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과 평범 옆의 그 어드메서.
*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을 보고 남긴 기록들이다. 다시 넘버를 듣게 될 때마다 조금씩 수정해나가려고 한다.
좋아하는 뮤지컬을 꼽는다면 꽤 오랫동안 고민할 것이다. 공연장을 나오고 나서도 여운에 젖어 있던 작품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말,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는다면, 아직까지는 이 뮤지컬이다.
일단 극 제목부터가 '넥스트 투 노멀'이다. 정상이 아닌, 그와 가까운 어드메, Normal한 것의 옆자리. 처음에는 약간 혼란스럽다가도 극 후반부 대사 중에 이 제목이 나오는 순간 왜 이 뮤지컬의 제목이 넥스트 투 노멀인지 깨달음의 순간이 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문구의 함의는 이렇다. "평범, 정상이 아니더라도 그와 가까운 어딘가 정도도 나쁘지 않아. 괜찮아."
뮤지컬에 등장하는 핵심 인물은 부부인 다이애나와 댄, 딸인 나탈리, 그리고 미지의 존재 '게이브'이다. (게이브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스포일러!) 극 초반부터 다이애나가 무언가 심상치 않은 사람임이 암시되는데, 극이 전개되면서 그녀가 정신과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가족인 댄과 나탈리는 그런 다이애나의 모습에 다른 방향으로 대응한다. 댄은 온 힘을 다해 다이애나를 다시 평범한 아내로 돌려놓으려고 하는 한편 나탈리는 평범하지 않은 가정의 모습에 스트레스를 받고 공격적으로 행동한다. 극이 전개될수록 세 사람 사이의 균열은 조금씩 커진다.
이런 특이한 스토리 속에서 극의 중심 줄기가 있다면 바로 '정상', 즉 Normal이다. 이 작품에서는 우리가 큰 의문 없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들을 해체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재정의한다.
한 예는 사랑이다. '사랑은 일종의 광기'라는 댄의 말은 정상적인 통념에서 벗어나 있다. 나탈리가 만나는 남자친구 헨리는 자신도 엄마처럼 언젠가는 미쳐버리면 어떡하냐는 나탈리의 걱정에 자신도 함께 미친 사람이 될 테니, 그러면 서로에게 '완벽한' 짝이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이 둘이 정의하는 사랑은 보통 생각하는 것에서 조금 꼬여 있다(twisted).
또 다른 예시는 다이애나 그 자체이다. 정신과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고, 샌드위치를 만들겠다면서 식탁 전체에 식빵을 늘어놓으며, 환각을 보는 사람이 정상은 아니니 말이다. 그렇지만 다이애나의 이야기를 통해 어쩌면 우리가 '정상'에 대해 일종의 강박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라는 의문이 든다.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명의 정신과 의사들과 댄이 다이애나를 정상적인, '평범'한 사람으로 되돌려놓으려고 노력한 것은 오히려 다이애나가 더욱 정신적인 궁지에 몰리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약물 치료를 받던 다이애나는 결국 전기치료를 하기에 이른다. 치료를 받고 다이애나는 겉으로는 좀 평범해진 것 같지만 결국 그녀 자신이 보던 무언가를 잃어버린다. 과거에 대한 기억도 없다. 이렇게까지 해서 남들이 올라선 궤도에 다이애나를 올려놓으려는 그 과정이 정말 '정상'을 향한 것일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말 남편인 댄이 바라던 정상이었을까. 나탈리가 바라던 정상이었을까. 그리고 다이애나가 바라던 것이었을까.
과연 우리가 정의하는 정상과 평범은 무엇일까?
종교학 수업시간에 교수님은 라캉의 상징계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다. 라캉의 이야기는 이러한 일련의 개념 정의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한다. 어떠한 통념이나 개념이 객관적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뭐, 대부분)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실체도 없는 통념에 매달려서, 그것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가?
