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번 1월 1일이 되면 꼭 나에게 편지를 쓴다. 일종의 연례행사 같은 것인데, 12월 31일이 되면 다음 해에 쓸 일기장을 사면서 동시에 예쁜 편지지를 산다. 그리고 1월 1일이 되면 그 다음년도 1월 1일을 맞이할 나에게 편지를 쓴다. 과거로부터 온 편지는 꽤나 큰 힘이 된다. 아직 1년을 살기 전 나의 각오를 살펴볼 수 있고, 그동안 내 각오만큼 잘 살았는지도 판단할 수 있으며, 다음 해를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힌트를 얻기도 한다.
이렇게 자신에게 편지를 쓰게 된 계기가 있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입학하게 될 학교에서 '새내기 캠프'라는 것을 진행한다고 안내문자가 날아왔다. 23박 24일 정도 대학 캠퍼스에 머물면서 다른 새내기들과 어울리고 간단한 프로그램 및 교육과정에 참여하면서 학점을 2점 정도 미리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혜택도 괜찮았지만 무엇보다 미리 대학 생활을 체험해볼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참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활동이 바로 '미래의 나에게 편지쓰기'였다. 원래라면 20살의 내가 21살의 나에게 쓰는 편지였는데, 편지를 썼다는 걸 깜빡 잊고 있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다시 읽어보았다. 마치 타임캡슐을 발견한 사람마냥 차분하게 편지를 읽어나갔는데, 깜짝놀랐다. 이제까지 과거의 내 모습들은 거의 부끄러운 흑역사 취급이나 해왔는데, 생각보다 진지하고 성숙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의 경험이 너무 인상깊었던 나머지 매 해마다 1월 1일이 되면 다음 해의 나에게 편지를 썼다. 지금의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살 것인지 각오를 밝히고 정말로 내가 잘 살았는지 물어보는 내용으로 주를 이루었다. 다이어리 맨 뒷편에 테이프로 밀봉해두었다가 12월 31일에 읽어보면 많은 위로와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나에게 쓰는 편지라니, 참 이상하면서도 재미있는 활동이지 않은가?
'어차피 내가 쓴 편지니까 내용도 다 기억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서, 두 달만 지나도 내용을 다 까먹는다. 12월이 될 때까지 편지의 존재를 서서히 잊고 있다가, 일기장의 맨 마지막 장을 쓰려고 하면 두툼하게 뭔가 걸리적 거리면서 '아 맞다 편지!'라며 편지의 존재를 떠올리게 된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사람처럼 기분이 좋아지고, 편지를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한 해가 마무리된 느낌을 받는다.
내가 나한테 쓰는 편지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게 생각보다 큰 동기부여가 된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항상 매 순간 지켜보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 해의 목표나 다짐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기 쉽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은 작심삼일로 끝날 위험도 크다. 하지만 편지라는 증거물(?)을 만들어두면, 연말에 편지를 열어볼 나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의식적으로 부지런하게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한 번은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 해를 날로 보낸 적이 있다. 그럴려고 그런 건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일이 의도대로 풀려주지 않고 계속 엎어지는 바람에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절망감과 부끄러움에 1년 전에 써둔 편지를 읽어보지 않은 채 4월까지 보냈다가, 5월이 되어서야 펼쳐본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 마치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예상한 사람마냥 적혀있었는데, 내용은 대충 이렇다.
잘 지내고 있니? 나는 27살의 날들을 앞두고 매우 긴장하고 있단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엄두가 안나서 막막하기도 하고. 네가 살아서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네가 무엇이 되었든, 혹은 되지 않았든 나는 너를 응원한다. (중략)
답답하고 막막하지만 너를 위해 노력할게 오늘도. 뭐라도 되어 있겠지. 힘이 없어서 이만 쓴다. 이 편지를 읽을 너는 더 힘차길 바란다.
무엇이 되었든, 되지 않았든, 나를 응원한다는 말이 고맙고 또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답답하고 막막한 건 과거의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미래의 내가 웃기를 바라면서 노력하겠다는 각오가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비록 한 해를 그저 그렇게 흘려보냈지만, 과거의 나로부터 온 편지를 읽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한 때 나는 타인의 인정과 위로를 갈구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일은 경시하고 남에게 받는 인정이 진정한 인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자기 자신에게는 누구나 관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과 판단이 적어도 나보다는 더 객관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름의 이유에도 결국 문제가 있다는 걸 후에 깨달았다. 우선 타인은 내 삶에 그렇게 관심이 없다. 자기 인생 살기도 바쁜데 내 인생이 잘 되고 안 되고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리고 사람마다 각자의 인생관이 있기 때문에, 성공과 실패에 대한 판단도 '타인의 주관'에 달린 것이지 결코 객관적이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세상이 내게 다 등을 돌리더라도, 나만큼은 나를 응원해주자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응원하는 단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있다.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다. 내가 나를 응원하면 되니까. 과거의 나는 항상 미래의 내가 활짝 웃기를 바란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길 바라고, 그 일로 인해 행복하길 바란다. 다 필요없고,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그러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내 할 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