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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May 24. 2020

빌리 엘리엇의 백조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기록용으로 가볍게 쓴 관람평을 아카이빙한다!



Matthew Bourne's Swan Lake

한 줄 평: 돈과 시간 전혀 아깝지 않은, 꼭 다시 보고 싶은 공연.



2019년 가을, 엘지아트센터에서 <백조의 호수>를 보고 왔다. 중간고사가 며칠 안 남은 시점에서 공연을 보러 가야 하나 많이 고민했지만 1학기 때부터 미리 설레며 예매했던 공연이기 때문에 가기로 했다. 

조별과제가 있어 어떡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엘지아트센터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매했기 때문에 수수료 없이 날짜도 바꾸고 좌석도 바꾸어 다녀왔다. 


새내기 때 들었던 뮤지컬 교양 수업에서 <빌리 엘리어트>를 같이 공부했었다. 그 때 교수님이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엔딩 장면을 함께 보자고 하셨는데, 성인이 된 빌리가 공연하는 바로 그 작품이 매슈 본의 <백조의 호수>이다. 영화에서 어른 빌리를 연기했던 아담 쿠퍼가 실제로 백조의 호수 오리지널 캐스트 주연이기도 했다. 그렇게 남자가 연기하는 백조의 호수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 이 작품을 처음 검색해봤을 땐 웃통을 벗은 남자 무용수가 흰 털바지를 입은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공연 전체의 스토리는 읽어보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유튜브에 올라온 공연 풀영상을 보니 원래 <백조의 호수> 발레와도 큰 차이가 있더라. 


솔직히 원작 백조의 호수를 볼 땐 좀 지루했다. (이것도 유튜브를 잘 이용했다.) 순간순간의 동작은 선이 아름답긴 했어도 긴 극 전체를 전통적 발레 안무로 채우는 건 나한텐 별로 흥미롭진 않았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건 오딜의 푸에테(제자리 돌기 같은 건데 50번 정도 돈다고 한다)와 오데트의 백조 연기 정도? 


그런데 매튜 본의 연출작은 시작부터 현대적인 배경과 코스튬이라서 재미있었고 대사만 없을 뿐 표정과 동작이 역동적인 연기라서 또 눈길이 갔다. 왕자의 여자친구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장난아니다. 여왕이 역정내는것도 재밌고. 그리고 놀랍게도, 본의 작품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각자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누가 봐도 에로틱, 로맨틱한 그런 스토리는 아니라는 뜻이다. (스포일러) 애초에 마무리가 죽은 왕자를 안고 있는 백조의 모습이니...     자세한 내용은 영문 위키피디아를 참고하면 좋다.



이야기의 새로운 해석도 신선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춤이다. 난 발레를 잘 알지 못하지만 본이 연출한 작품의 안무가 전통적 발레와는 큰 거리가 있다는 건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설명이 어려운데 백문이 불여일견. 본의 작품에 등장하는 백조들은 우아한 새가 아니라 야생 조류의 느낌을 준다. 


한편 남자 배우들이 백조를 연기한다고 해서 딱딱한 동작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절도있기도 하고, 유연하고 부드러운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힘이 꽉 들어간, 근육과 몸의 움직임이 계속 드러난다는 점에선 확실히 야성적이다.


물론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생각한다. 내가 처음 본 영상의 주연은 아담 쿠퍼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본 공연의 주연 무용수는 확실히 쿠퍼보다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간 느낌이었고, 기억 속 쿠퍼는 선과 움직임이 좀 더 부드러웠던 것 같았다. 



주연 외에 남자 무용수들의 파드되, 여왕과 왕자의 춤도 인상적이었다. 남남 파드되는 색다르게 아름다워서 놀랐고 왕자가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는 장면에서 파드되 안무를 활용해서 신기했다.


그리고 처음 유튜브로 영상을 접했을 때 보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닭둘기 장면'도 정말 만족스러웠다. 최고였다! 다만 무용수분들이 근엄하고 비장해서 그 자리에선 닭둘기 생각이 싹 가셨을 뿐. (유튜브에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영상 중 5-10분짜리 클립이 하나 있는데, 중간에 무용수들이 펄쩍펄쩍 뛰다가 서로 어부바를 해 주는 안무 영상이 있다. 그게 닭둘기 춤이다.)


인터미션이 이렇게 금방 오나 싶었던 공연은 참 오랜만이었다. 움직임 하나, 연기 하나 놓치지 않고 보고 싶었는데 순식간에 모든 게 지나갔다. 다음 번에도 내한공연이 이루어지거나 라이선스 공연이 올라온다면 꼭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다.


(지난 주에 네이버 TV에서 라이브로 24시간 공연 영상을 제공했는데, 또 그런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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