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이 더 필요한 나에게
내 마음이 글밥을 받아들이기 좋은 날에는 참 풍요로운 책이었고, 내 마음이 활자를 받아들이기 힘든 날에는 버거운 책이었다.
방금은 좀 버거운 책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짬이 나는 순간 동안 단숨에 읽어내린 것이 책의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이 책갈피로 표시된 채 남아 책장에 꽂혀 있었다. 도서 반납일 공지 메일을 받고서야 후다닥 마음가짐을 바로 하고, 책을 열고, 글을 읽었다.
사실 원래의 나였다면 절대 끝까지 읽지도 않고, 아예 빌릴 일도 없는 책(수필이라는 점에서)이었지만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의 인스타 스토리를 보곤 책을 도서관에 신청했다. 2주가 넘게 기다려서야 빌릴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빌렸으니 꼭 다 읽고 돌려주고 싶어서, 대출기한을 한 번 꽉 채우곤 또 재대출해서 책장에 올려놓았더랬다. 꾸역꾸역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서 안심이 되었다. 이제 진짜 반납할 수 있다!
학교에 다닐 땐 독후감을 쓰라는 게 참 싫었는데 이제는 지금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단상을 아득바득 기록해놓지 않으면 그것이 너무나 쉽게 휘발된다는 것을 안다. 과제와 강의 듣기는 잠시 미루어두고 그럼 이제 이슬아의 글에서 느낀 풍요로움과 버거움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풍요 -
문학 장르의 책을 이렇게 길게, 오랫동안 잡고 읽은 게 오랜만이었다. 문학과 비문학의 스펙트럼에 수필이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는 헷갈리지만 어쨌든.
과거 해리 포터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과 도서관 구석에 꽂힌 람세스 시리즈를 주구장창 읽던 내 독서 습관은 교정의 대상이었다. 엄마와 선생님은 '판타지스러운 것' 좀 그만 보라면서 잔소리하기 일쑤였고 그렇게 내 독서 습관은 어느새 논픽션으로 치우치게 되었다.
특히 시간에 쫓겨 살았던 고등학교 시절엔 이게 더 심해졌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좀 보려고 해도 내신이 끝나지 않은 학기 중에는 '읽어야 하는 책'들로도 이미 시간이 버겁게 채워져 있었다. 하루하루 에세이를 내고 독후감을 내고 감상문을 내기 위해 나는 책을 빨리 읽었다. 휘리릭 논문을 읽고 금세 요점을 정리할 줄 아는 능력이 생겼다. 정보를 담은 책자를 즐겁게 여기는 법을 배웠다.
대신 글자를 곱씹고 여유롭게 책을 읽는 습관을 잃었다. 그 습관은 대학에서도 계속되었다. 도서관에 가서 빌린 책의 목록을 보면 대개 무슨무슨 학자가 쓴 무슨무슨 이론에 대한 책, 현대 사회의 현상에 대한 분석서, 아니면 역사서 투성이였다. 정보로 꽉 차지 않은 글을 제대로 읽은 것이 언제였던가.
이슬아 씨의 글을 읽으면 그게 좋았다. 편안하게 하루하루 쓴 글 같으면서도 꽉 차 있다. 정제됨과 정제되지 않음, 다듬어짐과 다듬어지지 않음, 단순함과 복잡함이 교차되어 있다. 슬아 씨의 글은 '한편으로는 쉬우면서도 너무나 대단하고 좋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나도 슬아 씨 같은 글을 쓰고 싶으면서도 내가 쓰는 문장에 대한 부끄러움이 함께 느껴졌다.
바로 이게 또 다른 좋은 점과도 연결된다. 뭐든지 좀 과몰입하는 습관이 있는 나는 마주하고 있는 대상의 분위기에 침잠하는 경향이 있다. 액션 영화를 보고 나서 누구든 주먹으로 펀치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며칠 동안 느끼는 것, 슬픈 소설을 읽고 나서 우울해지고 나의 삶 속의 모든 우울을 100%로 끄집어내는 행동을 참 오랫동안 하는 것.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고 나서는 그냥 앉아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잘 쓰든 못 쓰든 신경쓰지 않은 채. 지금도 다른 할 것들은 에라 모르겠다하고 미뤄놓고 내 속에 생겨난 글심을 잃을세라 빠르게 타자를 치고 있다. 이렇게 나도 내 글을 쓰고 싶게 하는, 그런 글을 쓰는 이슬아씨가 멋있다.
버거움 -
한편 좋았던 점이 힘들었던 점과 연계되기도 한다. 이건 이슬아 씨의 글에 대한 버거움이 아니다. 그 글을 읽는 나 자신에 대한 버거움이다.
앞에서 나에게 자리잡은 읽기 습관에 대해 적었었다. 빨리, 요점과 핵심을, 놓치지 않고, 논리적으로 이해하면서 읽기. 스키밍하기. 발췌독하기. 이런 읽기에 익숙해진 나는 슬아 씨의 글이 버거웠다.
나도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수많은 레포트와 글쓰기를 학교에서 하면서) 하나의 좋은 문장을 내뱉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다. 가끔은 무언가 토도독 터지듯 좋은 구절이 생각났다가도 그 다음 문장을 쓰면 금방 별로라는 생각이 든다.
그걸 알기에 많은 노력이 들어간 슬아 씨의 글을 섬세하게 읽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그런 독자가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너무나 오랫동안 정보적 읽기에 익숙해진 나는 그걸 너무 못 하는 거다. 그래서 슬아 씨의 글이 버거웠다. '읽지' 못하는 나 자신이 견디기 어려워서.
슬아 씨의 책을 읽다 보면 두려움도 느낀다. 이슬아의 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매력적이고 자신의 삶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들.
대학에 와서 간혹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정말 닮고 싶어서 애달플 정도였다. 또 내가 동경하는 그 사람들의 특징은 이거다. 바로 섬세한, 평범한, 자극적이지 않은 것들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 스스로 중심을 잘 잡고 있고 단단한 사람들. 컴퍼스의 중심 축처럼, 다리는 멀리 뻗어나가더라도 자기만의 핵심이 있는 사람들.
나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언제쯤 되어서야 그 사람들이 아는 그 '좋음'을 나도 알 수 있을까 아쉬울 때가 많다. 저 매력적이고 섬세한 사람들의 세계와 내 세계가 유리된 기분이다.
그래서 좀 두렵기도 했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 저 사람들은 나랑 너무 먼 것 같아서.
그래도 버거웠던 것보다 좋았던 게 더 많았다. 잔잔한 마음으로 책을 반납 데스크에 올려두었다.
나 다음에 이 책을 대출할 사람은 어떻게 이 책을 읽을까. 처음 책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그 친구는 어떤 감상이 남았을 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