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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림 Dec 09. 2020

지금, 디자인 학과의 졸업 전시-주제와 방향성

졸업 전시의 주제와 방향성 설정하기



1

나는 평소에 이것저것 하고 싶은 프로젝트들이 많았다.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이 항상 마음속에 있었으나, 그것을 시작할 마땅한 계기나 기회가 없다... 는 핑계로 미루고 리스트업만 해둔 채 가끔씩 시간이 나면 그것들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재미난 생각들을 펼치곤 했다.


졸업 전시는 꽤 긴 시간을 투자하기 때문에 작은 프로젝트보다는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었다.

크고 작음의 기준은 '절대 시간'이었다. 간단한 주제일지라도 그것을 풀어나가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큰 프로젝트로 간주했다.

큰 프로젝트들을 모아 놓고 나면 그 안에서 또 한 번 선택을 해야 한다. 나의 경우 두 번째 선택 기준은 '쓸모'였다. 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나의 디자인이 쓸모 있기를 바랐고, 그렇게 마지막으로 선택한 프로젝트가 교과서 디자인이다.


나는 학생 때 항상 '교과서가 조금 더 예뻤다면, 내가 교과서를 더 사랑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졸전이 아닌 학기 중 과제로 교과서 디자인을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짧은 자료 조사만으로는 프로젝트에 손도 댈 수 없음을 깨닫고 마음속 리스트에 보관해두었다.

그리고 조금은 관계없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졸업전시 주제를 고민하던 시기에 접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초등학생인 살인사건 기사가 주제를 선택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사건이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더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마치 그것이 내 잘못 같았고, 어른들의 무관심의 무관심이 더해져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생각에 아이들을 위한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처음엔 청소년들을 위한 플랫폼을 구상했으나,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담고 있었던 교과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가장 많이 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교과서이기 때문에. 교과서에 대한 관심이 곧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되리라 생각했다.



2

그렇다면 좋은 교과서는 무엇일까.

학생 시절에 생각했듯 단순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선 안됐다. 지식의 효과적인 전달? 스스로 학습하는 인재를 만드는 교과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교과서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그것에 대한 답을 찾기란 정말 어려웠는데 의외로 그 답의 실마리를 학생 시절의 내가 가지고 있었다. '교과서가 더 예뻤다면, 교과서를 더욱 사랑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은 비록 예쁜 교과서가 전제였지만, 교과서를 더욱 사랑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학생들이 사랑하는 교과서가 곧 좋은 교과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사랑해 마땅한 교과서는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관점으로 교과서를 바라보니, 배치와 여백을 수정하고 시각자료들을 '개선'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했다. 그 질문에 대해 내가 (감히) 내린 답은 '다양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교과서'이다. 상호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에 사람들의 관심이 머무르고 아이들은 다양한 관심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것이 친구와의 상호작용이든, 선생님과의 상호작용이든 상관없이 모두 중요하다. 이렇게 상호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상황에서 최종적으로 '학생과 교과서가 더욱 밀접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기획단계의 마인드맵 스케치


3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여러 교수님들의 다양한 피드백이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중요한 피드백으로는, 내가 서책형 교과서와 디지털 교과서 두 가지 미디어를 혼합해서 사용하려 했을 때, '둘 중 하나의 미디어만으로 완벽할 수 있다면, 두 가지 미디어를 혼용하는 것이 더 불편하지 않겠냐'는 물음이었고. 이에 완벽히 동의했다.


나는 종이매체를 어떻게든 사용하고 싶었다. 디지털 기기 중독 문제나, 오래 봐야 하는 교과서의 특성상 눈의 피로와 관련된 문제들도 있고 무엇보다 내게 종이 매체를 통해 얻은 교과서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둘 중에서 반드시 택 1을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디지털 교과서를 택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서책형, 디지털형 혼합 미디어 교과서 프로젝트는 디지털교과서 프로젝트로 바뀌었다.


또 다른 피드백으로는, '현재의 디지털 교과서와 먼 미래의 디지털 교과서 사이에서 내 프로젝트는 현재에 가까운데, 조금 더 먼 미래의 교과서 쪽으로 축을 이동시켜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피드백이 있었다. 이것이 어떤 고민인 줄도 모른 채 고민하던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콘텐츠를 바꾸거나 편집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지금의 교과서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너무 허무맹랑해 보이고, 타당성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지금의 콘텐츠를 그대로 사용하자니 완성된 모습을 상상하면 껍데기만 바꿔 끼웠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축을 설정한 후로는 작은 요소 하나에도 망설여지던 전과 달리 자신감을 가지고 결정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서책형/디지털형 교과서 디자인 프로젝트를 주제로 잡았지만, 나는 에디토리얼 디자인에 배움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고, UI/UX는 경험 자체가 전무했다. 짧은 시간 안에 기본이라도 제대로 다져보자는 마음으로 졸전 외의 수업에서 나를 지도해주셨던 교수님께 나의 상황을 설명드리며, 도움이 될 수 있는 도서 추천을 부탁드렸다. 교수님은 도서 추천과 함께,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면, 왜 졸업전시에서 능숙하지 못한 분야의 디자인을 하냐는 말씀을 주셨다. 어떤 교수님께서는 교과서라는 주제는 내가 절대 감당 불가능한 것으로 (백번 공감한다.) 보조 학습용 교제로 프로젝트 방향을 바꾸어 보는 것을 권하셨다. 또 어떤 교수님께서는 지금보다 과목을 늘려보라고 하셨다. (과목마다, 접근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고, 프로젝트 초기부터 반드시 고려해봐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해당 분야에 능통한 사람들이 나의 작업물을 본다면, 허점 투성이에 허무맹랑한 작업이라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또 다른 목적인 '교과서를 디자인의 관점에서 접근해 보는 것', '그 시도로 하여금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것'의 일정 부분은 달성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프로젝트 자체의 목적인 '학생들이 사랑하는 교과서'를 달성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지만 전시를 보는 이들이 지금의 교과서와 앞으로의 교과서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의미 있는 일이다.




많은 도움을 받아 완성된 졸업전시가 지난 토요일에 온라인으로 오픈했습니다 :) 모자람이 많은 전시지만, 시간 내서 둘러봐주신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https://www.behance.net/gallery/109866859/MODU-Digital-Text-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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