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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리 Dec 16. 2023

퇴직 후 오트리 일상

2.  집밥 이야기

  [집밥은 꿈도 못 꾸었다]

   한국에서 자주 사 먹어도 별 탈이 없었는데 10여 년 전 딸이 미국에서 입국하자마자 포장마차 떡볶이를 먹고 병원에 입원까지 했던 것이 생각난다. 베트남에서 3년 생활을 하면서도 비슷한 경우를 겪었다. 현지인들이 자주 애용하던 학교 앞 시장 내 쌀국수를 한국직원들이 먹고 배탈이 심하게 났었다. 몇 번 배탈을 겪은 후에야 적응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떡볶이, 김밥 등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집에서 만들 수 있는 것들인데 난 그 당시에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들한테도 비슷했던 상황인데 3가지 이야기가 있다. 중학교 가기 전 장래희망이 요리사였는데 맛있는 것을 직접 해 먹고 싶어서였다는 것이다. 당시 요리사가 꿈이라고 하면 웃음거리였던 시기였고 이 사실을 동네 엄마들이 나한테 알려주면서 키득거렸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아들은 두 번 다시 요리사 꿈을 떠올리지는 않았지만... 두 번째 학교 급식이 맛있다는 것, 세 번째는 군인 시절에 군 음식이 맛있다는 것이다. 엄마가 맛있는 것을 별반 만들어주지 않으니 그랬던 것 같다.이다. 다른 엄마들처럼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수시로 해주었다면 학교 급식이나 군대 음식이 그렇게 맛있다고 평가할 수 있었을까? 여하튼 자녀들에게 나의 반찬 솜씨를 최하로 평가받고 있었던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맘 편히 지냈던 것이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수십 년 동안 김치 한번 담가보지 않고 이순의 나이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항상 내 주변 누군가의 음식솜씨가 나보다 위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결혼 전엔 아예 반찬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던 같다. 직장과 결혼 생활이 동시에 준비도 없이 겁 없이 시작했던 것이다. 서울에 살면서 자녀가 어릴 때는 반찬 솜씨 좋은 할머니를 만났다. 너무 맛있게 먹어주는 우리 부부를 오히려 고마워하셨다. 청주로 이사 후에는 가까이 사는 음식 맛이 좋은 친정어머니 덕분이었다. 남편조차 장모님 김치와 반찬이 맛있다고 흡족하게 여겼다. 갑자기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는 초중생이던 손주들이 걱정되어 시모님께서 콩자반 등 반찬을 수시로 채워주셨다. 박사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가끔씩 챙겨주시는 반찬으로는 해결이 안 되어서 반찬가게 또는 맛집의 국을 사다가 냉장고를 채웠다. 가족들과는 주말마다 맛집을 찾아다니며 외식을 즐겼다. 집에서 음식을 나누는 것보다 외식 중 쌓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며 그럴듯한 변명을 했던 것이다. 당시에 가족 중 누구도 불만을 표시하지는 않았는데 아예 나의 반찬 솜씨를 포기했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는 것을 최근에야 눈치채게 되었다. 최근 집밥을 먹게 된 아들의 반응이다. " 엄마가 이렇게 반찬을 잘하실 줄 학교로 복귀한 후에 시간여유가 생겼는데도 반찬가게에서 완전히 조리된 것이나 반 조리된 것을 사 먹는 일이 많았다. 코로나 19 이전까지는 쭈욱 그랬다. 바쁨이 끝날 정년퇴직 후 요리학원에 가서 반찬 만들기를 제대로 배우겠노라고 늘 속으로 생각해서인지 가족한테도 미안한 맘은 크게 없었다.


[코로나19 이후 달라졌다]

