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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온다
1. 26년(80-54),멈춘 시간.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8살 어린 나이에 학교가기를 포기하고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몸집으로 매일 나무를 하고 마당을 쓸고 먹는 수북한 보리밥 한 그릇이 참 맛있었습니다.

몇 달 다니지 못한 학교가 한이 되어 두고두고 그리운 곳으로 바뀔 때까지 남의 집 머슴살이는 계속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아들 하나 있는 남자의 후실로 들어가 처음 낳은 아이가 바로 소년이었습니다. 장남도 아닌, 그렇다고 차남이라고 하기도 정확하지 않은 위치에서 이복형과의 갈등은 하루하루 깊어만 갔습니다.     

 형이 베트남을 다녀온 후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또 어디론가 긴 출장을 다녀오더니 또 많은 돈을 벌어왔습니다. 결혼도 하고 자식도 여럿 낳았습니다. 사업도 잘되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형은 노름을 시작했습니다. 몇 년을 그렇게 지냈습니다. 하던 사업도 다 말아먹고 노름하는 습관은 여전했습니다.     

 시골 논, 밭을 하나씩 팔아먹기 시작한 형은 집 한 채만 남겼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형은 그 집에서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가까이 사는 넷째 아들 집에서 지냈습니다. 눈치가 보여 밥도 잘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둘째 아들 집으로 쫓겨 왔습니다. 늦둥이 딸아이 하나 키우고 사는 작은 집이었습니다. 며느리는 정성껏 시어머니를 모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치매에 걸렸습니다. 음식을 먹지 않고 장난을 치는가 하면 밤새 한숨도 자지 않았습니다.      

  낙엽이 굴러다닐 무렵, 감기인가 싶은 가벼운 기침을 하다 3일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가 남긴 작은 통장은 예쁜 손녀딸의 몫. 손녀딸은 몇 년 간 고이 모셔두었더랬죠. 할머니의 죽음을 두고두고 이야기하는데 그때마다 참 신기하다 하다가 나이가 좀 들어서는 나도 할머니처럼 죽고 싶다 합니다. 어쩜 그렇게 고운 치매에 걸리셔서 3일 앓으시다 조용히 돌아가셨는지 참으로 신기하다 하고 ‘복’이다 합니다.     

 이후 오랫동안 어머니의 인생을 돌아보며 이야기하다 슬퍼하다 분노하다 조금은 담담해졌습니다. 가까이 사는 동생이 찾아왔습니다. 어머니 이야기를 하다 아버지 이야기를 하다 형님 이야기를 하다 왜 자신에게는 돈 한 푼 주지 않고 다 나눠 먹었냐는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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