의도치 않은 상처를 가장 많이 받아 '정상'에 또 다른 집착을 보여주는 나탈리 또한 정상에 지나치게 집착한 댄의 희생양이다. 다이애나가 평범해지는 것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댄은 결국 딸의 성장에서 필요한 관심을 제대로 주지 못했다. 또한 또래 집단과 비슷한, 거기에 속하고 싶다는 욕구를 가진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이러한 정상궤도에서의 이탈은 반작용으로 정상에 대한 집착으로 드러났을 것이다. 나탈리는 결국 제도와 규율, 성공의 일반적인 척도인 클래식 연주와 예일 입학으로 자신이 일반적인 또래 집단과 사회에 속해 있음을 드러내려고 한다.
이제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다.) 결국 다이애나의 '정상'으로써 만드려고 했던 가정의 평범함은 이루어질 수 없게 되고, 댄과 다이애나, 나탈리는 모두 각자의 이상과 평범을 찾아 떠나게 된다. 엔딩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 댄이 결국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명확하게 흑백논리를 구성하듯이 다이애나와 자신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지었던 댄은 그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비정상의 영역으로 들어가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스스로가 그러한 상담에 동의함으로써 정상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했음을 보인다. 극에서 내내 게이브의 시선과 외침을 거부했던 댄은 마지막에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름을 부른다. "게이브, 가브리엘."
두 번째, 다이애나가 결국 행복해지는지 아닌지는 모두가 알 수 없는 열린 결말로 처리된다. 이 이야기의 결론은 꽉 닫힌 해피엔딩이 아니다. 그렇기에 '정상'과 '행복'에 대한 관념에 매인 데 익숙한 현대 관중은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도 있다. 이렇게 먼 길을 돌고 돌아서, 왜 해피 엔딩을 보장받지 못한단 말인가. 정상과 행복 사이의 인과관계를 파괴하는 이 결말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것에 우리는 일종의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바로 그 부분이 이 작품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행복, 정상, 가족, 사랑. 그 모든 것에 하나의 정답은 없다. 그리고 반드시 행복해진다는 보장도 없다. 그것이 삶의 모습이다. 다만 우리는 모두 각자 삶의 길을 걸어나가는 것이다. 그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는 유별나거나 이상해보일지언정 그게 나의 삶의 모습이라면 괜찮다. 그게 인생이니까. 그 과정에서 행복해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극 전체에 걸쳐 정상과 평범이라는 개념을 해체하고 난도질해놓고서도 막판에 이 극은 다시 그 헤쳐진 영역을 하나의 개념으로 봉합한다. 평범과 정상 근처의 어드메라도 괜찮다고. 그러나 동시에 무조건적으로 행복해질 거라는 태도도 지양한다. 반드시 행복해질 것이라는 낙관의 메시지, 그리고 어떻든 괜찮을 수 있다는 담담한 메시지는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이 미묘한 차이가 바로 관객의 해석이 깊게 개입할 여지를 준다.
결론적으로 이 뮤지컬은 앞으로 행복하려면 어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미래는 행복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정말로, 평범과 정상이라는 것에 대해 한 번쯤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얕게 스쳐지나가면서 보면 '넥스트 투 노멀'이라는 영역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깊게 생각해보려고 할 수록 개개인에 따른 고민과 성찰이 있어야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다. 과연 나는 평범과 정상의 관념에 갇혀 나 스스로의 삶을 가둬놓고 있지는 않았는가.
>> 아래는 극 중 정말 좋았던 가사들을 가져왔다.
Maybe
I don't need a life that's normal, that's way too far away,
But something next to normal would be okay
Yeah, something next to normal
That's the thing I'd like to try.
Close enough to normal to get by-
We'll get by, we'll get by
Perfect for you(reprise)
Perfect for you, I will be perfect for you.
So you could go crazy, or I could go crazy… it's true.
Sometimes life is insane. But crazy I know I can do.
'Cause crazy is perfect, and fucked up is perfect,
so I will be perfect. Perfect for you.
Light
Trying to fight the things we feel,
But some hurts never heal.
Some ghost are never gone,
But we go on,
We still go on.
And you find some way to survive
And you find out you don't have to be happy at all,
To be happier alive.
Day after day,
Give me clouds, and rain and gray.
Give me pain, if that's what's real.
It's the price we pay to feel.
The price of love is loss,
But still we pay.
We love anyway.
Day after day (day after day),
We'll find the will to find our way.
Knowing that the darkest skies will someday see the sun.
When our long night is done,
There will be 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