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이 느껴지는 극단 58번 국도의 연극 <오징어 지우개>
연극을 선택하는 기준은 몇 가지가 있다. 그 기준 중 하나는 믿고 보는 극단이다. 2023년에 창단되었지만 나는 극단 58번 국도 작품을 믿고 본다. <이방인의 뜰> <비와 고양이와 몇 개의 거짓말>과 낭독극 <상대적 속세>까지 모든 작품이 적당히 깊고 따듯하고 사랑스러웠다. 강요 없이 보고 느껴보라고 말하는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오징어 지우개>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프로그램에서는 부조리극이라고 표방해 이해를 기대하지 않았다. 역시 부조리극은 불친절하다. 그런데 이 불친절함이 여운이 되어 다시 보게 만든다. <고도를 기다리며>가 그렇지 않은가! 이 작품 역시 그랬다.
한 여자가 앉지 말라는 경고가 붙은 벤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린다. 이때 검은 봉투를 끌어안고 누군가에게 쫓기는 남자가 나타나고 여자는 예견했다는 그 남자의 발길을 막고 남자에게 얘기를 하라고 강요한다. 남자는 오징어로 지우개를 만드는 특허권을 갖고 있고 이 특허권 때문에 쫓기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에게 아이를 살해했음을 알고 있으니 얼른 사실대로 고백하라고 종용한다. 이들의 말씨름은 인정과 부정을 오가며 지속되고 결국 관객은 자신은 어떤 이야기에 홀리고 있는지 확인하며 커튼콜을 맞이하게 된다.
살다 보면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 던져질 때가 많다. 사이가 틀어졌는데 왜, 무엇 때문에 그리되었는지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리고 간혹 맹목적인 믿음에 의해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도 있다. 이 연극은 내게 개인이 확실하다고 믿는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거지.
극단 58번 국도 나옥희 대표가 번역한 이 작품은 배츠야쿠 미노루 작품으로 그는 부조리한 상황을 웃음으로 전환시키는 힘이 있는 일본을 대표하는 극작가이다. 연출을 맡은 김재웅은 극단의 배우이기도 한데 새로운 도전을 했다.
부조리극은 대중성을 갖는데 한계가 있다. 이럴 땐 확실한 색깔의 연출이 필요하고 배우가 연기력으로 받쳐줘야 한다. 포인트가 없는 것 같아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매 작품에서 캐릭터를 정확히 알고 연기하는 이종원 배우의 연기는 빛이 났다. 무릎까지 내려온 듯한 다크서클도 ^^
희곡으로 읽고 기회가 닿는다면 컨디션 좋은 상태로 다시 보고 싶다. 아무튼 이 극단의 뚝심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희곡 선택이 탁월하고 클래식을 다룰 줄 아는 정말 귀한 극단이다.
극단 58번 국도 작품 @58route.official
배츠야쿠 미노루 작 나옥희 번역 @koh_soohee 김재웅 연출 @jeawoongkim
이종원 정예지 홍수민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