을 닻을 내리는 것으로 비유한 곡이며, 자신의 현실적인 사회적인 위치와 대립하는 연인과의 관계를 다룬다. 연애는 낭만으로 버틸 수 있을지언정 결혼은 냉담한 현실이다. 결혼식 비용, 신혼집, 혼수, 신혼여행 비용, 아이라도 낳게 된다면 통장이 마이너스되는 게 일도 아닌 건 고작 고등학생뿐인 나도 안다. 그녀는 말한다. 좀 평범하면 안 되냐고. QM은 답한다. 그럴 거면, 차라리 날 떠나라고. 그리고 비로소 닻을 내린다. 사실 다른 글에서 보면 닻을 내리지 못한다는 해석도 있는데, 나는 닻을 내리고 연인과 이별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다음 트랙에서 묘사하는 이별과 이야기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 트랙, ‘다시 섬’이라는 트랙에서는 앨범의 큰 비유인 섬이라는 공간을 다시 정의한다. 섬, 거대한 돈뭉치들이 쌓여 만든 섬. 그 섬에서 허우적거리며 탈출해 봤자 다시, 섬이다. 섬. 그는 이제 현실을 받아들인다. 돈을 받아들인다. 돈과 타협한다. 어쩌면 우리는 매 순간 꿈과 돈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는 아찔한 생각이 든다. 이 차가운 온도의 돈뭉치들이 쌓인 섬 안에서 그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까?
QM의 [돈숨]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돈이라는 주제는 내게 너무 와닿았다. 나는 솔직히, 돈을 미친 듯이 벌어 성공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내 진로 특성상, 어느 학과를 가든 큰돈을 벌지는 못한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대신 받는 대가 정도로 생각하고, 내가 좀 덜 못 버는 대신 나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더 받는다 생각하면 그리 억울한 것도 없다. 그러나 이건 아빠가 번 돈으로 삼시세끼 해결하고 옷 사고 친구들이랑 인스타 감성 카페 가서 맛대가리 없는 7500원짜리 카페라테 먹고 시도 때도 없이 노래방 가서 12곡씩 혼자 열창하다 오는 길에 4000원에 10알 들어있는 타코야끼 먹는 내가 하는 말이다. 직접 벌어본 적 없는 내가 보증금, 월세, 학자금대출, 통신비, 식비, 각종 경조사비에 매달 넣는 적금까지 전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다. 나도 QM처럼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려놓고 돈과 타협하고 고독하고 외로움 섬에 놓일지 모르는 셈이다. 현실이란 무척 냉담하고 또 낭만 따위 없는 것처럼 취급한다. 누가 그랬을까 낭만으로도 먹고 산다고. 난 이번 앨범을 들으며 돈, 사랑, 힙합씬의 위치 등 많은 주제를 다룬 QM이 존경스럽다. 특히 QM의 플로우는 다소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데, 변칙적인 강세, 속도 조절과 중간중간 분위기를 환기시켜 주는 훌륭한 피처링진들로 귀가 더 즐거웠다.
QM은 전한다.
외딴섬에 홀로 남겨진 그대여 체념하라. 세상엔 사탕발림 같은 가짜 위로가 전부가 아니다. 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