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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brey Jun 08. 2023

디자인하는 게 두려울 때

작업이 막막하고 피드백이 두려울 때 이겨내는 법 

디자이너라면 ( 물론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누구나 작업이 막막해지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가끔 나는 백지상태의 피그마 페이지를 채워보려고 레퍼런스 이미지를 4시간 넘게 찾아도 작업을 시작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상하게 경험이 늘수록 점점 시작하는 게 두려워짐을 느낀다.  

보는 눈이 높아질수록 나의 감각이 형편없게 느껴지고 나온 아이디어들의 단점이 선명하게 보이는 순간,
지금 내가 구상하는 것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분명 있을 텐데... 하며 글로 정리하는 시간이 하염없이 늘어난다. 물론, 글로 정리하는 시간과 레퍼런스 조사하는 시간의 비율을 실제 작업하는 시간보다 길게 잡는 것은 작업의 퀄리티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지만, 문제는 작업단계로 넘어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 작업을 시작할 타이밍이 너무 늦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두려움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나 같은 경우엔 디자인을 막 시작했을 때부터 존재했었던 것 같다. 디자인은 순수예술과 다르게 누군가를 만족시켜야 하는 상황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클라이언트나 소비자등)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비롯된 두려움이 스멀스멀 마음속에 피어오르면, 작업을 시작하는 아이디어 구상 단계서 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순수 예술은 내 멋대로 해도 괜찮았다면) 디자인은 항상 정답이 있는 느낌이랄까? 내가 정말 문제를 잘 풀었을 때, 고객 좋아해 주고 팀원이 좋아해 주는 모습을 보면서 점차 나의 결과물에 대한 책임감이 커지고 있음을 느낀다. 정답을 맞히고 문제를 정말 잘 풀었다는 생각이 들면, 심장이 저릿하는 짜릿함이 느껴지지만 그런 전율이 없을 땐 대체로 더 잘 풀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아쉬움은 고스란히 다음 작업으로 이어져서 작업을 진행할 때 심리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주곤 한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식으로 가다간 디자인 자체가 싫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심했을 때는, 외주를 받아 열심히 작업하고 반응을 지켜보기 위해 피그마에 들어가서 외주사 팀원들의 마우스 움직임을 계속 관찰하며 반응을 예측하는 정도였다. 또 만족했다는 답신이 안 오면 하루종일 불안함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작업 규칙을 세울 필요성을 느꼈다. 

1. 레퍼런스 조사와 글로 정리하는 시간에 제한을 두기 

2. 일단 무조건 작업 시작하기 

3.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 

4. 내 작업물과 나를 분리시키기 


내가 찾은 방법은 더 좋은 아이디어 더 완벽한 구상을 하기 위해서 버리는 시간을 단축하고 일단 무작정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준비가 안된 상태더라도 작업을 시작하고 진행하다 보면 진행을 못하고 있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면서 심리적으로 조금 편안한 상태가 된다. 이런 심리적인 조건에서는 작업물이 더 편하게 나오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두려워지는 원인인 완벽주의 성향을 인정하고 내려놓는 것이다. 내 작업물이 완벽했으면 좋겠고 적어도 내 눈엔 결함이 안보였으면 좋겠는데, 사실 그러기 쉽지 않기에 애초에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부족한 내 작업물을 디벨롭 해가는 과정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을 연습하고 있다.
객관적인 시선만 유지하고 계속해서 발전시킨다면, 내가 원하는 퀄리티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열심히 또 치열하게 디벨롭하면 된다.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 동료의 피드백에도 무덤덤해질 수 있다. (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날카로운 피드백엔 덤덤해지기 쉽지 않다..)

예전에 교수님이 핸드폰 배경화면에 작업물을 설정해놓는 방법을 추천해 주셨다. 

아침에 일어나서, 길을 걷다가, 시계를 보려고 등 일상 속 다양한 순간에, 다양한 조명 안에서 내 작업물을 바로 보면 단점이 선명하게 보인다. 신기하게도 이 방법이 내 작업물을 객관적으로 보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또한 나의 작업물은 내가 아니고 내 작업물은 언제든지 고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작업을 해야 한다. 내 시간과 노력, 애정이 듬뿍 들어간 나의 작업물과 동일시되는 경험을 수도 없이 했지만, 회사에서의 내 작업은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것을 항상 명심하고 나는 그 순간에서의 최적의 답을 내놓는 행위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때문에 여러 사람의 합리적인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 
나에게 완벽해 보이는 디자인도 유저에겐 아닐 수 있기에 정답의 기준을 데이터에 두고 생각하는 습관도 중요한 것 같다.


요즘 계속 저 작업 규칙을 생각하며 디자인에 임하고 있지만, 사실 생각보다는 쉽지 않다
'일단 작업하기'를 계속 되뇌며 외부 반응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 이 글을 쓰며 다른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혹시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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