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에도 우린 사랑을 하고 꿈을 꾼다. 새 생명도 태어나고 산과 들엔 계절에 따라 꽃도 피고 진다.
로풍찬 유랑극장은 이런 처절한 시간을 헤쳐 나가던 시절에 떠돌며 연극을 하던 극단이다. 때는 1950년 6월 24일. 극단은 전남 보성 새재마을애 도착한다. 도착한 마을은 여순사건 이후 이념 대립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이다. 이런 삼엄한 마을에서 당장 방 값도 낼 돈도 없는 로풍찬 유랑극장이 연극을 하겠다고 판을 벌인다. 어느 누구 하나 이들을 반기지 않는다. 먹고살기도 벅차고 서로 죽이고 죽는 세상에 무슨 연극이란 말인가?
배우들의 힘찬 연기는 적절한 연출을 만나 힘과 감동을 준다. 무엇보다 한 무대에 두 감정이 동시에 보이는 연출은 정말 좋다.
이 중 압권은 로미오와 쥴리엣을 각색한 ‘노민호와 주인애’ 공연을 하는 배우가 아닌 그 공연을 보는 마을 사람들을 무대에 올린 점이다. 한 편의 연극을 보며 시시각각 변하는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매우 감동적이다. 나 역시 이런 감동 때문에 연극을 보는 것이니까.
이 작품의 원작은 류보미르 시모비치의 <쇼발로비치 유랑극단>으로, 김은성 작가가 1950년 전남 보성군을 찾은 로풍찬 유랑극장으로 각색했다. 역시 빼어난 각색이다. 문삼화 연출은 김은성 작가의 각색 작품을 보고 원작을 보고 싶지 않을 정도라고 칭찬했다.
연극의 매력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이 대사가 참 좋다.
’이 천막은 두 시간으로 줄인 천만년을, 여섯 평으로 좁힌 억만 평을 가리고 있다네. 천막 안에는 천막 밖에서 꺼진 밝은 세상이 있다네 ‘
문삼화 연출 @samhwamoon
김은성 각색
공상집단 뚱딴지 @ddongs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