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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rdDog Apr 12. 2024

기생수 더 그레이,원작과 새로운 해석 사이에서의 줄타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기생수 더 그레이'는 오랜 시간 많은 사랑을 받아온 원작 만화의 실사화라는 점에서 제작 단계부터 큰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동시에 원작의 팬들 사이에서는 과연 만화의 매력을 얼마나 잘 구현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인기 원작의 실사화가 가진 양날의 검, 그 기대와 우려 사이에서 '기생수 더 그레이'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을까.


드라마를 모두 시청하고 난 후,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원작의 완벽한 재현은 아니지만, 나름의 새로운 시도와 변주는 있었다"는 것이다. 주인공 정수인과 기생생물 하이디의 관계성, 그들의 내적 갈등과 정체성의 혼란 등 원작이 가진 주요 메시지와 묘사는 드라마에서 다소 축소되거나 평면적으로 그려지는 면모가 있었다.


기생생물들의 감정 변화나 숙주와의 공생 관계도 원작만큼 디테일하고 개연성 있게 그려내진 못했다. 일부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 톤, 때로는 매끄럽지 못한 전개 역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기생수 더 그레이'는 단순히 원작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름의 변화와 새로운 시도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14년, 2015년 두 차례의 실사영화를 통해 이미 원작에 충실한 방식의 각색이 이뤄진 만큼, 드라마 제작진은 원작과는 또 다른 변주를 시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정수인이라는 캐릭터 설정, 하이디와의 다중인격 관계, 드라마 후반부의 전개 방향 등은 원작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록 그 시도가 모두 성공적이진 않았을지 모르나, 변화를 모색하려 했다는 점 자체는 높이 살만 하다.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플랫폼과 매체에 맞는 각색 역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연출과 액션, CG 등 기술적인 면모에서도 '기생수 더 그레이'는 상당한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특히 기생수들의 몸싸움을 그린 액션씬들은 상당히 역동적이고 박진감 넘치게 연출되어 보는 재미를 더했다. 기생수의 시각 묘사나 변형 장면에 사용된 CG 역시 이전의 실사 영화들보다 한층 진일보한 퀄리티를 자랑했다. 이런 기술적 진보는 앞으로의 실사화 작품들에도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 기대된다.


종합하면 '기생수 더 그레이'는 애초의 기대만큼 원작의 감동을 완벽히 재현해내진 못했지만, 또 다른 방식의 변주와 나름의 성과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원작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팬들에겐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겠지만, 드라마만의 장점과 의미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 무엇보다 원작과 새로운 해석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변화를 모색하려 했던 제작진들의 노력은 충분히 갈채 받아 마땅하다.


앞으로도 '기생수' 및 다른 만화 원작의 실사화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원작의 본질과 메시지를 충실히 담아내되, 또 다른 매력과 변주를 모색하는 시도 역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관건은 원작에 대한 '진정성 있는 존중'과 새로운 플랫폼에 맞는 '창의적 각색'의 조화라 할 수 있겠다. 비록 완벽한 성공은 아니었을지라도, '기생수 더 그레이'는 그러한 조화와 균형을 향한 고민의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 작품이었다. 앞으로의 실사화 작품들이 이러한 선례를 발판 삼아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생수 더 그레이'의 시즌2가 제작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비록 시즌1이 완벽하진 않았을지라도, 그 안에는 분명 차기 시즌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즌1은 원작과는 또 다른 방향성을 모색하며 새로운 이야기의 토대를 마련했다. 비록 그 과정이 매끄럽지만은 않았지만, 변화를 향한 도전 자체는 높이 살만하다.


또한 드라마 후반부로 갈수록 떨어지는 개연성과 완성도는 차기 시즌에서 얼마든지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시즌1의 경험과 교훈을 발판 삼아, 제작진들이 한층 더 성숙하고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무엇보다 원작을 뛰어넘는 감동을 선사하겠다는 초심과 열정만큼은 여전할 것이다.


더욱이 시즌1의 마지막은 정수인과 하이디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그들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인간과 기생수의 공존은 가능할 것인지 등 궁금증을 자아내는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이는 단순히 후속편에 대한 떡밥이 아니라,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상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들이다.


'기생수'라는 원작이 가진 방대한 세계관과 메시지를 고려할 때, 단 한 시즌으로 모든 것을 담아내기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생수 더 그레이'는 이제 겨우 한 발을 내디딘 것에 불과하다. 시즌2,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들을 통해 원작의 감동과 철학을 더욱 깊이 있게 탐구하고 형상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물론 시즌1의 아쉬웠던 점들을 반면교사 삼아, 앞으로는 더욱 작품성 높고 완성도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원작에 대한 '진정성 있는 애정'과 새로운 이야기를 향한 '창의적 도전'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기생수 더 그레이'는 원작을 뛰어넘는 걸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날을 고대하며, 시즌2의 제작 소식을 간절히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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