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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by 소산공원

배달 떡볶이를 먹으면서 리틀포레스트를 봤다. 오늘은 혼자 밥을 짓고 먹는 이치코의 표정을 살폈다. 은은하고 고독한 표정. 저 맛있는 것을 혼자 먹는 것은 어떤 기분인지, 나는 알지.


서천에서 지내는 짧은 시간동안 고독했다. 일부러 고독하려고 홀로 서천에 갔지만, 이 고독함을 다루어낼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혼자 있는 생활을 잘 꾸려보려 매일 청소도하고 밥을 지어 먹고 산책을 했다. 차를 끌고 나가 군산이나 금강변을 산책하고, 동네 마트가 닫기 전에 장을 보고 돌아왔다. 밤마다 혼자 술을 마셨다. 일상은 윤택했지만 고독함에 잡아먹힌 것만 같았다. 배불러도 고독했고 취해도 고독했다. 혼자 사는 일이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리 홀로 떨어진 섬 같았을까. 지금도 그 때 찐 살들과 고독함이 몸에 습관처럼 엉겨붙어있다.


그때 나는 매일같이 지겨워라고 말했다. 혼자 마당 평상에 앉아 넉넉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지겨워-'라고 혼자 웅얼거렸다. 지겹다는 말은 내가 하는 말 중, 최악의 순간들 중에 가장 최악일 때 표현하게 되는 말이다. 예를 들면 아직 절여지지도 않은 김장배추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을 본 순간. 그 주변으로 나이든 여자들이 형형색색의 앞치마와 장비를 갖추고 모여있는 장면. 이틀 전 출근길에 동네에서 그 산더미같은 배추탑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어휴 지겨워'하고 말해버렸다. 그건 앞으로 예상되는 고된 풍경들을 동시에 겪은 것처럼 입 밖에 절로 나온 말이었다.


사는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는 대체로 지겨움을 느낀다. 이렇게 자주 좋은 것을 보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거의 매일 풍요롭고 행복하면서도, 일요일 저녁 선 사람처럼. 사는 일을 생각하면 '지겨워..'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앞으로 예상되는 시간들, 일상에 윤기로도 해결되지 못하는 긴 시간들을 생각하면 까마득히 지겨워진다. 그니까 지겹다는 말은, 떨쳐낼 수 없는 허무와 가깝다. 블랙베이글.


아무튼 주말 내 잘 쉬어놓고도 침대에 누워 '지겨워'라고 습관처럼 말하는걸 깨닫고 위험하다 싶어 급히 산책을 나섰다. 걸어 나오는 길에, 차에서 봤던 동네의 김장터가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다. 여러개의 커다란 다라이, 유아풀장같은 여러가지 도구들과 앞치마들. 무사히 김장을 마치셨구나. 올해의 숙제를 해내셨겠구나. 지나온 김장의 풍경들을 상상했다. 소금물을 휘저어 배추를 담그고 여러번 섞어주고. 물을 빼느라 또 탑을 쌓고. 무를 채썰고, 쪽파를 다듬어 썰고, 갓을 씻어 자르고. 커다란 대야에 커다란 삽으로 팔이 빠져라 양념을 섞고. 절여진 배추의 잎을 한장씩 들어 속을 채워놓고, 가지런히 서로의 김치통에 나누고. 이것은 딸의 것, 아들의 것, 사촌의 며느리의 손자의 시댁의 이웃의 것. 그렇게 나누어진 김치통을 들어옮기고 빨갛게 절여진 전쟁같은 시간들을 물로 씻어내고. 절인 배추와 수육과 막걸리로 식사를 나누는 풍경들. 큰 숙제를 끝낸 고된 몸들. 이 구체적인 시간들을 생각하면 왜인지 '지겨워'라는 말이 쏙 삼켜진다. 어딜감히.


리틀포레스트에서 이치코의 일상은 윤택하다. 매일 눈이 와도 눈길을 쓸어내고, 성실하게 밭을 매고, 감을 따서 곶감을 만들고, 팥 농사를 짓고 군불을 떼어 빵을 구워먹는다. 그렇지만 어쩐지 고독하게 보인다. 그리고 이치코의 엄마를 상상하자면, 그 시간들을 지겹게 견딘 사람 같다. 그래서 나는 종종 이치코의 엄마가 사라지고 떠난 곳들을 생각한다. 더 이상 지겹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

겨울편이 끝날 때 쯤엔 마을의 어른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을의 어른들이 숲을 경작해 밭을 만들어냈던 시간들, 기계 없이 동물과 사람의 힘으로 견뎌온 시간들을 들으며 진심으로 그들이 좋아보인다는 말을 한다. 그리곤 유우타의 말을 빌려 일상을 '열심히'산다는 것을 핑계삼아 사실은 이도저도 아닌 시간들을 보내고 있지 않는지 질문한다. 이도저도 아닌 시간.


그러니까 나는 부지런한 이치코처럼, 부지런하게 아름다운 일상을 보내면서도 이도저도 아니게 행복하고 틈만 나면 지겨움을 느낀다. 언젠가는 김장을 마친 늙은 여자들처럼, 마을을 일구어낸 사람들처럼 단단하고 순하게 먹이고 키우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오랜만에 떠올랐다. 그리움이다. 가꾸고 길러내는 힘. 깊은 고독함을 즐기는 일. 그걸 배우는 시간들이라고 생각하면 오늘의 지겨움이, 이 고독이 괜찮아진다. 다시 또 고독한 시간으로 걸어들어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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