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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조언자가 될 수 없다

by 주정현


요즘 청소년상담사 자격시험공부를 하며 문득 들었던 생각 하나.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가장 흔히 발생하는 오해 중 하나는 부모가 자녀에게 조언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부모는 자신이 아이보다 이미 인생을 더 오래 살아왔고, 청소년기를 거쳐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아이보다 인생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라는 말.

그러나 실제로는 그 말속에 함정이 숨어 있다.


부모가 살아온 청소년기는 지금 아이들이 살아가는 청소년기와는 전혀 달랐다. 수십 년 전의 학교 풍경, 친구 관계, 사회적 압력, 교육 제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부모가 학창 시절에 겪었던 고민과 좌절, 기쁨이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유효할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한 착각이다. 부모가 경험했던 청소년기의 규칙과 풍경은 이미 역사 속에 머물러 있고, 오늘날의 청소년은 새로운 시대적 맥락 속에서 전혀 다른 문제를 맞닥뜨리고 있다.


예를 들자면, 지금의 학교는 스마트폰과 SNS, 학원과 내신 경쟁, 그리고 다변화된 진로 선택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친구와의 관계도 교실 안에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서 끊임없이 이어진다. 왕따 문제조차 과거와 달리 물리적 단절이 아닌 디지털 공간에서의 따돌림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부모가 단순히 “나도 학창 시절에 외로웠어”, "친구 사귀는 게 힘들었어."라고 말하는 것은 아이가 실제로 겪는 고통과는 다른 결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부모는 아이의 삶에 전혀 관여하지 않아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엄마가 조언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의 삶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 아이가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아이가 가진 자원과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 세심하게 확인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이가 직접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도록 돕고, 스스로 해결책을 탐색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지할 때 부모는 비로소 훌륭한 상담자가 될 수 있다.


상담학에서는 ‘경험의 차이’를 강조한다. 단순히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경험이 있다고 해서 타인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험이 많을수록 자기 경험에 갇히게 되고, “나는 이렇게 했으니 너도 이렇게 하면 돼”라는 단순화된 결론을 내리기 쉽다. 그러나 상담에서 중요한 것은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부모 역시 아이를 대할 때 ‘정답 제공자’가 아니라 ‘경청자’이자 ‘동반자’로 서야 한다.


아이 입장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문제 자체보다도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일 것이다. 친구와의 다툼으로 속상해하는 아이에게 “나 때도 그랬어, 그냥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라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문제의 즉각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그 순간 느끼는 감정을 누군가가 온전히 들어주는 것이다. “네가 그렇게 힘들었구나, 그 상황이 정말 답답했겠다”라는 공감이 먼저 필요하다.


부모는 자녀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다만 아이가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도록 옆에서 지켜보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든든히 붙잡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아이가 문제 해결을 위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조언의 방식이다. 그것은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침묵 속의 지지와 믿음을 통해 완성된다.


결국 부모가 조언자가 될 수 있는 길은 하나다. 자신의 경험을 앞세우는 대신, 아이의 경험을 존중하는 것. “내가 살아봤으니 더 잘 안다”는 태도에서 벗어나 “네가 살아가고 있는 삶을 알고 싶다”는 태도로 전환할 때, 부모는 아이에게 가장 든든한 상담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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