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뮤지컬의 매력에 흠뻑 빠지다
비록 지금은 인사말도 더듬거리는 수준이지만, 한때 나를 프랑스어와 프랑스 뮤지컬에 흠뻑 빠지게 한 노래 하나가 있다. 바로 그 유명한 <대성당들의 시대>. 처음 프랑스 배우가 노래를 부르는 걸 봤을 땐 '저 부담스럽게 코 쉐딩을 한 남자는 뭐지'라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노래가 후반부로 나아갈수록 그의 목소리와 멜로디에 매료되었더랬다. 내가 가장 처음 사랑한 뮤지컬인 <노트르담 드 파리>, Notre Dame de Paris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노트르담의 꼽추 이야기를 각색한 프랑스 뮤지컬로, 집시 에스메랄다를 둘러싼 종지기 콰지모도, 신부 프롤로, 근위단장 페뷔스 세 남자의 어긋난 사랑을 다루고 있다.
뮤지컬의 시작에서 집시 에스메랄다는 대부 클로팽과 함께 파리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들은 파리에 입성하긴 하지만 그들은 파리 시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이교도이자 이방인 신세이다. 이런 그들을 지켜보던 노트르담 대성당의 신부 프롤로는 이교도인 에스메랄다에게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낀다. 그는 자신이 거둔 꼽추 종지기인 콰지모도에게 ‘이교도를 선교하겠다’는 명분으로 그녀를 납치할 것을 명령한다.
한편 에스메랄다는 납치를 시도하는 콰지모도로부터 자신을 구해 준 근위대장 페뷔스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는 이미 플뢰르 드 리스라는 약혼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뷔스는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에스메랄다와 카바레에서 밀회하기로 한다. 이를 목격한 프롤로는 질투심에 휩싸여 페뷔스를 칼로 찌르고 에스메랄다에게 누명을 씌운다. 프롤로는 에스메랄다를 감옥에 가두고 자백하고 자신과 밤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녀를 교수형에 처하겠다는 협박을 한다. 고문에 지친 에스메랄다는 결국 거짓 자백을 하지만 프롤로에게 굴복하지 않으며 페뷔스가 자신을 구하러 올 것이라는 믿음을 유지한다. 그러나 에스메랄다를 구한 건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 준 그녀를 사랑하게 된 종지기 콰지모도였다.
에스메랄다는 콰지모도의 도움으로 안전한 곳에 피신한다. 그 와중에 감옥에서 함께 탈출한 집시 무리와 클로팽은 노트르담 성당 안에서 항전하지만 파리의 병사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집시의 우두머리 지위를 물려받은 에스메랄다와 나머지 집시들은 저항하지만 결국 굴복하게 된다. 결국 에스메랄다는 교수형에 처해지게 된다. 분노한 콰지모도는 그녀에게 사형을 내린 프롤로를 밀쳐 죽이고 에스메랄다의 시체를 껴안은 채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
<노트르담 드 파리>(이하 ‘노트르담’)라는 뮤지컬을 더 잘 이해하려면 프랑스 뮤지컬의 특성을 알고 있어야 한다. 뮤지컬을 ‘종합예술’로 파악하는 경향이 큰 프랑스 뮤지컬은 브로드웨이 뮤지컬과는 구분되는 몇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첫 번째는 가수와 댄서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의 ‘dancing through life’라는 넘버에서 주연 가수들은 댄서들과 함께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반면, 노트르담과 같은 프랑스 뮤지컬에서는 주연이 약간의 몸동작을 보이더라도 이는 노래와 분위기를 따르는 간단한 제스처에 불과하지 댄서처럼 춤추는 것은 아니다. 언뜻 보면 단점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댄서들의 안무를 더욱 창의적이고 역동적으로 만들어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주연 배우들의 안무를 걱정할 필요 없이 전문 댄서들의 안무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트르담은 현대 무용과 발레, 아크로바틱이 조합된 다양하고 예술적인 안무로 극찬을 받았는데, 특히 에스메랄다와 플뢰르 드 리스 사이에서 고민하는 페뷔스의 ‘괴롭다’(Déchiré)라는 넘버에서는 그의 고뇌를 춤추는 현대 무용수들로 나타냈다. 어느 잡지 인터뷰에 따르면 노트르담의 안무가는 이 장면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무용수들에게 즉흥적인 몸동작을 해 보라고 요구했는데, 우연히 주문한 결과가 좋게 나타났다고 한다. 장막 뒤에서 하나 둘 스포트라이트로 비추어지는 무용수들은 로댕의 조각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역동적인 안무를 소화한다. 또한 ‘성당의 종들(Les Cloches)’에서는 공중의 종 구조물 위에 매달려 춤추는 아크로바틱을 선보였다. 수도사들의 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흔들리는 종 위에서 춤추다 종 안에 거꾸로 매달리는 등 거의 신기에 가까운 안무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넘버 ‘춤춰요, 나의 에스메랄다(Danse, mon Esmeralda)’에서 죽은 에스메랄다의 시체를 와이어에 달린 무용수들이 표현하는 장면 또한 압권이다.
