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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동 May 12. 2020

서초동이야? 광화문이야? 진짜 문제는… 영화 <더 킹>


“내가 역사야, 이 나라고.” “당하면 반드시 당한 것에 대한 복수를 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 엔지니어링의 철학.”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


주옥같은 대사를 쏟아낸 영화 <더 킹>이 작년 하반기에 새롭게 다시 주목을 받았다. 2016년에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검찰 문제를 통찰력 있게 담아내 호평을 받았다. “당선됐냐고? 떨어졌냐고? 그건 당신이 결정하는 거다.” 마지막 장면에서 박태수(조인성)가 던지는 질문은 검찰 문제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은 선출된 권력(국회의원 혹은 대통령)을 통해 관리되어야 한다.


이는 현실적인 차원에서는 좋은 대안이다. 하지만 영화는 원론적인 차원에서는 그보다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건 당신이 결정하는 거다. 당신이 이 세상의 왕이니까.”라는 마지막 말은 좀 더 깊은 의미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검찰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 현실의 근본적인 문제를 꼬집고 있다. 영화가 보여주는 그 이상은 무엇일까. 영화 속에 나타난 한국사회의 현실을 파헤쳐보자.


(주의: 본 게시글은 영화 <더 킹>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더 킹>


#1. "서울대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주인공 박태수(조인성)는 고등학교 시절 소위 말하는 ‘일진’이다. 공부와 담을 쌓고 지내던 그는 어느 날 아버지가 검사에게 얻어맞는 모습을 목격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한다. 그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단지 권력을 얻기 위해서였다. 권력욕이 충만한 캐릭터인 그는 한국사회의 ‘진짜 권력’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그리고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하는 데 성공한다.


이것은 다분히 한국적인 현상이다.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은 전 국민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박태수와 같이 권력에 대한 욕망이 큰 ‘일진’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학생들은 명문대 진학을 희망한다. 그것은 명문대에 들어갔을 때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권력과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대학 서열의 차이는 단순한 1등과 2등의 차이가 아니라, 그 이상의 차이를 가져온다. 예컨대, 1등이 80을 가져간다면, 2등은 18, 3등과 나머지가 2를 가져가는 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사회 구조 속에서는 당연히 권력욕이 크지 않은 학생이라도 명문대를 위해 달려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다른 내적 동기를 찾을 수 있는 기회는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왜 그 대학에 가야 해?”라는 물음에 “무언가를 공부해보고 싶어서”,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라고 대답할 수 있는 학생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른 꿈이 있다고 해도 일단 80의 권력을 가져다주는 명문대의 성안에 들어가고 나서 그 꿈을 펼치는 게 훨씬 유리하다.


한국사회에서 어느 대학을 졸업했느냐는 노동시장에서 어느 계급의 지위를 차지하느냐로 그대로 이어진다. 명문대를 졸업한 1등은 80의 권력을 가지는 노동 계급을 차지한다. 80의 권력은 전가의 보도처럼 안전하고 든든하다. 그것만 쥐고 있으면 어떤 잘못을 해도 용서가 되고,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밀고 당겨 준다. 권력은 아무리 못해도 떨어지지 않는 유리바닥을 만들어 준다. 반면 그 권력을 쥐지 못한 사람의 삶은 가혹하다. 유리천장 때문에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특정 노동 계급을 뛰어넘기가 힘들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맥도널드 아르바이트생이 열심히 노력해 CEO 자리까지 올랐다는 미국의 사연을 들어볼 수가 없다. 한국에서의 '자수성가'는 흙수저가 명문대에 들어가거나, 직접 사업을 해서 부를 축적하는 두 가지 경우가 전부다.

