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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동 Apr 29. 2020

"리스펙!!!" 사람들은 왜 <기생충>에 열광할까?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에서 4관왕을 수상했다. <기생충>이 전 세계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300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혹자는 질문한다.


“사람들이 좋다고 해서 봤는데,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모르겠어."


<기생충>이 왜 그렇게 큰 인기를 끌었는지 그 이유를 낱낱이 파헤쳐보자.

(주의: 본 게시글은 영화 <기생충>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수상 소식이 전해진 후, 언론에서는 봉준호를 이와 같이 평가했다. "봉준호만의 방식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장르(genre)를 창조했다." 봉준호가 창조해낸 장르가 뭘까. 그것은 사회 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재미있는 극(시나리오) 형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봉준호는 꾸준히 자신이 바라보는 사회 구조의 문제를 곤충과 같은 독특한 장치를 이용해 표현해왔다. <기생충>은 그 완성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볼 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관통하는 사상은 마르크스의 도덕론이다.


"뭐라고? 마르크스라고? 봉준호가 공산주의자였어?"


라고 생각이 드는 사람은 색안경을 벗고 이 글을 천천히 읽어보길 바란다.


마르크스는 기본적으로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두 계급으로 양분된 세계로 바라보았다. 유산 계급과 무산 계급.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말이 어려우니까 간단하게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자.


여기까지는 <기생충>을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기택(송강호)의 가족과 동익(이선균)의 가족의 삶의 공간, 삶의 방식은 영화 내내 극명하게 차이를 보인다. 동익의 집은 넓고 깔끔할뿐더러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끄떡없는 언덕 위에 위치해 있는 반면 기택의 집은 세상 가장 낮은 곳의 반지하 방에 있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봉테일은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그저 그런 감독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기생충>뿐만 아니라 <조커>나 <매드맥스> 등의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경제적 불평등에 관한 주제는 영화계뿐만 아니라 예술계 전반에서도 익숙한 소재다. 문화, 예술계는 대부분 사회 비판적이고 진보적인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 


<기생충>에 나타난 마르크스의 계급의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옳다고 믿는 '도덕'에 관한 철학까지 나아간다.


어려운 설명에 앞서, 먼저 <기생충>에 대한 조금 다른 해석을 해보려 한다. 필자는 영화 내내 기택(송강호)은 동익(이선균)에게 강한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을 거라 본다. 그리고 기택(송강호)이 근세(박명훈)가 아닌 동익(이선균)을 찔러 죽이는 마지막 장면은 그 열등감과 분노 의식이 표출되어 폭발한 것이다.


<기생충>, 기택이 동익을 찌르기 직전 모습.


마지막에 기택이 동익을 찔르는 것은 결코 뜬금없는 전개가 아니다. '봉테일'이 아니던가. 기택이 마지막에 자신의 가족만 챙기는 동익의 모습에 질색하여 갑자기 찔러 죽였다? 이건 영화 스토리 전개상 꽤나 뜬금없는 전개다. 원래 기택은 근세와 투닥거리고 있었다! 봉테일은 그런 뜬금없는 전개를 자신의 영화 속에 집어넣을 사람은 결코 아니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마르크스는 철저한 계급주의자였다. 지금의 평범한 사람의 관점에서 본다면 "왜 그렇게 배배 꼬였어?"라고 할 정도로 부자들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을 강하게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봉준호 감독이 '반동분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봉준호 감독은 현실에서의 불평등을 극적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도덕'라고 생각해서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흔히 우리가 "이것은 착한 것이다, 나쁜 것이다"라고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한 사회 내에서는 착한 것과 나쁜 것을 구분 짓는 '도덕'을 규정하는 지배적인 입장 있다고 말했다. 도덕이라는 것이 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사회 내에서 누군가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사회 내에서 지배 계층(부자들)이 도덕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도덕이 부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그것에는 부자들의 입장을 반영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마르크스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입장은 지배 계급의 이익 논리가 반영된 결과라고 주장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기생충>, 근세가 생활하는 지하실의 책장. 각종 법률 서적들로 가득하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옳다고 믿는 신념, 도덕, 학문 따위가 모두 지배 계급이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마르크스의 관점에 따르면 우리가 옳다고 믿는 '신념', '도덕', '지식'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이다.


