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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Apr 04. 2024

댕댕이 이야기 5

똥오줌 가려내기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개식용금지법’은 다수의 횡포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귀여운 반려견까지도 식용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무서운 들개, 맹견까지도 식용을 금지한 것은 ‘가진 자의 횡포’ 같아서 찬동할 수 없다. 개 식용은 서양문화 추종자들에게는 야만인 짓으로 보이겠지만 보통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으며, 보신(保身材)이기도 했다. 민주주의가 가장 완벽한 제도 같지만 ‘다수의 횡포’나 갈대 같은 ‘군중심리’에 휩쓸리는 일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댕댕이가 교양을 과시하거나 있어보이는 사람들의 상징물이 되어서는 개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 허다하다. 반려견이 밥투정을 할 때 굶어죽는 사람이 즐비하고, 주인 이발비보다 개털 깎는 값이 서너 배이고, 웬만한 사람 장례비보다 개 장례비가 더 비싸다니 이래서야 어디 사람이 개만 할까?


  반려견 토리와 같이 살면서 새로 안 사실이 적지 않다. 개는 길에서 마음대로 소변, 대변을 보아도 경범죄가 아니니 아무래도 견권(犬權)이 인권(人權)보다 위다. 그래서 주인은 그 뒤를 쫓아다니다가 약에도 못 쓰는 개똥을 받아내기에 바쁘다. 이놈들은 점잖게 산보를 즐기면서 무시로 코를 벌름대면서 제멋대로 길바닥에 거름을 살포한다. 그러면 주인은 똥주머니를 들고 따라다니면서 그 시중을 들어야 한다. 으레 뒷다리를 바짝 들고 오줌을 갈겨댄다. 수캐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암컷인 이놈도 뒷다리를 들고 한다. 그런데 집에서 패드 위에 오줌을 눌 때는 네 다리를 붙이고 하는 것을 보면 소변과 영역표시하는 오줌은 다른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길에서 그렇게 소변을 자주 볼 리가 없다. 신통한 일은 이놈은 똥과 오줌을 구분하여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변을 먼저 보고, 소변을 나중에 보는 신기한 재주를 가졌다. 나는 이를 구분해서 보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순서를 바꿀 수도 없고, 나누어서 볼 수도 없다. 그야말로 ‘똥오줌 못 가린다.’ 그래서 ‘개만도 못한 인간’이란 말을 자주 듣는지 모른다. 


 오줌 尿, 똥 屎는 꽁무니(尾)에서 나오는 것으로, 물이면 오줌 뇨(尿), 고체면 똥 시(屎)이다. 글자대로라면 똥은 쌀을 먹어서 똥(糞)으로 변한 것이다. 大便은 큰 편안이고, 小便은 작게 편안한 것이다. 해우소(解憂所)는 근심을 쏟아내서 편안해지는 곳이다. 그것도 모를 줄 아느냐고 할 사람이 많겠지만 일의 대소경중(大小輕重)을 분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똥, 오줌을 구분 못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속담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 '똥뀐 놈이 성낸다'라고 했고, 중국에서는 적반하장(賊反荷杖), 賊喊捉賊(적함착적)- 도둑놈이 도둑 잡으라고 소리친다고 했다. 선거가 코앞인데 똥칠한 검찰들이 겨묻은 야당 잡범들을 법정으로 끌고 다니면서 자유와 공정을 외치고 있으니 댕댕이가 기막힐 세상이다. 요즈음과 같은 정치 사회적인 혼탁에서 나라가 정상적으로 발전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런 가운데에서 설령 경제상황이 좋아진다 해도 그것은 발전이 아니라 부황이거나 헛배가 부른 것이다. 우리가 경제선진국이 된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윤리와 양심을 잃는다면 지금의 경제번영은 사상누각이요, 허장성세일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통치자들의 국민에 대한 기본인식은 우민(愚民)이다. 오죽하면 공자도 백성을 다 이해시켜가면서 다스릴 수는 없다고 단언하였으니 일찌기 국민은 현명하지 못함을 간파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은 고등교육을 받은 국민이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통치자들은 강압과 기만술을 통치의 보도(寶刀)로 삼아왔다. 힘이 부치면 朝三暮四(조삼모사)로 달래고, 힘이 강해지면 指鹿爲馬(지록위마)로 겁박하는 우민통치를 지금 똑똑히 보고있지 않은가?  


  이러한 정객들에게 기만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은 일의 대소경중(大小輕重)을 가릴 줄 아는 지혜를 키워야 한다. 민주 시민의식이란 일의 우선순위를 아는 분별력을 말한다. 배울 만큼 배웠다는 자부심은 좋으나 웬만해서는 저들의 기만술을 견뎌내기 쉽지 않다. 견문이 짧은 노인들일수록 더 그렇다. 모두들 민주시민을 자신하지만 파쇼와 군사독재정치를 빼고 나면 우리 민주주의 실천은 겨우 30년을 넘겼으니 우리의 민주시민 의식은 아직 허약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국민이 현명해지면 정객들은 지금처럼 국민을 우습게 볼 수 없다. 현명한  국민을 호민(豪民)이라고 하였고, 호랑이라고도 하였지만 정작 우리 정치사에서 국민을 존중하고 두려워했던 정치인은 매우 드물었다.


 바야흐로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국민은 우민이 아니라 호민, 호랑이임을 저들에게 분명히 알려야 한다. 저질언론, 가짜뉴스, 정객들의 현란한 기만술에 또 속아넘어간다면 국민은 영원한 호갱을 면치 못한다. 당연히 후보들의 자질을 판단해야 하겠지만 한 달도 안 되는 단시간 내에 난장판 각서리들의 우열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번에도 어김없이 최선이 아니라 최악을 뽑지 않는 것이 최선이 되었다. 그렇다고 2년 단 한 번 쥐어보는 주권을 포기하는 일은 저들이 바라는 바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정권심판론’과 ‘정부밀어주기’를 유권자의 힘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심판론’은 정권의 과오가 많았을 때 합당하고, ‘힘실어주기’는 정부의 공이 많았을 때 필요하다. 2년간의 현 정부의 공과를 판단하는 것은 ‘뭣이 중헌디’를 가름하는 유권자의 지혜에 달려있다. 십만 원 법인카드와 수십 억 주식조작사건의 경중을 모른다면 댕댕이만도 못한 유권자이다. 실체불명한 개인의 비리 혐의가 싫어 국정무능, 무도불공정, 막가무지 경제외교를 방관한다면 민주시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설픈 진영론이나 안보론에 현혹되어서는 또 다시 댕댕무지렁이를 면할 수 없게 된다. 정치인들을 경멸하기 앞서 일의 대소경중(大小輕重)을 아는 것이 정치수준을 높이고, 나라를 살리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비상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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