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일차_우리는 서로를 너무 모르고

내려놓음

인간관계에 많이 연연하지 않는 편이다. '연연하지 않는다'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기준은 인간관계에 있어 엄격하지 않다는 의미다. 그냥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둔다. 노력이 필요한 부분은 신경을 쓰지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범위까지 신경쓰지는 않는다. '꼭 이래야 한다'는 것은 거의 없다. 상대방에게 요구나 강요도 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상대방의 요구나 강요에 잘 부응하지도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타고난 성향 자체도 사람들과 있는 것보단 혼자 있는 게 더 익숙하기도 하고, 먹고 사는 게 바빠서 미처 신경쓰지 못한 부분도 많았다. 또, 내가 인간관계에 연연한다고 해서 꼭 그 관계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괜한 기대나 실망을 내려놓고, 부자연스럽게 애쓰려고 하기보단 그냥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진출처 : 픽셀스

이런 태도 때문인지 오해가 생겨 멀어지거나 앙금이 쌓여 싸움으로 번진 적도 있었다. 몇몇 인연과는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관계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감정 없는 것은 아니다. 한 시절 귀하게 여긴 사람들과의 작별이 어떻게 슬프고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서로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관계를 억지로 끌고가느니 그냥 어느 시점엔 내려놓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에 도달하기까지 아픈 과정을 거쳐야 했다.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인가 고민할 때도 많았고, 한편으로는 내 성향을 있는 그대로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속상할 때도 있었다. 갈등이 생기면 다 내 잘못 같아서 괴로웠다. 고치려고도 해봤는데 잘 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끝내 회의감이 찾아왔다. 관계에서 자꾸 의도치 않게 생기는 오해들과, 그 오해를 풀기 위한 구구절절한 말들과, 그로 인해 날카롭게 곤두선 신경은 나를 점점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마음을 내려놓았다. 

각자의 입장

인간관계가 한 차례 정리되고, 아프고 괴롭던 시절이 지나가니 지금은 마음도 정리되고 한결 편해졌다. 앞으로는 이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균형 잡는 연습을 더 해야겠지만.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내가 애쓴다고 해서 다 좋게 흘러갈 수는 없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사람마다 성향도 환경도 가치관도 다 다른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과 내가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 

한 번은 모든 걸 자기 기준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을 곁에 둔 적이 있다. 누구나 자기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면은 있으니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점점 아닌 척하면서 나마저 자기 기준에 맞추려고 들었다. 나중에는 내 입장은 생각도 안 하고 자기 입장만 들먹이며 서운함을 표현했다. 내가 왜 본인의 상황에 맞추어주지 않는지 오히려 이해를 못 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일방적으로 기울어가는 관계에 지쳐서 관계 종결을 선언해버렸다.

사진출처 : 픽셀스

그 뒤로 나는 다른 사람에게 '별로인 사람'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게 됐다. 어차피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내가 나에게 별로인 사람이 되느니, 차라리 다른 사람에게 별로인 사람으로 비춰지는 게 더 낫다. 누구나 어떤 이에겐 좋은 사람일수도 있고, 어떤 이에겐 별로인 사람일수도 있다. 내게도 모든 사람이 다 좋을 수는 없듯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면 오히려 혼란스러워질 뿐이다. 

예전에는 섣불리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들었다. 아무리 비슷한 시기나 경험이 있다고 해도 상대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는 없음에도 내게서 최대한 비슷한 것들을 가져와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건 상대방에게도, 나에게도 독이 될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이해한다거나 공감한다거나 하는 행위에 대해서 보다 조심스러워졌다. 

우리는 어차피 서로를 너무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함께 살아간다. 이해나 공감 외에 각자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거나 나름의 방식으로 배려할 수 있는 것이다. 모르면 모르는 만큼, 알면 아는 만큼,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