입시에서의 ‘공정성’에 온 사회가 목매는 것은 실은 ‘대학의 지위=노동 계급의 지위’의 공식이 그만큼 강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명문대라는 성안의 일자리와 그 밖의 일자리의 차이가 극명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시장에서 이러한 권력의 법칙이 강화될수록 입시를 둘러싼 갈등이 사회 전체의 계급투쟁으로 번지게 된다. 그 결과 온 국민은 자녀의 사교육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가 공고화되었고, 사교육에 대한 투자는 다시 대학 입시에서의 서열과, 노동시장에서의 지위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입시제도와 채용과정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성안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이라도 그나마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시나 공채와 같이 성벽안에 들어가기 위한 관문에는 각종 '큰 시험'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 큰 시험들을 타고 넘어야만 성벽안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그 큰 시험을 정하는 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한국의 이러한 권력 법칙은 역사적 현실에서 기인한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며 한국은 무정부 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황폐화된다. 그러한 상황에서 한국이라는 국가는 '형성'되기보다 '건설'되는 데 가까웠다. 이에 더해 권위주의 정부의 국가 주도형 성장 정책은 엘리트에 대한 절박한 수요를 만들어냈다. 정글과 같은 무질서 상태에서 국가 제도를 빠르게 이식하기 위해, 소위 말하는 '배운' 사람들에게 총과 칼을 쥐어준 것이다. 개발 논리를 앞세운 소수 엘리트 집중 육성 정책은 그들의 권력을 비정상적으로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소수 엘리트 집중 육성 정책은 고급 행정 관료 선발, 기업 선발, 국가 대표 선발 등 사회 전체에서 광범위하게 병폐로 남아 있다.


박태수가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한 것은 이 권력의 법칙에 대해 일찌감치 눈뜬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1등 대학 출신, 사법고시 통과, 검사 임용. 한국에서 큰 시험을 여러 개 통과하여 성벽 안의 성벽을 훌쩍 뛰어넘은 사람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권력의 힘을 우연히 목격한 박태수는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한다.



<더 킹>


#2. "전라도 출신이라고 하면 차별받으니까 서울 출신인 척한다."


박태수가 열심히 공부했던 것은 사회적인 욕망을 따른 것이다. 그 욕망은 한국사회에서 권력의 상층부에 진입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열심히 공부한 덕에 그는 서울대라는 일류 대학에 진학하는 데 성공했지만, 군대에서 차별을 받지 않을까 걱정한다. 바로 그의 출신 때문이다. 결국 박태수는 지역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출신을 속인다.


영화에서 지역차별을 조장하는 곳은 바로 군대다. 실제로도 지역차별은 권위주의 군부 독재의 정치적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TK의 상징인 대구는 권위주의 정권 이전에 ‘빨치산 천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오히려 사회주의 운동의 움직임이 강한 곳이었다. 역사적으로 지역차별은 강력한 권력을 가진 권위주의 정권의 선동에 따른 결과였지만 그것은 권위주의 체제가 무너진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력하게 남아있다.


그것은 권위주의 정권 자체는 없어졌지만, 권위주의 체제의 중앙 집중화된 권력 구조는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87년 권위주의 체제가 막을 내리면서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는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대통령 자체가 갖는 권한은 여전히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 비해 훨씬 더) 비대하게 남아있다. 권위주의 시절, 앞서 설명한 권력이라는 성(castle)의 주인은 군부 독재였다. 집중적으로 육성할 소수 엘리트들을 선발할 수 있는 권한이 군부 독재에게 있었던 것이다. 독재 대통령을 중심으로 구성된 행정부 내각이 사회 각계 각층의 엘리트들을 선발, 구성하는 구조다.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었음에도 이 성은 무너지지 않고 견고하게 남아있다. 대신 그 성의 주인만 5년마다 국민의 손으로 바꿔치우는 모양새가 되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부른다. 


