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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 기 홍 Oct 08. 2024

벅수 3화 악을 위한 잿빛 변주곡

3. 악을 위한 잿빛 변주곡     

   거센 빗줄기가 은빛 바늘로 내리꽂히는 해안도로의 빗물을 가르는 차 한 대가 흐릿한 전조등에 의지해 가고 있었다. 반대 차선의 젖은 가로등은 먼바다의 등대처럼 가물거렸고, 칠흑의 해안도로는 파도가 깨지는 굉음과 차창을 때리는 빗줄기로 원활한 대화마저 쉽지 않았다.

“뭔 놈의 비가 장마 때 보다 징그럽게 온 다냐?”

단단히 운전대를 잡은 중년의 남자가 심란한 듯 투덜거렸다.

“그러게요. 휴가 내내 퍼붓더니, 오늘은 더 심한데요?”

코에 걸친 뿔테 안경 너머 전방을 집중한 중년 남자 옆자리에서 흰색 반 팔 티의 청년이 상체를 곧추세워 손잡이를 잡고 말했다.

“그러게. 우리 아들 금쪽같은 휴가를 비 홀딱 맞고 일만 했으니, 아버지가 미안해서 어쩐다냐?”

안쓰러운 표정과는 달리 눈길에는 흐뭇한 애정이 그득했다.

“아뇨. 오랜만에 아버지랑 시간을 보내서 좋긴 했는데, 오늘은 그냥 가면 안 돼요? 내일 아침 일찍 가시죠? 빗길이 너무 위험하단 말이지.”

그는 몰아치는 빗줄기에 뻑뻑대며 작동이 깔끔하지 않은 낡은 와이퍼가 유독 거슬렸는지 근심 어린 얼굴이었다.

“다른 거라면 그랬겠는데, 약이 잖냐. 노인들은 언제 어떻게 안 좋아질 줄 몰라. 더구나 혼자 사니 돌봐줄 사람도 없고. 약만 기다릴 텐데, 하룻밤이 일 년 같지 않겠니? 아까 차만 안 고장났으면 벌써 갔을 것을.”

“그럼, 제가 운전할게요. 아버지 보단.”

아들은 가까운 곳에 세우라는 듯이 안전띠를 풀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허어! 아니라도. 넌 이 길이 낯설고, 아빤 장사로 10년이잖냐. 다 왔다. 이제 한 20분만 가면 되니까. 어서 벨트나 다시 해.”

“어? 아. 아버지!”

그가 놀란 것은 반대편 도로에서 거대한 바위 뒤로 들뜬 하얀 불빛으로 굽은 도로라는 직감 때문이었다.

“왜? 커브 길이라고? 알아. 아빠가.”

근 10분 이상 오가는 차가 한 대도 없는 궂은 날씨의 늦은 밤, 잠시 놓쳤든 시야에 뜨끔 했던 아버지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기려는 찰나, 강렬한 하얀 광채가 순식간에 어둠을 찢고 그들을 덮쳐왔다.

“아버지!”

“어? 어? 저, 저!”

우려했던 강렬한 빛은 커브 길의 중앙선을 넘어 달려든 덩치 큰 SUV 승용차였다.

“끼이익! 꽝!”

거의 동시였다. 급격히 감속한 SUV 승용차가 미끄러지는 것과 급히 핸들을 꺾은 그들의 차가 분리대를 넘어 낮은 갯바위로 추락한 순간은.

“꽈 광! 쾅! 쾅!”

“아 악! 윽! 으악!”

어두운 빗길의 분리대를 넘은 차는 순식간에 갯바위를 타고 몇 차례 구른 뒤 바위틈으로 처박히고 말았다.

“우르르! 철썩! 철썩!”

창졸간에 벌어진 사고의 비명과 파열음은 거친 파도의 굉음과 세찬 빗소리에 묻혀버린 채 사선으로 박힌 차체의 전조등만 흐릿하게 발하고 있었다. 곤두박질친 갯바위로 수십 번의 파도가 쓸고 가는 사이, SUV 승용차의 후미등은 밝아졌다, 약해지길 반복했지만 움직임이 없었다. 이윽고 무겁게 열린 조수석을 나온 그림자가 헤드라이트를 등지고 분리대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빗소리를 닮은 거친 숨소리로 켠 손전등을 전복된 차량을 찾아 길게 뻗쳤다. 엄청나게 휘황한 빛. 탐사용 고휘도 전등이었다.

“뭐해? 안 찾아? 그럼 빨리 타던가! 재수 없게 누가 지나가면 졸라 꼬인다?”

스르륵. 창문을 내린 운전석에서 짜증 섞인 고함이 들리자, 방향이 없던 흰색 LED 불빛이 직선의 갯바위를 향해 쏘아졌다. 그러자 빗줄기의 조밀한 형체를 빗살무늬로 변형한 빛 터널이 우락부락한 검푸른 굴곡들을 차례로 훑기 시작했다.

“자. 장사하는 차나 봐? 화물차.”

“화물차? 물건 싣고 다니는 차라고?”

“그런 것 같아.”

