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극단 작품, 하수민 연출
트랍스는 꽤 성공한 섬유 판매원이다. 어느 출장길에 그의 8 기통 스포츠카가 고장 났는데 설상가상 호텔도 만원이어서 한 집을 소개받는다. 이 집주인은 그에게 숙박료도 공짜며 자신의 파티에 참가해 달라고 애원하고 트랍스는 그 요구를 수용한다.
연극은 1945년 발표된 극작자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단편 <사건>이 원작이다. 하수민 연출에 의해 재각색되었다. 트랍스의 하룻밤 이벤트를 통해 인간 내면의 윤리와 죄의식을 들여다보는 블랙 코미디다.
트랍스가 참여한 파티는 은퇴한 판사, 검사, 변호사와 또 한 명의 친구들이 벌이는 모의재판이며 손님 트랍스는 무조건 피고가 된다. 이 자리에서 트랍스는 없던 죄가 생기고 그 죄에 대해 변호해야 한다. 검사에 의해 살인죄가 발굴된 트랍스. 그런데 재판이 진행되면서 어찌 자신을 변호하는 변호사보다 검사에게 설득당하는 듯하다.
하수민 연출은 “오로지 개인의 행복과 성공만을 달려가는 삶 자체가 즉, 더 이상 도덕과 양심이라는 가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부도덕이라는 ‘트랩(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행복과 성공만을 바라는 가치가 도리어 인간이 무가치함으로 가는 길임을 말하고자 하였습니다.”라고 말한다.
성공을 위해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기 앞만 보고 달려온 트랍스는 이 하룻밤 파티에서 자신의 양심과 만나고 모의재판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앞서 말했듯 이 연극은 블랙 코미디다. 상황과 연기, 대사는 웃기다. 그래서 관객은 웃는다. 하지만 어쩐지 씁쓸하고 슬프다. 트랍스에 내가 대입되면 여러 생각이 올라올 것이다.
서울시극단의 배우들과 남명렬 김명기 손성호 배우가 같이 연기한다. 모두 무대에서 매우 노련한 중장년의 배우들이니 연기에 구멍은 없다. 그럼에도 첫 공연은 다소 합이 맞지 않아 삐걱였다. 좀 사이가 뜬다 해야 할까? 물론, 그래도 재미있다. 여운도 있다.
보니 엠의 해피송이 음악으로 쓰이는데 이 곡을 이승우 배우가 직접 다양한 변주로 연주한다. 해피 송인데 묘하게 새드 송으로 들린다. 여기에 무대는 몹시 아름답다. 무대와 같은 다이닝 룸을 갖고 싶다. 요즘 눈에 차는 무대는 대체로 남경식 무대 디자이너 작품이다. 이번엔 미니멀한데 화려했다.
다이닝 룸의 무대에서 배우들은 실제로 음식을 먹고 마시며 연기한다. 난 이게 몹시 불편했다. 대사 타이밍을 맞추려니 씹다 만 음식이 튄다. 아름답지 못하다. 종종 대사 타이밍도 안 맞는다. 식은 음식을 먹으며 연기하는 배우들도 고역일 것 같다. 연출의 의도가 있겠지만 좀 과하단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게 보았지만 무엇인가 약간 찜찜함이 남았다. 내 능력으론 설명 불가다. 블랙 코미디의 매력이다. 나는 부조리극, 블랙 코미디를 좋아하나 보다.
하수민 재각색 연출
김명기 남명렬 강신구 김신기 손성호 이승우 출연
서울시극단 제작
무대 남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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