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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재 Mar 21. 2019

마을의 기억

풍도

풍도라는 섬이 있다. 경기도 안산 대부도의 방아머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두 시간가량 달려야 닿는 외진 섬이다. 섬은 따스함을 머금은 풍경들과 지천으로 핀 야생화로 아름답다. 인구 이탈과 주민들 고령화라는 고민 역시 가지고 있다. 많은 섬과 농촌처럼.

풍도마을 전경

낙후된 섬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 안산시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나는 연구실 소속으로 지도 교수님, 동료들과 함께 크고 작은 행사를 준비했다. 그중, 주민들이 가이드가 되어 섬 구석구석을 걷는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는다. 마을 어르신들은 스스로가 풍도의 홍보대사인 듯, 켜켜이 쌓인 세월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형식이다.



도시로부터 1박 2일간의 체험 여행을 신청한 가족들과 함께 마을 어르신들의 뒤를 따라 걷는다. 평생을 이곳에 머물렀을 할아버지 할머니, 그들은 아이처럼 마을의 이야기를 전한다. 도시의 아이들 역시 이 모든 것이 낯설지만 즐거워 보였다. 잠시 나의 유년기가 생각났다. 뒷산 구석구석을 매일같이 형과 함께 오르던 기억, 우리에게 낯선 곳은 곧 놀이였다.

풍도의  뒷산을 오른다. 수레도, 차도 없던 시절에 어머니들은 지게를 메고 밭으로 물을 날랐단다. 그 뒤로 풍도의 자랑인 야생화 군락지가 있다. 복수초, 풍도바람꽃, 풍도대극 등 생태계적으로 매우 가치가 높은 생물자원이 즐비하다. 따라서 매년 야생화 개화철이 시작되면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야생화들을 감상하려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주민들은 섬을 찾은 외지인들이 반갑기도 하지만 아픔도 있는 게 사실이다. 조금 더 야생화를 예쁘게 카메라에 담기 위해 흙을 파헤치기도 하고, 심지어는 뽑아가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뒷산에서 내려와 마을 너머의 '붉배'와 채석장으로 향했다. 붉은 바위로 유명한 '붉배'는이국적인 풍광으로 많은 캠퍼들에게 각광받는 곳이다. 많은 이가 이 바위 위에서 텐트를 치고 사진을 찍고, #풍도와 #붉배를 생산해낸다. 그 과정에서 이 곳은 아파했다. 캠프파이어에 검게 그을린 바위와 구석구석 버려진 쓰레기들로 말이다. 사실 이곳은 나에게도 의미가 깊은 곳이다. 몇 해 전 'EBS 하나뿐인 지구' 백패킹을 다뤘던 에피소드에 출연자가 되어서 이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곳 주민들은 거대한 배낭을 짊어진 캠퍼들이 불편한 눈치다. 많은 곳들이 위와 같은 문제로 시름을 앓고 있는 게 사실이다. 때문에 백패커들에게 'Leave No Trace'라는 흔적 남기지 않기 운동이 더욱 절실해 보인다.

붉배 전경

해가 지기 전 우린 채석장에 섰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건축 자재로 쓰일 돌을 분주히 캐던 채석장 사업체는 불법행위와 마을과의 갈등으로 철수했다. 남은 자리에는 버려진 중장비들과 인간이 자연에 남긴 거대한 상처로 채워져 있다. 이곳을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려놓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데도 그저 방치돼 있다. 훼손된 자연을 다시 복원하기란 시간과 비용, 기술적으로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마치 전 지구적인 사정을 집약해 놓은 듯, 풍도의 버려진 채석장은 그렇게 고요히 남아 있다.

채석장의 복원을 두고 사업채와 지자치는 몇 해째 법정 분쟁 중이다.


채석장이 버리고 간 깨진 돌멩이들을 아이들은 가지고 놀았다. 태양이 지는 모습을 보며 바다로 힘껏 돌멩이를 던진다. 어른들 잘못에도 아이들은 연신 해맑은 것이 마음에 남는다.


아이들과 함께 채석장이 남기고간 깨진 돌멩이를 바다로 던지며 놀았다.




1박 2일간의 체험학습이 끝나고 마을 커뮤니티 공간에 모두 모였다. 간단한 설문조사와 인터뷰 등을 진행하고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이 섬에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다시 듣게 되어 기쁘다며 이장님은 울먹이셨다.

하루 한번, 풍도를 오가는 배

이 글은 조선일보 '일사일언' 칼럼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07/20190307001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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