  그러나 2021년 코로나 19 발생 후 직장, 친목회 등 밖에서 식사모임이 사라지고 귀가 시간이 일정하고 빨라졌다. 자연스럽게 집에서 먹을 음식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집에서 식사를 자주 가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유튜브를 따라 하며 반찬 만들기를 시작해서 국, 찌개, 김치는 물론 겨울 김장도 담그게 되었다. 내가 만든 김장김치, 된장찌개, 나물 무침 등 시부모님에게도 갖다 드렸다. 원래 칭찬을 즐겨하시고 유머도 잘하시는 분이 과장법까지 쓰시면서 ' 너의 반찬 솜씨에 2번이나 쓰러질 뻔했다'라고 하셨다. 그 후에도 집반찬을 유통기한까지 포스트잇에 부쳐드리니 무척 좋아하셨다. 그즈음 시모님 손가락이 불편해 일상생활이 다소 어려웠었다. 효자 아들 5명이 보내거나 갖다 드리는 반찬이 냉장고, 냉동실에 수북하게 쌓였다. 서울 거주하는 백화점 사장인 아들은 가장 질 좋고 비싼 국, 반찬, 고기까지 택배로 보냈다. 다른 아들들도 반찬가게에서 가장 비싼 반찬, 국을 제공했다. 처음에 신이 나셨던 시부모님은 냉동실에 쌓이는 팩에 담긴 반찬들로 질려하셨다. 번갈아가며 반찬을 대령하라고 주문하셨다. 그래도 여전히 산 반찬, 국이나 찌개가 수북이 쌓였다. 시모님은 나에게  ' 버려지는 반찬들이 많은데 네가 가져온 반찬은 절대 버리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요리사인 동서도 있고 모두들 요리솜씨가 좋았다. 시모님은 가장 서투른 며느리가  직접 집에서 만들어 가져다 드린 반찬을 특히 고마워하신 것 같다. 평생 동안 받기만 하다가 그 정도라도 시부모님께 집반찬으로 기쁨을 드린 것 같아서 나 또한 기쁜 맘이었다. 별세하시기 얼마 전 집 반찬을 싸들고 시부모님 댁을 방문했을 때  ' 내가 걱정이 많았는데 네가 이렇게 밥반찬을 제대로 만드니 정말 좋구나'라고 하셨다. 당신 아들과 손주들에게 제대로 된 집밥을 해줄 수 있는 안도의 마음을 드린 것 같다. 


[자녀들에게 집밥을 해주기 시작하다]

 내 자녀들이 내 집에서 몇 번이나 올 수 있을까? 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딸은 1년에 한두 번 오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은 얼마나 자주 내려올 수 있을까? 우리 부부 생일, 자녀생일, 어버이날, 추석, 설 등 꼬박 온다고 해도 10번 이내이다. 그럼에도 해외 출장, 어버이날과 추석에 맞닿은 우리 생일로 5번 정도 올 수 있는 처지이다. 양력과 음력 생일 날짜에 혼선, 해외 출장이나 여행 중에는 아예 깜박 잊을 수도 있다. 기억해주지 못하는 자녀에게 섭섭함이 몰려올 수 있는데 이런 감정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름 우리 집만의 룰을 정했다. 실제 생일날 만나는 것이 거의 어려우니 내 집에 오는 날은 무조건 미역국을 먹자고 제안했다. 내 집에 오는 날이 누군가의 생일에 맞닿을 수도 있고 며칠 지나갈 수도 있다. 미역국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다. 외국에 사는 딸은 우리 토종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 그래서 식혜, 약식, 불고기, 잡채는 기본으로 하기로 했다. 떡보기나 김밥은 추가메뉴이다. 아들은 연어스테이크, 또는 쇠고기 스테이크, 언제나 고등어를 주문한다. 쿠팡으로 주문하면 당일 새벽에 도착하니 하루 전날 주문해서 숙성을 시켜도 좋다. 처음 하는 것들이지만 요즘은 유투버들을 따라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타르타르소스도 만들고 겉바속촉의 연어스테이크를 어렵지 않다. 에어후라이어가 있어 고등어 굽기가 참 쉽다. 고등어 비린내 제거를 검색하면 지느러미를 잘라내고 쌀뜨물에 담근다. 제일 쉬운 방법이다. 비린내 제거를 위해 고등어 껍질을 통째로 벗기라고 해서 시도해 보았다. 이 방법은 쉽지는 않다. 그래서 전자의 방법으로만 해도 비린내를 제거할 수 있으니 후자의 방법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갑자기 예고 없이 방문하는 경우가 아니면 외식을 하지 않고 집밥을 먹는다. 이렇게 한지 만 2년이 되었는데 아직까지는 아들이 꽤 만족스러워한다. 더욱이 과거 식사를 잘 챙기지 못했던 것을 떠올리며 현재 '엄마의 변화’를 무척 좋아한다. 세종시 내 자녀 집밥은 내가 병원신세를 지거나 해외여행 중인 경우가 아니면 쭈욱 지속될 것 같다. 


