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를 꼭 한두 장씩 빼먹어 내 속도 빼먹던 아이는 어느 날 키가 확 컸다. 설 연휴를 지나치게 잘 보내서 그랬을까? 떡국을 할당량보다 많이 먹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이는 확 큰 것이 아니다. 아이는 늘 크고 있었고, 나는 수요일이라는 틈새로 아이를 조이트로프처럼 목격한다. 일주일에 두 시간, 우리 사이에는 명백한 단절이 있고 그건 놀랍지도 않다. 그런데 한 시대 전에 성장판이 닫혀버린 내가 이따금 거울을 보며 놀라는 것은 왜인가?
하나의 사람에 몇 개의 이름이 붙고 개명은 전진의 다른 이름. 이제 빼먹을 숙제는 없고 나는 졸업 후 이 년의 시간만 달라고 부탁한다. 들은 사람은 많아도 들어줄 사람은 없는 부탁. 누가 시간을 줄 수 있겠는가? 번데기 안에서 행복을 준비하는 친구들도 곱창집에서 만나면 영락없는 친구들. 카드키를 찍지 않고는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다.
내가 어느 날 바퀴벌레가 되면 어떡할 거야? 그런데 그 물음은 연인을 경유하여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느닷없이 바퀴벌레가 되는 삶은 현대인이 꿈꿀 수 있는 최고의 미덕. 카프카는 완전변태를 욕망했는가?
나는 반지하 복도에 몇 달째 방치된 곱등이 시체를 떠올린다. 그는 사실 나의 오랜 친구였을까? 내 친구들은 모두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지만 곱등이는 모른다. 곱창집에서 만났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벌레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우리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건 화장실 타일을 기어다니는 실거미도 마찬가지. 디지털 이미지처럼 생성 및 삭제되지만, 실리콘 틈새도 결국엔 조이트로프, 실거미는 늘 그곳에 있었고. 나는 구겨진 휴지를 변기에 던지며 습관처럼 거울을 본다. 그리고 이따금 놀란다. 어릴 적과 너무 똑같이 생겨서 놀라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