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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Feb 20. 2023

[보육원 봉사활동을 시작 했습니다]01

아이들과의 첫 만남

2월 12일, 지난 주말 신랑이 활동하는 봉사 모임에서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신랑이 활동을 시작한 봉사모임은 기존 다른 큰 봉사단체에서 별개로 제대로 된 봉사 활동을 하고 싶어서 새롭게 만든 봉사 모임이다.

그전엔 그냥 하천변 쓰레기 줍기 봉사, 도시락 봉사 같은 위주의 활동을 하다가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어서 보육원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기존 단체가 남자들로만 구성이 되어있던 터라 이번에 하는 모임도 남자회원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보육원이다 보니 여자손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까 해서 모임회원 분들의 부인들도 시간이 될 때 함께 하자고 했었다.

하필 이날은 나만 시간이 돼서 첫 봉사에 함께 하게 되었다.


처음 보육원 봉사를 준비할 때 원장님과 뵈었던 건 몇 분 안 되어서 이 날 잠시 원장님과 잠시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고 오후 야외활동 시간에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보육원이다 보니 우리 외에도 다른 단체에서도 많이 왔다 갔다 했을 테고, 각자 사정이 있어서 오게 된 아이들인데 이런저런 상처도 많아서 벽이 크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도 있었고,

’ 아이들이 시큰둥하게 맞이해 주면 어쩌지..‘

’이 아이들과 무슨 얘기를 먼저 시작을 해야 할까 ‘

’ 우리들로 인해 아이들이 더 상처받으면 어쩌지 ‘ 하는 별의별 생각이 들어 걱정도 되었었다.


원장님과의 얘기가 끝나고 오후 야외활동시간에 아이들이 운동장에 줄을 서서 우리를 맞이하려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과 처음 인사를 하는 자리, 서로 어색하게 마주 보고 인사를 나누고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과 중고등 학생, 그리고 대학생 아이와 남자들은 축구를 하러 갔고

뻘쭘하게 남은 나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선생님과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보육원에서 아이들한테 필요한 물품이 뭐가 있는지..

한참을 고민하시더니 선생님은 아이들이 학습지 같은 문제집을 풀고는 있지만 문제집도 소모품이다 보니 새로운 문제집이 좀 더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혹시 여자 봉사자들이 더 있는지 여쭤 보시길래 여자분이 필요한 봉사가 뭐가 있는지 다시 되물어 보니

미용 봉사를 얘기하셨다.


50여 명의 아이들이 보육원에 있는데 여자아이는 그렇다 치고, 남자아이들은 한 달에 한 번은 머리를 해야 하니 비용도 비용이지만 그 아이들을 데리고 커트를 하러 다니는 것도 여간 보통일은 아닌 듯했다.


아쉽게도 우리들 중엔 미용종사자는 없었던 터라 한번 알아보겠다 말씀드리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처음 보는데도 서슴 없이 해맑게 달려와 안기는 아이부터, 예쁜 부츠를 신었다고 공주님 자세로 신발을 보여 주는 아이, 나를 선생님이라 했다 이모라고 했다가 부르는 호칭정리가 안 돼서 혼란스러워하는 아이, 자기만 쫓아오라고 내 손을 잡아끌고 여기저기 다니던 아이, 보육원 여기저기를 소개해주겠다고 데리고 다니던 아이까지.


처음 걱정했던 거와는 다르게 다들 너무 밝고 예뻤다.

싸우고 다투는 아이들 없이 서로 모였다 헤쳤다 하며 이런저런 놀이들을 하다가 간식시간이 되었다.

우리가 준비한 간식으로 피자와 치킨, 시댁에서 받아온 딸기까지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줬으면 했는데

생각보다 우리가 준비한 양이 적어서 아이들이 못 먹을까 봐 조마조마했었다.


다행히도 바로 저녁시간이라 간단하게만 먹었어야 해서 적당히들 먹고 헤어지는 인사를 하려는데

내 옆에 앉아있던 5살 아이가

선생님, 나랑 색칠공부 하고 저녁도 먹고 가요!
선생님도 oo 랑 더 놀고 저녁도 같이 먹고 싶은데 선생님이 이제 일을 하러 가야 할 시간이라 우리 다음에 또 놀면 안 될까?

내 거절에 아이가 상처받으면 어쩌지.. 떼를 쓰면 어떻게 달래줘야 하나 조심스레 얘기를 했는데

이 아이는 너무도 쿨하게

그래요? 그럼 선생님 다음에 또 와서 놀아줘요!
 하며 웃는데 정말 눈물이 핑 돌더라..



어린 친구들 사이에 우리 큰애또래의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와 잠시 얘기해 보니 이제 막 고1이 된 아이.

우리 큰애와 동갑이었다.

아이들이 어지러 놓은 장난감 방을 깔끔하게 정리해 놓고, 선생님들 일을 도와드리려고 옆에서 왔다 갔다 하고

간식시간에 훨씬 어린 동생들을 챙기고, 다른 고등학생, 대학생 여자 아이들은 우리와 눈도 안 마주치고 말도 한마디 안 하는데

이 아이는 말장난도 하면서 너무 편하게 대해주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자꾸 큰아이와 겹쳐 생각이 들었다.

같은 고1이지만 훨씬 어른스러운, 이 아이가 3년 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어떻게 살아갈까..

지금은 보육원에서 만 24세까지는 있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20살이 넘은 성인이 되어서도 보살핌을 받아야 할 아이일 텐데.. 하는 걱정이 많이 들었었다.


아이들과 마무리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신랑에게 선생님과 했던 얘기를 전했고

다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첫 봉사를 마치고 나서 느낀 건 아이들한테 우리가 힐링받고 온 거 같다.

너무 좋았다는 얘기들을 했다.

다들 느낀 건 똑같구나 싶었다.


일을 마치고 저녁에 늦게 집에 들어갔었을 때 미용봉사에 대한 얘기를 잠시 나누다가 신랑도 나도 서로 한번 배워서 아이들한테 해줄 수 없을까 하는 얘기를 했다.

시간적으로는 내가 더 여유가 있으니 내가 하겠다고 얘기를 하고

다음날 학원을 알아보고 학원에 가서 상담을 하는데

커트만 배워서 할까 하던 생각에서 이왕이면 자격증까지 따보자 싶어 자격증반과 커트반을 함께 수강하기로 하고 준비물까지 함께 결제를 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갑작스러운 목돈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다음에 아이들을 만나서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설레었다.


그리고 그 고1 아이에 대해 얘기했다.

그 아이가 자꾸 눈에 선한데 개인 후원을 해주고 싶다고.

우리도 사정이 좋은 건 아니지만, 외식비 한번 아껴서 이 아이한테 해줄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도 흔쾌히 그렇게 하라 했고.

한 아이부터 시작해서 좀 더 여유가 되면 다른 아이들도 차츰 늘려가보자며..


다음 달에 아이들을 또 만나러 간다.

3월이 너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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