[20230902 - 첫 번째 집밥]

  내가 퇴직한 지 이틀째인 9월 2일, 아들 여자 친구 집밥초대를 했다. 아들 여자 친구를 처음 만나면서 집밥은 서로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식당에서 하자고 했지만, 해오던 대로 집밥을 해주고 싶어서 그리 했다. 여자 친구의 기호를 물어보니 특별한 것이 없다고 해서 아들 기호에 맞췄다. 그동안 아들에게 밥상을 차려준 것처럼 그대로 했다. 다만 아들과 동일한 크기의 연어스테이크가 양이 많았던 것 같다. 핑크색 안개꽃, 포토테이블, 수저, 커피잔 등 몇 가지는 새롭게 준비했는데 마치 대접받는 느낌을 준 것 같다. 첫 만남 이후 둘의 관계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으니 집밥 초대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해도 될 것 같다.  

 



[20231014 - 2번째 집밥]

  직장 생활할 때는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퇴직 후 집밥 초대를 자매형제, 사촌, 제자, 전 동료,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에게도 적용하고자 나의 버킷리스트에 포함시켰다. 


  책 "영어공부방향이 먼저다"이 여러 우여곡절 끝에 9월 22일 출간되었다. 생애 처음으로 쓴 책, 이 책을 구성하는 큰 몫을 한 여러 명의 기고자들이 있다. 이분들한테 원고를 요청할 때도 충분히 시간을 줄 수 없었던 상황 등 여러모로 애쓰시고 고생하신 분들을 위해 집밥을 해주고 싶었다. 이날 새롭게 준비한 것은 샐러드 소스를 2가지(오리엔탈 소스, 레몬소스)를 준비한 것이다. 레몬을 사서 직접 착즙을 해서 만들었는데 오리엔탈 소스가 무난하고 더 인기가 있는 듯했다. 낙지볶음도 처음으로 시도했다. 낙지에서 나오는 수분을 잡기 위해 달궈진 냄비에 낙지를 지지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낙지볶음 반응이 의외로 좋아서 향후 공통 메뉴에 포함하기로 했다. 이날 머리를 커트하면서 미장원 원장이 10월은 송이버섯을 먹는 계절이라 하면서 자신이 구입한 송이버섯을 보여주었다. 실속 있는 것으로 구입했다고 하면서 보여준 것이 손가락 굵기 정도였다. 진작 알았다면 나도 그것을 구입할 기회가 있었다고 했다. 여하튼 약간의 아쉬움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아우가 잠깐 들러서 주고 간 것이 송이버섯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 아마 난 미장원에서 듣지 않았다면 송이버섯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도 못했을 것 같다. 버섯향이 어찌나 진한지 온 집안에 퍼졌다. 나를 포함 이렇게 큰 송이버섯은 처음 먹어본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인상 깊은 아우의 선물로 오래오래 기억할 것 같다. 


< 책 나눔 후 한컷>


[20231125 - 3번째 집밥]  

  결혼한 지 40년 가까이 되면서 친인척을 내 집에 몇 번은 초대했다. 지금이야 백일, 돌 기념을 집에서 하지 않지만 그 당시 음식은 물론 떡도 집에서 직접 했다. 시어머니께서 경단을 만들어 오시어 서투른 음식 솜씨가 조금은 커버되었던 기억이다. 워낙 대가족이라서 친정과 시댁 식구들을 나누어 초대했다. 그때는 결혼할 때 준비해 간 15권으로 된 요리백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사 갈 때마다 다른 책들은 대폭 버렸지만 요리 백과책은 10여 년 전 해외파견 가면서 버렸던 기억이다. 