이 덕분에 과거에 공공연히 자행되었던 지역차별은 이제는 ‘지역감정’의 모습으로 얼굴만 바꾼 채 남아있게 되었다. 지역감정은 이제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 얼마나 자기 지역 출신의 인재를 배출하느냐 하는 경쟁의 모습을 띤다. 앞서 말한 권력의 성안에 자기 지역 출신을 얼마나 집어넣느냐 하는 싸움이 된다는 것이다. 서울이라는 공간은 그 권력의 성이 상징적으로 대변되는 공간이다. 그래서 규모가 작은 지자체들은 서울로 공부하러 올라간 '지역 인재'들을 위해 서울에 기숙사도 지어주고 그런다. 선거 철만 되면 나라의 지도가 오른쪽, 왼쪽으로 나뉘어 색칠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사회 문제의 진짜 원인은 서울에 중앙 집중화된 권력과 그에 따른 지방의 불균형적 발전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대립은 광주 대 대구라는 지방 대립의 모습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더 킹>


#3. “호텔 스위트룸에 모여서 파티”


검사가 된 박태수는 우연한 계기로 검사들의 은밀한 파티에 초대된다. 그곳엔 검사뿐만 아니라, 언론, 지역 유지, 재계 인사들이 모두 모여 있다. 영화 <내부자들>과 <베테랑>에서도 그와 비슷한 장면이 연출된다. 이 부분은 박태수가 욕망했던 ‘권력 상층부’의 실체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앞서 지적한 중앙 집중화된 권력 말이다. 영화에서 사회 각계의 엘리트들은 검사라는 강력한 권력을 중심으로 끈끈하게 연결돼있다.


앞서 말한 중앙 집중화된 권력은 영화에 나타난 것처럼 강력한 카르텔의 형태로 남아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저자 최장집 정치학 교수는 이를 두고 권력이 ‘동심원의 형태’를 띤다고 표현했다. 권력이 서로 다른 원의 형태로 산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강력한 중심을 두고 권력 계층이 점점 퍼져나간다는 것이다. 과녁에 그려진 원모양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학벌, 출신, 기수(고시) 등을 기준으로 강력한 권력의 고리가 형성돼 있다. 학벌이라는 가장 낮은 층위의 권력 고리 위에 고시, 출신, 라인 등을 기준으로 권력의 고리가 겹겹이 쌓여나간다. 영화에서는 그 권력의 최정점에는 검찰이 있다고 말한다.


미국과 중국만 해도 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물론 미국도 권력 상류층간의 네트워크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처럼 끈끈하게 연결돼 있지는 않다. 미국에서는 각 권력이 하나의 원으로 똘똘 뭉쳐있다기보다는 산발적으로 존재한다. 또한 다양한 신념 집단이 선거에서 발휘하는 힘이 크기 때문에 미국은 이 신념 집단들을 설득하기 위해 선거 전략을 세우는 전문가가 따로 있을 정도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공산당 하나가 큰 권력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산당 내부에서는 세력 다툼이 의외로 심한 편이다. 당내의 ‘태자당’, ‘상해방’, ‘공청단’ 등과 같은 비공식적인 계파들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꽤 심하다.



<더 킹>


#4. “대중이, 대중이.”


박태수는 우연한 계기로 한강식(정우성) 검사를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권력층의 세계에 입성한다. 그런데 정권이 바뀔 때 즈음, 그는 이상한 장면을 목격한다. 그 유명한 엘리트인 한강식 검사가 말도 안 되는 미신을 통해 대선의 승자를 점쳐보는 것이다.


앞서 87년 개헌 이후 권위주의 체제가 무너졌음에도 중앙 집중화된 권력 구조는 공고히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 구조의 형태는 동심원 모양의 강력한 카르텔이라고 설명했다. 동심원 모양의 카르텔로 구성된 중앙 집중화된 권력은 그대로 존치한 채 5년마다 대통령만 바뀌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선출직인 대통령은 중앙 집중화된 권력을 구성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이 있다. 영화에서 한강식 검사가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미신에 의지해 대선을 점쳐보는 이유다.


