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감각성(HSP)과 ADHD를 동시에 가진 채 살아가고 있다. 이 두 가지 특성은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내 삶에 교차하며 영향을 미친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유독 감각이 예민했다.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미세한 냄새나 질감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또한 쉽게 깊은 생각에 빠져들곤 했는데, 한 가지 주제에 몰두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런 특징들은 나중에 알고 보니 고감각성의 증거였다.
고감각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한 체크리스트를 보면, 섬세한 감각, 깊은 사고와 풍부한 내면세계, 쉽게 압도되는 경향, 예술과 자연에 대한 강한 공감 등이 포함된다. 나는 이 항목 대부분에 체크할 수 있었다. 강렬한 감수성은 나를 더 창의적이고 통찰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지만, 동시에 일상의 크고 작은 자극에 지나치게 영향받는 단점도 안겨주었다.
여기에 ADHD까지 겹치면서 내 삶은 더욱 복잡해졌다. 과제에 집중하기가 너무 힘들었고, 충동적인 말과 행동으로 종종 후회하곤 했다. 무언가에 쉽게 싫증을 내고 새로운 자극을 찾아 떠나는 일도 잦았다. ADHD의 대표적인 증상인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충동성은 내 일상을 헤집어 놓았다. 학업과 업무에서 실수가 잦았고, 대인관계에서도 오해를 살 때가 많았다. 가끔은 이 특성들이 장점이 아닌 결함처럼 느껴졌고, 그럴 때면 자존감이 바닥을 칠 정도로 무력감에 빠졌다.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을 볼 때면 부럽기도 했다. 그들은 일상의 자극을 무난히 소화하고, 감정의 동요 없이 맡은 바 임무를 척척 해낸다. 사회적 기준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면서도 자신을 잘 표현하는 것 같았다. 반면 나는 사소한 것에도 지나치게 예민해지고, 쉽게 산만해졌다. 남들이 잘해내는 평범한 과제조차 버겁게 느껴졌고, 감정의 기복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내 섬세한 감수성은 스트레스만 키웠고, 충동적인 행동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럴 때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존재는 내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단점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고감각성 덕분에 나는 타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읽어낼 수 있었고, 문제의 이면을 통찰할 수 있었다. ADHD의 산만함은 오히려 다방면의 관심사를 탐구할 기회를 주었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창의적 발상을 가능케 했다. 내면에서 끊임없이 용솟음치는 감성의 샘은 예술적 영감으로 승화되기도 했다.
물론 이런 강점들이 단점을 모두 상쇄하진 못한다. 그래서 더 힘들고 외롭다. 주변에선 아직 이런 특성을 가진 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고, 나 역시 그런 환경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다. 앞으로도 나는 고감각성과 ADHD를 끌어안고 살아갈 것이다. 감각 과부하를 피할 나만의 방법을 더 적극적으로 찾을 것이고, 집중력 향상을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감정조절이 힘겨울 땐 주저 없이 도움을 청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격려하는 긍정의 말을 잊지 않으려 한다. HSP와 ADHD를 지닌 내가 여전히 빛나는 존재임을, 그 자체로 가치 있음을 매일 되새기고 싶다. 힘들고 어두운 터널을 지날지라도 내 고유한 빛깔을 잃지 않기를. 세상이 우리를 다 알아주지 못한다 해도 좌절하지 말자. 그건 단지 아직 우리의 잠재력을 모르기 때문일 뿐.
우리 안의 재능과 가능성을 맘껏 펼칠 날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가자. 고감각성과 ADHD의 이중고를 딛고 우뚝 설 수 있음을 믿으며. 언젠가 더 포용적이고 창의적인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 희망하며. 우리는 분명 빛날 자격이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오늘도 이 각별한 삶을 열정으로 살아내보자. 언젠가 그 빛이 더 많은 이에게 닿는 순간, 비로소 우리가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