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장비는커녕 그 흔한 삼각대 하나 가지고 있지 않던 나의 첫 번째 촬영 장비는 콩이 담긴 페트병과 셀카봉이었다.
셀카봉에 핸드폰을 장착하고 콩이 담긴 페트병에 끼워 책상에 앉아 무릎 사이에 셀카봉을 낀 다음, 슬라임을 만지는 손을 촬영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눈물겹다.)
그러다 보니 손이 움직이는 대로 화면에는 지진이 났고, 울렁이는 화면을 보는 내 속도 울렁울렁했다. 배 갑판에서 찍은 것 같은 화면을 나의 첫 작품이라며 현 남편이 된 당시의 남친에게 보내줬더니 한숨을 쉬면서 핸드폰 지지대를 주문해 줬다.
당시 슬라임 유튜브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해서 그런지, 얼굴을 공개하고 멘트를 재밌게 치면서 슬라임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채널이 많았다.
하지만 카메라 공포증이 있고 수줍은 나는 화면에 내 얼굴이 나온다는 생각만 해도 말을 더듬으며 로봇 말투를 구사하는 구시대 사람인 데다, 어린이들이 주로 보는 채널에 상큼하지 못한 얼굴을 내밀어도 될까 싶은 생각에 손만 나오는 영상을 찍기로 했다.
당시에 내가 좋아하게 된 베이킹 채널이 있었는데, 음악을 깔지 않고 빵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ASMR처럼 들을 수 있게 잘 살린 영상미 좋은 콘텐츠가 주로 올라왔다. 나는 그 채널을 나의 롤모델로 잡고, 마치 베이킹 채널을 보듯 슬라임 만드는 장면을 볼 수 있는 영상을 찍어보기로 했다.
베이킹 영상에서 설탕 몇 그람, 밀가루 몇 그람을 상세하게 알려주면서 만드는 과정을 찍듯이 슬라임 영상도 모든 레시피를 상세하게 공개하면 보는 맛도 있고, 따라 하기도 쉽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은 이런 형식의 슬라임 영상들이 굉장히 많지만, 처음 내가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런 영상이 거의 없었다.)
유튜브 관련 장비를 찾아보니 촬영도 장비 빨 인지, 전문 카메라부터 조명, ASMR용 마이크까지 종류가 무궁무진했다.
하지만 직업과 관련 없는 취미생활에는 좀처럼 지갑을 열어주지 않는 나의 짠순이 이성은, 조명 대신 아침 10시의 햇살을, 카메라와 마이크 대신, 아이폰 6을 사용하라고 했다.
나는 아무리 밤샘 작업을 하더라도 아침 9시 반에는 일어나, 내 방에 가장 햇살이 적절하게 들어오는 아침 10시쯤에 흰색 철제 서랍장 위에 슬라임을 펼쳐놓고 촬영을 했다. 편집은 간단한 영상 편집 어플을 이용했다. (나중에는 흰색 철제 서랍장에서 슬라임으로 바풍(바닥 풍선)을 만들 때 자꾸 철커덩 철커덩 쇳소리가 나는 바람에 이성과 극적인 타협을 하여 다이소에서 5천 원짜리 흰색 접이식 테이블을 샀다.)
핸드폰 지지대와 흰색 철제 서랍장
처음 한 달 동안 채널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하지만 나는 딱히 유튜버가 될 생각이라기보다는 내가 만든 슬라임을 영상으로 남기는 게 주목적이었던지라 꾸준하게 영상을 업데이트했다.
그러다 보니 간간이 댓글이 달렸다. 허접한 채널에 와 주시는 것도 감사한데 댓글까지 남겨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니! 너무 송구하고 감사한 마음에 일일이 답글을 달았다.
그런데 그중 한 명에게 알 수 없는 요청이 들어왔다.
<슬라임도 예쁘고 영상도 예쁜데 저랑 반모 하실래여? 저 12살이에여.>
반모가 뭘까.
슬라임이 예쁘고 영상도 예뻐서 하는 거라면, 반짝반짝한 걸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반반한 슬라임 모양?
혼자 말도 안 되는 단어 조합들을 생각해보다 검색창에 ‘반모의 뜻’을 쳐봤다.
‘반말 모드’의 줄임말.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아하! 12살의 아이가 나와 반말을 하고 싶어 한다는 얘기였구나?
뭐라고 답을 달아야 하지? 내가 너의 나이에 3을 곱한 나이라도 괜찮겠느냐고 물어봐야 하나, 그냥 같은 초딩인 척, ‘만반잘부 반모 고고!’ (만나서 반가워 잘 부탁해 반말모드 가자)를 외쳐야 하나.
반나절을 고민하다 그냥 예의 바르게 “제가 나이가 많아서 반모는 힘들 것 같아요. 구독 감사해요.”라고 극히 평범한 멘트를 남겼다.
혹시나 어린 나이에 마상(마음의 상처)이라도 입을까 걱정했더니, 웹상에서 이런 요청과 거절은 매우 흔한 듯 나의 첫 반모 요청 어린이는 아주 쿨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유튜브의 생명은 소통이라길래, 달리는 모든 댓글에 답글을 달았더니 내 채널이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좀 인기가 생긴 모양이었다. 댓글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이런 댓글도 심심찮게 달렸다.
<여기가 모든 댓글에 답글을 달아준다는 그 전설의 채널인가요?>
유튜버가 연예인도 아닌데 아이들은 답글을 달아주고 소통을 해주는 것 자체를 신나고 재밌어했다. 엄청난 이모티콘 폭탄과 함께 ‘사랑한다’는 고백하는 댓글도 주기적으로 달렸다. 심지어 일상을 공개하는 브이로그를 찍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의 채널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조차 인색했던 나도 ‘소통’의 재미에 점점 빠져 들어갔다. 모르는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이 아는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보다 더 자유롭고 맘 편하고 재밌는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됐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만들었던 슬라임영상
나는 다른 채널들을 참고해, 채널에서 이벤트도 열고 무편집 영상도 공유하면서 활발하게 구독자 수를 늘렸다.
구독자수가 만 명을 넘으며 친구들에게서 초통령이라는 놀림을 받았고, 외국에 사는 조카들은 내 채널의 열렬한 구독자가 되었다. (어린 한 조카는 이제 이모가 거리에 다니면 사람들이 다 알아보겠다고 얘기했고, 나는 손 밖에 출연을 하지 않는 영상인데다 구독자도 만명뿐이라 그 의견에는 회의적이라고 대답해줬다.)
나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동시에 운영 중이었는데, 사실 초창기에 더 열심히 했던 건 인스타였다.
인스타에 몇 달을 내만슬(내가 만든 슬라임) 위주로 영상을 올리자, 팔로워 중 몇몇이 슬라임을 팔아달라는 요청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농담으로 여기고 넘쳤는데, DM으로 간곡하게(?) 부탁하는 이들도 생겼다.
무엇인가를 판다는 건 내 인생의 길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무언가라고 생각했었는데...
누군가 내 슬라임을 사고 싶어 한다는 걸 알자, 내 작품의 진가를 알아봐 준 사람을 만난 예술가의 심정이 되어 나는 무턱대고 개인사업자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