영화에서 한강식은 이를 두고 ‘손님맞이’라고 표현했다. 그에게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앙 집중화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대통령의 입맛에 맞출 뿐이다. 그리고 그 입맛에 맞춰 칼날을 휘두른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들이 가진 강력한 권력을 유지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대립의 프레임 논쟁으로 인해 검찰을 무조건적인 ‘보수, 반공주의’의 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권위주의 시절에는 그랬다. 검찰은 반공 논리를 앞세워 독재 정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대거 잡아들인 경력이 있다. 하지만 권위주의 체제가 무너진 87년 이후에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박근혜 전 대통령의 검찰 정치는 사실상 한국 정치를 과거 권위주의 체제 시절로 후퇴시킨 것과 같다.) 검찰을 무조건적인 보수 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앞서 지적한 지역감정의 문제와도 같다. 지역감정의 본질은 중앙 집중화된 권력이다. 영화에서 한강식 검사는 중앙 집중화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편을 가리지 않는다.



<더 킹>


#5. "정치 출마를 결심한 박태수"


한강식의 권력 카르텔에 몸 담갔던 박태수는 결국 한강식에게 팽 당하고 만다. 한강식은 박태수로 인해 자신의 권력이 위태로워질까 봐 그를 버린다. 결국 둘의 갈등은 심해지고, 박태수는 한강식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국회의원 출마를 결심한다. “이슈는 이슈로 덮기”위해 박태수는 야당의 핵심 인물을 소개받고 정치에 뛰어든다.


이 장면에서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박태수가 정치에 뛰어들기 전에 야당의 이미지 메이커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정치 왜 합니까? 정치 세상 못 바꿉니다.” 이미지 메이커가 묻는다. 박태수는 대답한다. “정치로 사회를 바꿀 생각 없습니다. 누군가 잡고 싶은 사람은 있습니다.” 이들의 대화는 한국 정치 현실의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는 정치인이 신념 지지층을 기반으로 성장한 사회 세력이 아닌 당의 인물 선정에 의한 이미지 메이킹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인물은 상대방의 약점을 가장 잘 공격할 수 있는, 네거티브 전략에 능통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한국 정치가 철저하게 인물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치가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 누구를 앉히느냐 하는 싸움으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이러한 현상이 심해지면 정치 인물의 스타화, 나아가 정치 인물에 대한 신격화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복수가 정치 엔지니어링의 철학”이라는 말은 인물 중심으로 흐르는 정치 세태를 냉철하게 포착한 말이다. 예컨대, 정치가 ‘자연 계발’ 대 ‘환경 보호’식의 의제 싸움이 아니라, 인물 대 인물의 선거 경쟁의 모습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인물 대 인물의 정치 현실에서 네거티브는 가장 쉽고도 효과적인 선거 전략이다.



<더 킹>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그건 당신이 결정하는 거다. 당신이 이 세상의 왕이니까.”하는 말은 좀 더 깊은 의미에서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87년 개헌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중앙 집중화된 권력은 강하게 남아 있다. 아니 다른 방식으로 더 심해졌다.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지만 선거는 여전히 엘리트의 선거 경쟁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검찰을 개혁한다는 좋은 의도야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여론은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양분됐다. 집회에서 의제나 신념이 아닌 "인물"을 외치는 소리가 더 커졌다. 21대 총선 결과 지역감정은 우려될 수준으로 격해졌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러한 현상은 모두 서울 중심의 권력 중앙 집중화가 더욱 심해졌다는 걸 의미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검찰 개혁을 둘러싼 일련의 다툼들은 중앙 집중화된 권력을 두고 다투는 헤게모니 싸움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검찰 개혁에 대한 프레임 논쟁은 검찰의 칼날이 어떤 인물로 향하고 있냐만 따지고 있다. “검찰을 개혁하고 공수처를 설치하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건데?”에 대한 논의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당신이 왕”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당신이 왕이라는 말이다. 선거는 당신을 다스려줄 왕을 뽑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신념에 따라줄 대통령을 뽑는 중대한 일이다. <더 킹>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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