잡다한 생활용품이 갯바위 여기저기로 흩어진 것에 짐작한 손전등 남자의 목소리는 초점이 어수선한 불빛의 굴절만큼 흔들렸다.

“젠장! 그냥 처박을 것이지, 꺾긴 왜 꺾어?”

자신이 중앙선을 침범해 일으킨 사고임에도 일말의 죄책감은커녕, 상대를 탓하는 사이, 손전등의 남자가 갯바위로 내려가 더듬거리며 가고 있었다. 거세게 뺨을 때리는 빗줄기와 블랙아이스와 같은 바위 표면이 자꾸만 중심을 잃게 하여 불안했지만, 접근을 계속했다.

“야! 이 미친놈아. 너도 죽고 싶어서 그래? 거길 왜 기어가?”

초조하게 지켜보다 뛰쳐나온 차 안의 남자가 애꿎은 범퍼를 발로 차는 그때, 사고 차를 찾은 손전등이 운전석을 비추다가 들이친 파도에 중심을 잃고 허공을 휘저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방향을 잃었던 불빛이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도로 위 남자를 향해 빠르게 흔들렸다.

“살았어! 이 사람 안 죽었어. 빨리. 119! 빨리!”

허둥지둥 양팔을 흔들어 시급함을 알린 그가 현장에 접근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갯바위를 건너 차 문을 열어젖혔다.

“아직 살아있다고, 휴대폰. 휴대폰 어딨니? 응? 그게 어딨더라? 내가, 그러니까.”

거친 빗물이 튀어 금세 앉았던 의자와 틈새, 손잡이 홈까지 흠뻑 젖었고, 정신없이 더듬거리는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처럼 빨갛게 부풀어 올라와 있었다.

“야! 너 지금 뭐 찾아? 돌았어? 정말 119 부르게? 야, 씨발 형 새꺄! 그다음은? 엉? 다음은 어쩔 거냐고? 지금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 몰라? 저 떨거지 때문에 여기서 더 꼬이라고?”

“야! 그래도 아직 살아 있는데 그냥 놔둘 순 없잖아. 우리 잘못으로.”

“찰싹!”

도끼눈을 부릅뜬 남자가 느닷없이 형의 뺨을 후려쳤다.

“잘못은 무슨! 섰으면 됐잖아. 틀긴 왜 트냐고! 좆까는 소리 그만하고. 너, 한 번 더 119 소리하면 죽여버린다. 그리고 누가 알겠어. 봐? 여긴 카메라도 아무것도 없잖아? 그럼, 우리도 없는 거야. 알았어?” 

전신이 비에 젖은 그는 보닛에 손을 짚고 무언가 골똘하더니 씨익하고 웃었다. 그리고 차 뒷문을 열고 달그락거리며 무언갈 찾기 시작했다.

“그래. 그러면 깔끔하잖아. 킥킥! 하여튼 머리 하난 좆나 잘 돌아요.”

휴대폰 불빛이 뒤적이던 손을 따르다 멈춘 건, 반쯤 마시고 남은 술병을 잡고서다.

“씨발! 비도 존나 오는데 음주 운전을 왜 해? 위험하게 시리. 그러니까 뒈지는 거지. 하여튼 술 처먹고 운전대 잡는 인간들은 죽어도 동정할 필요가 없어요. 큭큭!”

얼굴의 빗물을 거칠게 훔친 그가 사악하게 웃었다.

“술? 술은 뭐하게?”

“아직 숨이 붙었다고 했지?”

“....”

“가지고 가서 입에 쑤셔 넣어.”

“이…. 이걸? 미쳤어”

“그래. 저 인간은 음주 운전으로 여기서 날아간 거야. 우리 때문이 아니라고.”

“야...너, 너...”

“이런 병신같은 새끼. 비켜!”

냉큼 따르지 않고 머뭇거리는 형을 잡아챈 동생이 빠르게 분리대를 넘어 갯바위를 가로질렀다. 기우뚱, 기우뚱. LED 불빛이 접점 없이 그의 휘청대는 몸통을 따라 흔들리다가, 결국은 사고 차의 운전자 얼굴에 고정되었다. 상태는 참혹했다. 밀린 운전대에 가슴이 눌리고, 유리를 뚫은 바위 모서리가 얼굴을 짓이긴 모습이었다. 

“아! 씨발. 저, 피 좀 봐. 좆나 아프겠네. 으...”

일말의 죄책도 동정심도 없는 그가 쪼그려 앉아 비춘 LED 불빛만큼, 차가운 빗줄기가 사고 운전자의 으깨진 뺨으로 연신 쏟아졌다. 그러는 중에도 끊어질 듯이 가늘게 붙은 숨소리가 빗줄기에 섞여 쌕쌕거렸다.

“아, 씨발. 존나 미안해요. 미안하긴 한데, 그렇다고 창창한 내가 죽을 순 없잖아요. 다음 생엔 부자로 사시고, 잘 가세요. 내가 술 한 잔 드릴게. 드시고 싹 다 잊고 가시는 거야. 아셨죠?”

애처로운 눈길로 바뀐 그의 눈꺼풀이 꾹 닫혔다, 열리고. 마개를 딴 술병이 운전자의 입술과 치아 사이를 파고들었다.