(Cf. 이데올로기=사회 집단에 있어서 사상, 행동, 생활 방법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관념이나 신조의 체계. 역사적ㆍ사회적 입장을 반영한 사상과 의식의 체계.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마르크스는 왜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았을까? 마르크스는 중세를 무너뜨린 부르주아(신흥 부자 세력)에 주목했다. 16~17세기 유럽 세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중세의 몰락과 자본주의의 출현이다. 당시에는 신대륙이 발견되고 해상 무역의 발달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상인들이 새로운 사회 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들은 봉건 영주(땅을 많이 가진 귀족)를 몰아내고 새로운 사회 지배 계층으로 부상했다. 그들은 대규모 자본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부자들은 소수여서 똘똘 뭉칠 수 있었던 데다가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자신들이 가진 돈(자본)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많았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부자들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덕분에 그들은 힘을 모아 입법 활동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반면 당시의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바빠 정치에 신경 쓸 여유 조차 없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시민의 투표로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입법 활동을 하지만, 당시에는 입법 활동에서의 부자들의 입김이 훨씬 거셌다.


법이 부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그 법은 누구를 위한 법이 될까?


마르크스는 그 법은 순전히 부자들의 이해 논리, 부자들의 이익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논리라고 주장했다. 법은 사람들의 도덕관념을 이루는 근간이 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마르크스는 부자들은 법뿐만 아니라 사회 다방면에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사회 구성원들이 믿는 신념 체계 또한 부자들의 논리가 강하게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리하자면 마르크스는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도덕' 또한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기 위한 또 다른 착취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생충>이 그렇게까지 표현하고 있다고?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기생충>에서 이러한 마르크스의 사상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리스펙!!!”


근세(박명훈)가 외치는 장면이다. 


마르크스의 시각에 의하면 기택(송강호)과 근세(박명훈)가 가난한 원인은 동익(이선균)이 둘(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한 결과다. 물론 영화에서 동익은 그 둘을 착취한 적이 전혀 없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좀 더 넓고 긴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잠시만, 중학교 역사 시간에 배운 "지배 계급의 출현"이라는 대목을 떠올려 보자. 마르크스는 계급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이 농경 생활에서 생긴 잉여 생산물을 지배 계급이 독차지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렇다면, 기택과 근세는 서로 싸울 것이 아니라 합심하여 동익에게 투쟁하여 동익이 가진 것을 빼앗아 오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영화에서도 이런 시도는 잠깐 나오지만, 


<기생충>, 동익의 가족이 집을 사이 기택의 가족이 파티를 벌인다.


이내 금방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마르크스는 기택과 근세가 합심하여 동익에게 투쟁하지 않고 서로 싸우기 때문에 불평등이 재생산될(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가 계속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것이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도덕'이라고 믿는 것이다. 근세가 "리스펙!!!"이라고 외치는 것은 지배 계급이 만들어 낸 '도덕'을 학습한 결과인 셈이다.


<기생충>


이 장면을 유심히 살펴보라. 근세가 동익에게 존경심을 갖는 것은 단순히 '먹여 살려줘서'가 아니라 한 경제지에 나온 그의 모습을 통해 학습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영화에 나온 경제지는 지배 계급의 이익 논리와 계급 착취 구조를 정당화해주는 수단이 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영화를 바라본다면, 마지막에 기택(송강호)이 동익(이선균)을 찔러 죽이는 것은 결코 뜬금없는 전개가 아니다. 기택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동익에 대해 열등감과 계급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기택이 동익에게 중간중간에 던지는 "그래도 사랑하시죠?"라는 질문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나는 너보다 돈은 없지만, 가족끼리 우애 좋게 행복하게 지낸다.'라는 열등감이 공격성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열등감(계급의식)과 '도덕' 사이에 끊임없이 갈등하던 기택은 마지막에 동익의 그런 비인간적인 행동에 질려 그런 선택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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