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히키코모리였다.
하루하루 헛되이 흘려보내면서, 매일매일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남들 하는 만큼 열심히 살았는데. 남들 하는 만큼으로는 부족했던 걸까? 갑자기 분위기 싸하게 만들까봐 되도록이면 말도 아끼면서 살았는데. 어느 지점에서 나도 모르게 방심했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나를 시험에 들게 했던 그 모든 부조리한 상황들을 센스 있게, 위트 있게, 흘려버리거나 인내하지 못했던 것이 잘못이었나? 그냥 유독 운이 나빴던 걸까? 마치 삼재처럼.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겪은 모든 사건들이 가슴에 칼을 꽂을 리가 있나. 잘 모르겠다.
결론 내리지 못한 모든 과거가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모든 날들이 흉흉했다. 내게 질문하며 답을 구하려 할 수록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매일 자해하는 기분. 그러니까 결국 내가 문제인 거잖아. 내가 못나서. 센스 있지 못해서. 위트 넘치지 않아서. 예민해서. 나약해서. 인내심도 없어서.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고 아무것도 해낼 수 없잖아. 그럼 나는 왜 살지? 살아도 죽은 거나 다름 없는데. 산송장이나 다름 없는데.
스스로를 미워하는 일을 멈출 수가 없어서 고립되기를 선택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헛살았으니까. 나는 쓸모 없으니까. 나는 바보니까. 나도 내가 싫으니까……. 엄마는 내게 아무것도 안 해도 좋으니 살아만 있어 달라며 나를 붙잡고 오열했다. 그런데 나는 살아있을 힘도, 살아갈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 나를 세상도 외면한 것 같아서.
이 밑도 끝도 없는 절망은 3년 정도 내 인생을 병해충처럼 들쑤셔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고, 일상생활을 보내는 데에 지장이 없을 정도다. 만약 지금의 남자친구가 그 시절의 나를 붙잡아주지 않았다면, 나는 9시 뉴스에 보도될 씁쓸한 사망소식 중 하나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사람답게 살고 있는 것이다. 함안으로 오고 나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함안으로 가겠다고 결정한 것도 남자친구 K의 영향이 컸다. 처음에는 K의 권유로 일일 스태프 알바를 조금씩 하다가 K의 스승님 눈에 띄어 홍보 인력으로 3개월 정도 일을 했다. 그러다가 능력을 인정받아 이제 행사가 있을 때마다 고정멤버가 되어 일을 함께하게 되었다. 일반적인 회사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이라 솔직히 낯선 점도 많고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나름의 장단점들이 맞물리기도 해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서서히 히키코모리에서 사회인으로 탈피했다. 모든 것이 순수 100퍼센트 내 의지였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어떤 시기에 삼재처럼 운이 드럽게 없었던 것처럼, 지금 이 시기가 대운처럼 운이 차고 넘치는 걸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내가 히키코모리에서 탈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난 1년의 시간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덕분이다. 현재의 내 삶이 오직 내 의지로만 굴러가는 게 아니듯이, 히키코모리가 되었던 내 삶도 오직 내 잘못만은 아니었다는 것. 그냥 그런 시기가 있었고, 지금은 이런 시기인 것이다.
나는 히키코모리였다. 이제는 문 밖에 서 있는.
함안에 오기 전, 절망 그 자체였던 백수살이 3년이 내게 얼마나 가혹했는지 호소하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아무도 관심 없을 거고, '무능력하고 한심한 MZ세대' 취급 당할까봐 스스로 창피하고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 니트컴퍼니 11기에 참여하면서 '무직 청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내게 인터뷰 요청을 해오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서 시작한 활동이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게 되었나보다. 인터뷰에 응하면서 생각보다 힘든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청년들의 삶이 각박해지고 고립되어 가는 과정을 사회적 이슈로 보는 지금, 나는 세상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견딘 시간과 내딛은 행보들도 충분한 대답이 될 수 있을까? 정답 없는 이 문제에 하나의 사례를 남겨보고자 한다. 하루하루가 도전이고 모험이었던 나의 함안 정착기. 엄청난 재능이나 엄청난 노력 같은 건 이 글에 없다. 그냥 살았다. 살아지는 대로. 생각보다 시시할 것이다. 그 심심함이 오히려 힘이 되는 글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