“끄. 끅. 끅! 끅.”

강제로 추켜세운 운전자의 턱 끝은 그나마 미세한 기도의 틈을 막는 액체를 감당할 수 없어 심한 경련을 보인 후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순간, 찡그린 미간은 수분에 젖은 독한 술 냄새 탓인지, 다른 이유에서인지 분명치 않았다. 그는 천천히 운전자를 비추어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후에 일어섰다. 그러고는 갯바위 먼 곳으로 술병을 힘껏 던져버렸다.

“씨발. 어쩔 건데? 죽을 인간 죽는 거고, 살 놈 사는 거 아냐? 아니냐고!”

파도에 맞서듯 두 팔을 크게 벌린 그가 광기 섞인 고함을 치는 그때, 소매에서 떨어진 희끗한 무언가가 운전석 옆으로 떼구루루 굴러갔다.

“야! 가자! 다 끝났어!”

눈깔이 제대로 뒤집힌 그가 LED 불빛을 흔들어 끝났음을 알리자, 형의 검은 그림자가 풀썩 주저앉을 걸 보고는 욕설을 내뱉었다.

“이 씨발아. 너하곤 같은 애비 둔 것 말고는 좆도 없거든? 이 일로 빌빌대다 헛짓거리 떨면 늬 목구멍에도 술병을 꽂아 버릴 거니까, 정신 차려라!”

그러나. 그는 올 때도 갈 때도 제가 스쳐 지난 바위 옆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그를 따라 움직이는 살기 등등한 눈동자가 웅크려 그의 잔혹함에 절규하고 있음을. 추락 당시 안전띠를 매지 않아 튕겨 나온 아들이 전신 골절로 눈만 부릅뜬 채 피눈물을 흘리는 것을.      

   그들 형제가 떠난 도로 위에선 한참이 지나고, 흐르는 동안에도 차량이라곤 볼 수 없었다. 아들의 안타까운 눈길은 여전히 기울어진 아버지에게 있었지만, 야속한 빗속의 어둠은 그마저도 허락지 않고 시야에서 감춰버렸다. 그렇게 소리 없는 오랜 흐느낌은 비가 그치고 아침 태양이 뜰 무렵에야 사그라들었다. 장시간 방치된 부상으로 가빠진 호흡이 의식을 혼미한 상태로 몰아갔기 때문이다.

“아..버. 지..”

기어코 아버지 곁으로 기어서 왔지만 거기까지였다. 이젠 억울하단 생각도, 그들에 대한 분노도 까마득해졌다. 머릿속엔 오로지 아버지의 주검을 온전히 수습하고 푼 바람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 할 수 없음을 느끼고 있었다. 단지 지금에 허용된 것은 아버지와 살이 닿은 채 죽을 수 있는 미약한 힘뿐이었다. 그는 온기 없는 아버지 얼굴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찌그러진 문짝에 최대한 밀착해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주마등처럼 지난날들이 흐릿하게 스치고 한 줌의 숨결이 폐부로부터 차갑게 나오는 때, 선명치 않은 누군가가 서광에 핀 홀로그램처럼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착시였을까? 아니면? 순간, 죽음의 사신을 떠올린 그가 억지 숨으로 가슴을 부풀리자, 조용히 내려보던 홀로그램의 손이 가슴에 살며시 얹혔다.

“허억!”

일순간에 쏟아지는 기운이 순하디순한 온기로 전신에 퍼지면서 심신이 평온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이어진 부드러운 음성은 마치 환청의 신비로 귓전에 닿았다.

“다행이구나. 조금만 늦었어도 손을 쓸 수 없을 뻔했다. 아버지는 도울 수가 없구나. 잊지 마라. 네 안의 선한 기운이 널 살렸음을.”

순간 정신을 잃었던 그가 깨어나 본 것은 하늘을 선회하는 흰 구름 같은 갈매기였다. 

까만 갯바위 머리에 서서 내려보던 신비의 눈동자. 꿈이었을까? 그는 몸을 움찔거려 봤으나 허사였다. 그러나 극심했던 고통과 실낱같던 호흡은 기적이 일어나 있었다.

“푸드덕!”

마치 그가 살아났음을 확인이라도 한 듯, 머리맡 흰 갈매기가 깃을 펴 한차례 선회비행을 하고 수평선을 향해 날아갔다. 아버지의 얼굴을 어루만지다가 손끝에 걸린 금속 조각. 정신을 잃는 와중에도 온 아귀힘으로 손바닥에 박아 넣은 커프스단추였다. 금 재질의 커프스단추엔 영어 이니셜 H가 미려한 곡선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사고 현장의 차선을 막은 구급 요원과 경찰이 분주할 때는, 밤새 퍼붓던 비가 멈추고 굉음의 거센 파도도 잠잠해진 아침나절이었다.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려는 절단기 톱날이 불꽃을 일으키는 중에 들것에 실려 가는 아들은 통한의 피눈물로 증오에 잠식되었다. 반드시 찾아내 죽여버리겠다는 원한의 주먹에서 불거진 지렁이 힘줄이 짙푸르게 도드라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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