프랑스 뮤지컬의 또 다른 특징은 예술적인 무대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처럼 정교한 세트가 순식간에 전환된다기보다는 같은 세트라도 배우들의 움직임이나 조명에 따라 미장센이 변화하는 것이다. (mise en scène-무대 위 배치의 총체적인 계획, 기획자의 미학) 노트르담 드 파리만 하더라도 전체 세트는 마치 회색 시멘트 벽 같은 ‘성당’에서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두어 개의 돌기둥, 반투명한 장막, 철제 구조물 등 몇 가지의 요소만 가지고 무대는 성당에서 카바레, 파리의 밤거리, 감옥으로 변신한다. 이러한 구조물은 비단 배경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심리를 드러내는 역할도 하는데, 신부 프롤로가 에스메랄다에 대한 자신의 욕망 때문에 괴로워하는 넘버 ‘파멸의 길로 나를(Tu vas me détruire)’에서는 두 개의 돌기둥이 프롤로를 사이에 두고 거리를 점점 좁혀 가며 자신의 파멸에 대한 그의 두려움을 표현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괴롭다’(Déchiré)’라는 넘버에서는 반투명한 장막을 무대에 내리고 그 뒤에서 춤추는 무용수들의 동작으로 페뷔스의 고뇌를 드러낸다. 이처럼 노트르담은 구체적인 소품이 아니라 음악, 조명, 무용과 연기로 상황을 종합적으로 전달하는 단순한 미장센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뮤지컬의 세 번째 특징은 대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비단 프랑스뿐만 아니라, 요즘 유럽 뮤지컬의 추세는 대사 없이 전부 뮤지컬 넘버로 구성된 송스루 뮤지컬이다. 10여 년 전에 만들어진 노트르담에서도 이러한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비트보다는 리듬을, 리듬보다는 가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프랑스 뮤지컬은 시적인 가사가 유명하다. 덕분에 모든 넘버의 가사는 전체적인 줄거리와 동시에 배우의 감정을 섬세하게 나타내는 요소이다. 특히 노트르담에서 가장 유명한 넘버인(44주 동안 프랑스 음원차트 1위) ‘아름답다(Belle)’는 뮤지컬의 중심 갈등인 세 남자의 어그러진 사랑을 시적인 가사로 표현한다. 이러한 넘버들 덕분에 노트르담은 지금까지 1200만 장이 넘는 OST CD 판매량을 보유하고 있다. 프랑스어로 된 오리지널 뮤지컬뿐만 아니라 한국판 라이선스 뮤지컬도 꽤 좋은 평가를 받는 편인데, 이는 섬세한 번안 덕이다. 한국어로 가사를 번역할 때, 프랑스어 가사 한 음절 당 한국어 가사 한 음절을 대응시키며 번안했다고 하는 만큼 넘버를 들을 때 어색함이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프랑스어 가사와 발음이 가장 마음에 훅 들어오는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노트르담만이 가지는 특징은 단순히 사랑 이야기를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 플라몽동은 집시 에스메랄다와 파리의 시민인 남자 주인공들을 통해 ‘이방인’에 대한 주제를 다룬다. ‘거리의 방랑자들’, ‘기적의 궁전’ (Les sans-papiers, La Cour des miracles)에서 묘사되는 클로팽과 집시들은 환영받지 못하는 파리의 아웃사이더들이자 사회적인 하위층에 해당한다. 이렇게 작품 속의 집시들은 단순히 당대 집시에 대한 현실적인 차별을 드러내는 역사적 고증 요소가 아니라 기득권층인 프롤로, 페뷔스, 플뢰르 드 리스에 맞서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저항 세력이라고도 비유될 수 있다. 이는 ‘해방(Libérés)’과 같은 넘버에서 잘 드러난다. 결국 집시들은 쫓겨나거나 죽임을 당하지만, 노트르담의 1막과 2막의 첫 넘버들은 새로운 세상이 다가오며, 결국 세상은 변화한다는 희망적인 내용을 품고 있다. (대성당들의 시대- Le Temps des Cathédrales, 피렌체- Florence)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노트르담의 매력은 고전에 대한 해석과 현대적인 각색이 버무려진 예술성 높은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시대가 바뀌어 다르게 볼 만한 부분도 있다. 에스메랄다를 향한 프롤로, 페뷔스, 그리고 콰지모도의 마음은 정말 사랑인가 다시 곱씹을 만하다. 사실 그들이 에스메랄다를 성적인 대상이자 유희 거리로만 보는지, 아니면 그 기저에 진정한 애정의 마음이 숨어있는지는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아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아름다운 넘버와 스펙터클이 어우러진 이 뮤지컬, 프랑스 뮤지컬에 입문할 수 있는 정석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