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cob Lee Jan 10. 2020

수치심, 어디까지 가봤니...

가난한 자의 수치심과 그 결과

영화 리뷰는 아니고 영화 보다가 떠오른 생각들을 끄적여 보는 시간. 물론 영화 결론도 있으니 영화에 대해 모르고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알아서 하시길.


영화 카센타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이 가장 참기 힘든 정신적 고통 중 하나인 "수치심"을 나타낸다. 


가족으로부터의 무시, 동네에서의 멸시, 부조리의 합리화, 그리고 생계를 위한 섹스.

아내는 수차심에 돈으로 위로를 받고 살지만, 남편은 수치심에 분노와 폭력으로 대처한다. 


보통 인간은 극심한 수치심을 느끼면,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분노를 느끼고 그 분노증오복수, 폭력 등으로 분출된다. 


수치심 하면 미드 영좌의 게임에 세르세이 라니스터의 Walk of Shame이 대표적인데, 그녀의 분노는 다 죽여버리는 결말을 맞이한다. 이것은 보통 돈이나 권력을 가진 자의 복수이고. 


영화에선 남자 주인공이 레미콘 트럭을 몰고 카센터로 돌진하며 자폭하는 결말을 보여준다. 돈이 없기 때문에 타인에게 해를 가하진 못하고 수치심의 상징이자 근원인 카센터에 분풀이를 하게 된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가다(폼잡기)가 극에 달했던 시기. 내 걸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선배가 나를 화장실로 불렀다. 학교 본관 뒤 오래된 구식 화장실로 구름이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장소이다. 어디서 가다 잡냐고 나를 소변기로 밀어 넣고 싸대기를 찰싹찰싹~ 그러다가 같은 합기도 도장을 다니던 선배가 지나가다 나를 발견하곤 구출해 준다. 나를 때리던 놈은 '아~ 너그 도장 후배가?' 하면서 나에게 미안하다고 일천 원을 쥐어 주었다. 당시 천원이면 라볶이 2개를 사먹을 수 있는 작은 돈은 아니었는데, 나를 팼던 선배놈이 간 후에 난 그 지폐를 내가 처박혔던 소변기에 내 눈물과 함께 던져버렸다. 


살면서 많은 일들이나 중요한 것들은 잊어버리는 게 우리의 뇌인데 이 수치스러운 일은 왜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나 모르겠다. 


작년 (2019)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중장비 대여업체에서 트럭운전 및 야드 매니저를 하고 있었는데, 그 날은 일을 너무 못하는 노동자 2명을 해고한 뒤에 3명의 일을 혼자서 하고 있을 때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일과 우선순위의 일들을 정하고 하나씩 해나가고 있었는데, 사장이 와서는 자기가 시킨 일 안 하고 있다고 다짜고짜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이 인간은 중동 출신의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존재로써 폭력전과가 있고 손님과도 주먹다짐을 한 경력이 있다. 그 날은 나도 화가 났고 서로 소리지르기 시작했는데, 결국은 그 사장은 주먹으로 나를 치기 시작했다. 보통은 나도 맞고만 있진 않는데, 그 날은 그 인간을 바라보는데 마냥 측은하게 보였다. 그날을 마지막으로 그 직장을 그만두고 그 인간은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보지 않았다. 


집에 오는 길에 차에서 눈물이 무슨 수도꼭지 고장난거 마냥 주룩주룩 흐르는데 그 후 몇 달 동안이나 증오와 복수심으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회사 위치나 그 사장 집 가족들 다 알고 있어서, 완벽한 범죄를 위해 여러 가지 복수 방법을 준비하고 날짜까지 정해놓고 있었다. 




살면서 수치심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재정적 독립 (노동을 하지 않고도 생활 유지가 가능한 상태) 이 가능한 부(상위 1프로)를 가지지 못한 99프로의 사람은(나와 당신 포함) 돈 때문에 받은 수치심을 돈 때문에 참고 살아가야만 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나도 차에서 눈물을 흘리며 내가 돈이 많았더라면 저런 인간 밑에서 일하지 않아도 될 텐데.... 라며 수치심에 대한 1차 반응으로 자기 비난 혹은 신세한탄을 했다. 그 후 찾아온 분노는 여느 가난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복수와 증오로 한 동안 나를 괴롭힌다. 


여기서 "가난한 사람"은 물론 표면적으론 재정적,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계층의 사람들 일 수도 있지만, 내가 오늘 뜻하는 바는 성숙한 방어기제를 가지지 못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다. 


영화 카센터의 재구가 되었건, 미드 게임오브쓰론의 세르세이가 되었건 돈과 권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 삶에 수치심이 찾아왔을 때, 세트메뉴 같이 딸려오는 분노를 증오, 복수, 폭력으로 대처한다면 가난한 사람이지 않을까. 




분노


분노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분노를 해야 하는 순간에 용기가 없어 참는다거나, 침묵해야만 하는 환경이라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넘어가는 것은 정신건강에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우리는 분노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분노해야 할까? 


안타깝게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화를 내고 상처를 준다. 강자에겐 고개를 숙이고 약자에겐 폭력을 휘두른다. 정도가 심하면 불특정 다수에게 방화나 폭력으로 상해를 입히기도 한다. 


분노는 우리 몸에 극한의 스트레스를 줘서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등의 호르몬을 다량 배출시키는데, 이 놈들을 스스로를 죽이며 타오르는 증오에 휘발유를 뿌리는 어리석은 비이성적 행동을 하게 된다. 



마음이 부유한 사람(성숙한 방어기제를 가진 고수)은 분노를 자기반성과 변화의 동력으로 쓴다. 수소는 잘만 저온 보관한다면 청청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듯,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분노는 냉철한 이성으로 사용한다면 삶에서 다시는 그 날의 수치심을 느낄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자

성장하자

고통과 유혹에 인내하고 

졸꾸하자 

인티프레질한 존재가 되자.


다시는 수치심이 내 삶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무리-


수치심에 공감하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재정적 독립을 얻고 마음이 부유해지는 날이 속히 오길 기대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여행을 가야만 하는 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