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첫 여행은 어디였나요.
아빠랑 떠나요, 멋있는 화물차 타고
오늘 혼자 여행을 계획해보다가 문득 '내 첫 여행은 어디였지..' 궁금해졌다.
가만히 생각하니 떠오르는 내 첫 여행의 기억.
우리 아빠는 20년 이상 화물차 운전을 하셨다.
다양한 공장 자재의 상하차 작업이라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먼 길을 다니셔야 했고, 나는 방학이 되면 적적하실 아빠를 위해 자주 따라다녔었다.
작은 가방에 내가 좋아하는 책도 챙기고 아끼던 장난감들도 바리바리 챙기며.
이 여정이 아마 내가 스스로 선택한 첫 번째 여행인 것 같다.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 재잘재잘 말 많은 어린 딸을 옆에 태우고 아빠는 뚝딱뚝딱 길을 찾았고, 나는 긴 시간 동안 아빠 옆에서 보통 책을 읽거나 달력을 재단한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말하기 좋아하던 나는 주로 바깥의 풍경을 구경하며 아빠에게 조잘조잘 말을 걸었는데 그런 나를 아빠는 참 귀여워했다.
밤을 새우며 운전하는 아빠 옆에 앉아있다가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잠에 들면 "민주야, 라면 먹으러 가자"는 아빠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동도 트지 않은 새파란 하늘, 휴게소에 도착해 그 차가운 공기 안으로 아빠의 손을 잡고 종종거리며 뛰어가던 내가 생각이 난다.
그래서인지 차가운 새벽의 공기는 늘 아빠와 함께 먹던 휴게소 라면을 떠올리게 한다.
아빠가 하차지에 도착해 짐을 내리는 동안 나는 아빠를 기다렸다. 밖에서 들리는 지게차 소리와 짐을 내리며 양옆으로 흔들리는 화물차의 움직임을 느끼면서.
아빠의 상하차 작업을 기다리며 나는 공장에서 키우는 강아지와 놀거나 책을 읽고, 화물차 뒷 침대에 누워 잠에 들었다. 차의 움직임이 멎고 "수고하십시오!"라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면 그렇게 그날의 하루가 끝나는 것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아빠는 나를 참 사랑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에도 주변에서 건네 준 시원한 음료수를 나한테 가장 먼저 가져다주셨으니까.
그리고 나도 아빠에게 주고 싶어 몰래 차에서 내려 편의점에서 차가운 음료수를 샀고, 상하차 작업이 늦어져 음료수가 미지근해질까 봐 편의점에 몇 번씩 다시 들러가며 바꿔오기도 했다. 아빠는 아빠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를 참 아껴주던 시간이었다. 아마 내 키가 아빠의 화물차 바퀴를 조금 넘던 시절의 이야기.
내가 30대가 되고 이런저런 일들을 지나오며 나는 아빠와 많이 어색해졌다.
내 눈치를 보는 아빠 모습을 새삼 만나게 될 때면 좀 아쉬워지기도 하고.
아빠 차를 타고 다니던 나는 늘 맥가이버같이 멋진 아빠를 기다리는 작은 딸이었는데.
아직도 길을 걷다 커다란 화물차를 만날 때면 굵은 땀방울을 닦으며 차 안으로 들어오던 아빠가 떠오르고,
높은 차 안에 앉아 창문을 바라보면 온통 낮아져 있는 것들을 신기해하던 내가 떠오르고, 쉬익 쉬익- 도로의 작은 턱을 넘을 때마다 나던 화물차의 숨소리까지 떠오른다.
사실 쑥스러워 아빠에게는 꺼낼 수 없지만 내가 가진 아빠와의 시간은 이토록 다정하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다. 막내딸과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이 아빠에게는 어떤 기억이 되었을까.
새삼 궁금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