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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n Dec 07. 2024

책을 읽으면 축구가 늘어요

휴대폰 중독자가 되어버렸다 큰일이다

하나 둘 셋 기법이라는 것을 쇼츠에서 봤다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외치고 휴대폰을 끄고

벌떡 일어나는 기법이란다

쇼츠와 알고리즘들에 피폐해져 가는 나를 못 참겠어서 속으로 외쳐본다

"하나 둘 세엣!!"... 벌떡!!!!!

끄고 일어나기는 무슨 하나 둘 셋을 4-5번쯤 세다가

또 다른 콘텐츠 속의 알고리즘에 빠져

한참을 늪에서 허우적 댔다

지나버린 시간 몰려드는 현타

피고 싶네 시가 맞아야 돼 빠따

(이건 그냥 라임 한번 맞추고 싶어서요 )(시가 안 핍니다)


점점 이런 낭비들이 습관이 되어간다

아니 이미 되어버렸다

그 시간들에 나에게 도움 되는 것들을 했다면

나는 아마 하버드에 가있을 것이다

(사실 못 가요 죄송합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칼을 뽑아 든 마음으로

"책을 왕창 사서 돈 아까워서라도 읽게 해야지"라는  

자아조련법을 시도하려 책방으로 향했다

사실 원래의 나는 책벌레였다 못 믿겠죠?

"책을 안 읽었더라면 축구선수가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살 정도다


책을 처음 접한 건 이때였다

14살 전국에서 잘한다는 선수만 모아놓은 포철중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고향인 제주도와 가족을 떠나

육지로 왔다

한 코치님이 우리를 앉혀놓고 많이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지금 너희 옆에 앉아있는 친구들, 졸업할 때도 옆에 앉아있을 거 같아? 절대 아니야."

가장 무서운 말이었다

유스팀인 포철중은 20명 정도를 뽑고

절반이상이 잘리는 구조였다


어느 날은 휴가를 갔다가 기숙사에 돌아왔는데

옆침대에서 생활하던 친구의 이불과 짐들이 사라졌다

"뭐야 ㅇㅇ이 아직 안 들어왔네"

"ㅇㅇ이 잘렸대..."

"어?...?"

서로 같은 꿈 하나를 바라보고 가족들을 떠나와서 매분매초를 함께 보낸 친구가 이런 식으로 떠나간다

그럴 때마다 나는 펑펑 울었다

울면서도 이번에 나는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또래선수들 사이에서 확실한 재능을 가진 선수가 아니었기에 이런 서바이벌 속을 살아간다는 건

매일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축구가 재밌어서가 아닌 그냥 살아남아야 하니까 했다

키도 거의 젤 작고 몸은 생선 까시만큼 말랐던 나는

(입학 당시 146cm, 36kg)

경기장에서 어떤 기술을 써도 힘으로 제압당했다 그냥 간절함 하나로 머리 처박고 하는 것 밖에 없었다


경쟁하는 것도 힘들어죽겠고마 군대보다 더욱 심한

개똥 같은 선후배 문화가 있었다

운동장에서만 머리 박고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숙소생활을 하며 더 많이 자주 머리를 박았다

속된 말로 “대가리 박기” 땅에 두 손을 뗀 뒤 머리를 박고 버티고 있는 아크로바틱 한 체벌이다

그래서 난 헤딩을 잘 못한다 왜냐 그 시절 이후로 정수리 쪽 머리가 부풀어 올라서 머리가 세모가 되었기 때문이다 (믿는 사람 없겠죠?)

몸에는 항상 멍자국이 있었다

멍멍이의 아기들 같은 선배들이 맨날 때렸기 때문이다


이런 하루하루 속에서  

"감독님 저 그냥 축구 안 할랍니다“ 라고 시원하게 말씀드리고 떠나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다

악당 같은 몇몇 형들 쭉 탱이를 한 대씩 꽂고 팀에서 나오는 상상까지 아마 내 상상력은 이때 가장 많이 발달이 됐을 것이다


힘든 생활 속에서 축구적으로 슬럼프 같은 시기가 오고실수에 대한 두려움에 위축된 상태로 매일 운동장에 나설 때쯤 우연히 학교 교서관에 갔다가 들고 온

책 "어떻게 배울 것인가"를 읽었다

마인드 적으로 내 축구 인생 첫 터닝포인트였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부정적인 나의 사고방식과 실패와 실수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완전히 뒤바꿔놓은 인생 책이었다


이 책에서 교훈들을 얻고

축구장 위에서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었고 점점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축구는 자신감이 전부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감이 생기니 플레이가 훨씬 발전했었다

그때 처음 느꼈다

"아 책을 읽으면 축구를 잘할 수 있겠구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니까

나의 세상이 바뀌었다

이런 깨달음의 순간들에 중독되어 매일 책을 읽었다

이런 책벌레였던 내가 지금은 롤이라는 게임 속에서

벌레 역할을 맡고 있는 게 참 한심스럽다

조금 더 나은 벌레로 돌아오자

휴대폰과 게임을 멀리하자는 다짐으로 이 글을 쓴다


책을 읽고 사유하면서 살아갔던 세상은 언제나 농도가 짙었다

나의 사소한 감정들을 사소하게 여기지 않았을 때

찐~한 세상을 살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졌던 것 같다 더욱 감사하면서 살았고 그렇기에 더욱 행복할 수 있었다


순간들의 밀도가 많은 것보다 한 순간의 농도가 짙은 게 삶을 조금 더 가치 있게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니까! 책 좀 읽고 글 좀 쓰면서!! 이번판엔 무슨 챔피언 쓸까 이런 생각 말고

어떤 책을 읽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살아봐야지 ㅎㅎ


일주일에 글 한편 씩 안 올라오면 저는 다시 그냥 벌레로 돌아갔다고 생각해 주세요,,

그리고 정신 차리게 댓글에 야이벌레야 라고 써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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