  친정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내 집에서 모여 식사자리를 가졌다. 우리들의 생일이 연중 퍼져 있는데 오라버니를 포함하여 음력 10월이 생인인  숫자가 가장 많으, 생일 축하의미로 집밥 초대를 했다. 박사과정 수업 등 부득이하게 2명의 올케는 참석하지 못했다. 아우가 엄마표라고 이름 지어준 미역국의 반응이 최고였다.  오라버니 부부는 식혜를 가장 즐겨하는 것 같았다. 여동생은 딸이 선물한 차 주전자에 담긴 녹차를 독차지했다. 이날 새롭게 준비한 것은 묵은지 등갈비찜이었다. 묵은지를 맨 밑바닥에 깔고 신맛을 없애기 위해 설탕을 뿌려주는 것, 등갈비를 차곡차곡 넣은 후 맨 위에도 묵은지로 덮어서 푹 끓여주면 되었다. 간단하고 맛도 좋아서 다음 집밥 초대에 이것도 추가하기로 맘먹었다. 정리하지 못한 형제들의 어릴 적 사진들을 보며 웃음과 이어진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큰 올케가 늘 나를 철없는 아이 취급을 했는데 이날은 여러모로 과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무거나 잘 먹는 성향이 아닌지라 걱정했는데 그런대로 흡족해하는 것 같아서 다행스러웠다.  


<거실에서 한컷, 사진관 같네요>

[20231220 - 4번째 집밥]

  12월 20일 독서동아리 멤버들과 함께 집밥을 먹었다! 저번과 동일하게 식혜, 약식, 불고기, 낙지볶음과 콩나물, 장아찌류, 두부샐러드를 준비했다. 집밥 준비에 미역국이 기본이었는데 회원들이 젊은이들이라서 미역국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2년 전 김장을 하면서 킬로그램에 관한 가늠이 부족해 대파를 너무 많이 구입, 보관이 쉽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대파를 주재료로 엄청나게 많은 양의 파 육개장을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오래오래 끓여도 뭉개지지 않는 파! 은근히 강한 야채라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냉동실에 두고두고 먹어도 미역국처럼 맛의 변화를 크게 느끼지 않아서 파육개장에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엔 고춧가루를 전혀 넣지 않고 파개장을 시도했는데 의외로 맛이 났고 반응도 좋았다. 혹시나 해서 고추 다대기를 준비했는데 아예 손을 대지 않았다. 파개장은 요리하기도 쉽고 미리 끓여놓을 수 있어서 다음번에도 자주 활용할 것 같다. 저번 샐러드 소스가 너무 많이 남아서 이번엔 오리엔탈소스 한 가지만 준비해서 각자 뿌려먹도록 했다. 샐러드 야채는 물론이고 에어프라이어에 튀긴 두부는 여전히 인기가 좋았다. 지난달 집밥초대에서 묵은지와 등갈비를 처음 시도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이번엔 묵은 갓김치 약간에 묵은지 국물을 주로 하고, 쌀뜨물, 설탕과 미향을 넣고 등갈비를 해보았다. 김치국물을 주로 사용하는 것은 처음 해보는 것으로 은근히 걱정했는데 한조각도 남기지 않고 순삭 했다. 

 

< 한마디 >

  

[240120- 5번째 집밥]

  자녀들이 따로 살면서 어쩌다 집에 오니 손님이다. 엄마 힘들다고 외식하자고 하는데 퇴직 후 시간도 있고 집밥 해주는 기쁨이 크니 그리 하자고 했다. 아들 여친이 함께 온다니 요리 뚱손임에도 이것저것 해주고 싶은 것이 많다. 생각하고 계획한 것을 모두 준비하지는 못했다. 

 

   이번 집밥 초대는 시간 착오가 여러 차례 있었다. 손만두를 미리 만들어놓았는데도 떡국은 식사 시간에 임박해서 끓여야 하니 불편했다. 손만두, 소고기 고추전, 참치 깻잎전은 양을 조절하지 못해서 많이 남았다. 전들은 미리 준비했어도 당일 프라이팬에 다시 데워야 하니 기름 냄새, 번거로움이 있었다. 구절판 음식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특히 당근과 부추를 활용한 밀전병을 만들었는데 녹색 밀전병의 색이 어찌나 이쁘던지... 전날 얇게 부쳐서 당일 사용하려고 하니 당근 밀전병은 너무 얇아서인지 수분이 말라 버려서 모양이 나질 않았다.  전날 해놓은 것을 그대로 담기만 하니 편리하니 구절판 요리에 보통 사용되는 쇠고기 대신 새우로 대체한 것은 잘한 것 같다. 소스 뿌린 생야채를 덜 선호하는 우리 부부는 밀전병 대신 무쌈으로 구절판 음식을 평소에도 종종 해 먹을 것 같다. 2번째 만들어 본 족발인데 이런 것까지 집에서 만들 줄은 나 자신도 몰랐었다. '맛있다'는 것이 최고의 칭찬이고 격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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