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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Apr 18. 2024

1/3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다.

     

  나는 원래 각종 선거여론 조사를 불신하고, 그래서 그런 조사에 응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이번 총선 결과를 보니 신기하게 여론조사가 맞아떨어진다. 잘 알다시피 현 정부 국정지지율은 줄곧 1/3이었다. 그런데 신통하게 이번 선거 여당 당선자도 그와 같다. 우연이라기보다는  아직은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이 유효한가 싶기도 하다. 1/3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왜 자신들이 민심에 거슬리는 소수집단이 되었는지 반성했으면 좋으련만 ‘콘크리트가 고령토가 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대통령, 여당에서도 말로나마 선거결과를 겸허히 수용한다고 하는 판에 동창모임 단톡방의 친구들은 이번 선거결과를 두고 자성은커녕 嗚呼痛哉(오호통재)를 부르짖으며 당장 나라가 망할 것처럼 장탄식하고 있으니 나이 먹기가 두려운 일이다. 내 모교는 지방 명문고교로 지적 수준이 꽤 높은 편인데도 이렇게 시류에 어긋난 노털들이 적지 않으니 나머지 노인들은 더하지 않을까?


  다수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겠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대체로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원칙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수결 원칙이 다수의 횡포로 작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지난 대선이 0.7%의 다수가 윤대통령을 만들었는데 불과 2년만에 졸지에 1/3의 소수가 되었다.  1/3은 누가보아도 소수집단이 분명하므로 이들에 의해서 국론이 좌우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고, 그들이 민주주의의 주역이 될 수도 없다. 삼륜차가 바퀴 하나로 아직도 3년을 더 달려야 한다니 실로 두려운 일이다. 그들은 스스로 보수를 자처하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보수가 주류였던 우리 사회에서 보수가 겨우 3/1밖에 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므로 현 정부를 지지하는 3/1은 보수가 아니라 ‘불통수꼴’이거나 극우집단에 가까울 것이다.

 

 이번 총선결과만으로 말해도 1/3 소수집단의 구성원이 확연히 드러난다. 여당 당선자가 영남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지역편향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이념이나 정치적인 견해가 같아서라기보다는 망국의 지역감정에 의한 패거리 의식이 틀림없다. 심지어 말뚝을 박아도 여당이 당선되고, 공산당은 찍어도 야당은 찍을 수 없다는 말도 들린다. 호남지방이 일방적으로 다수에 속했던 것도 역시 같은 이유여서 슬픈 일이다. 그래도 지역감정이 없는 수도권이나 충청권이 다수집단에 속한 것이야말로 자연스러운 民意라서 위안거리이다.

 

 1/3의 구성원으로 또 하나의 집단이 70대 이상의 노인들이다. 초노령사회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어 걱정이다. 이들이 소수집단에 속한 이유는 노인 특유의 편견과 아집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교육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고, 사회에서 격리되어 소통력과 시민의식이 결여되어있기 쉽다. 80대 이상은 일제 강점하에서 민주주의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세대라는 점에서 우리 역사의 피해자이다. 그들은 6.25와 군사독재에서 성장했고, 경제발전을 이루어냈지만 성과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희생만 강요당한 세대이다. 70대는 6.25, 4.19, 군사독재에 대하여 대부분 방관자적인 위치에 있어 80대의 사정과 별 차이가 없다. 경로당에서 극우유튜브에만 열중하면서 마치 세상사를 다 안다는 듯이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굳게 믿고 있다. 천박한 지역이기주의에 휘둘리는 집단보다는 동정받을 만하지만 선거의 결과를 보고서도 반성은커녕 젊은이를 탓하고, 사회를 개탄하여 마지않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게 젊은이와 소통되지 못하는 노인들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여 초고령사회의 희생물이 되어가고 있다.


  또 하나의 정치적 소수집단은 기득권과 부유층들이다. 이들은 모든 이념이나 윤리적 가치관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과 부의 축적이 아니라면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자칭 보수라고 하지만 보수의 이념과는 상관이 없이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타락한 자본주의자들이 많다. 그러므로 보수, 진보, 민족과 나라의 장래, 윤리, 공정-   이런 것들은 묻고 따지지도 않는다. 부와 힘을 가진 이들에 의해서 우리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은 국민적 슬픔이요, 민족의 비극이지만 다행히 소수여서 그나마 다행이다.


  이들이 1/3 소수라 해서 도외시할 수는 없다. 소수라도 그들은 국론의 한 축이 틀림없다.  이태원 참사, 채상병 희생, 민생파탄, 북핵위협, 참담한 역사패륜을 비롯한 막가적 외교참사-  셀 수 없는 失政과 국론분열이 반복되는 이유도 이들이 맹목적으로 정부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선거전략이란 다수의 지지는 숫제 포기하고, 콘크리트 지지층 1/3을 기반 삼아 선거철에 15% 정도의 중도층만 끌어들인다면 된다는 계산이다. 만약에 이번 총선이 소수집단이 선호하는 정당이 다수당이 되었다면 나라는 그들의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가지고서야 어떻게 지역감정, 세대 간의 갈등, 빈부의 갈등을 해소하여 공정과 상식의 사회를 이룰 것인가? 


 속담에 ‘개꼬리 3년 묵어도 황모 될 수 없다’고 했으니, 대통령은 포기하고 이제 1/3이 각성해야 나라를 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은 나머지 3년을 마저 버텨내려 할 것이고, 그 안에 나라는 더욱 엉망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미래는 나머지 1/3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쟁이 아니라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이제 그만 망국적인 지역감정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젊은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노인이 될 수는 없을까? 기득권, 부유층이 특권의식과 물신주의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그렇더라도 야당이 총선승리에 도취하여 개혁을 명분으로 삼아 정치적 복수와 한풀이를 노린다면 역시 국민 다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나락에 빠진 정권이 3년이나 남아있어 한계가 크지만 처참하게 망가진 국정과 외교를 수습하고, 개선하고 개혁하는 일이 야당이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책임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살고, 나라가 설 수 있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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