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에 가장 궁금했던 질문은 바로 '회사 없이 살 수 있는가?'이다. 취업활동에 공들였던 것에 비해, 막상 취직 후 내 기분은 싱겁기만 했다. 일을 하면서도 즐겁지가 않았다. 일이 그렇지 뭐.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고 하니까, 나도 이렇게 살면 되겠지. 참고 다니다보면 괜찮아질거야. 그나마 버티게 해줬던 어설픈 결론들은 시간이 갈수록 흐릿해졌다.
퇴사 후 여러가지 일로 발이 묶이면서 나는 매일 같은 질문을 마주해야 했다. 회사 없이 살 수 있을까? 어떤 날에는 아니라고 답했다. 더이상 가족들에게 짐이 되긴 싫다고. 내 밥값은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세상이 인정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또 어떤 날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또 다시 같은 일로 고통 받고 상처 받게 될까봐 두렵다고. 눈치 보는 일이 숨막히고, 참고 견디는 일조차 할 수 없다고. 무미건조한 계산 끝에 타협하듯 사는 건 지쳤다고.
그래서 니트컴퍼니 활동 기간동안 나는 답을 찾았는가? 확실히, 정말로 모르겠다. 하지만 질문을 다르게 해볼 수는 있었다. 던져야 할 화두가 단순히 회사를 다니느냐 아니냐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회사라면 회사에 다니면 된다. 하지만 아직까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한 회사를 찾지 못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집단이 꼭 회사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내 질문은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일을 하고 싶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내 활약을 기대하고 있는 자리는 어디인가?
한 때, 정말 재미없어 보였던 게임에 심취한 적이 있다. 무겁고 흐물거리는 몸을 이끌고 목적지까지 가면 스테이지 클리어가 되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뭐 이런 시시한 게 다 있어'라며 정석대로 플레이를 했다. 그러다 한참 남은 스테이지를 이런 방식으로 깨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남들이 안 하는 짓을 하기 시작했다. 길 따라 가지 않고 쓸데없이 넓은 맵을 구석구석 돌아다닌다거나, 절대로 못 갈 것 같은 공간에 3시간 반을 투자해 억지로 억지로 들어가본다던가, 맵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클리어를 한다던가.
정말 놀랍게도, 시시해보였던 게임의 온갖 히든 루트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숨겨진 과제들을 달성했다는 알림창이 떴다. 그러자 게임이 완전 다르게 느껴졌다.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달성했다는 쾌감과, 나만의 히든 루트를 개척했다는 뿌듯함에 전율을 느꼈다. 플레이타임이 얼마 되지 않던 게임을 약 3개월간 미친듯이 연구했다. 그리고 게임에 존재하는 모든 과제들을 찾아 달성했다!
어쩌면 내가 재주나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아직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조건이 이래서, 나이가 어리지 않아서,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어서, 가족들이 반대하기 때문에, 방법을 잘 모르겠어서, 실패할 것 같아서, 오래 걸릴 것 같아서 등의 이유를 늘어놓으면서. 그만한 각오를 다지기에 계기나 원동력이 충분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어떤 일이든 완벽한 조건을 갖추는 건 어렵고, 시간은 고민하는 이 순간에도 흘러간다. 가족들은 내가 고생하하지 않길 바라니까 최소한 남들 하는 대로 안전하게 살라고 권할 것이다. 처음부터 방법을 아는 사람도 없고, 설령 실패한다고 한들 내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그 방법이 조금은 낯설다 해도, 해낼 수만 있다면 해볼 만한 게임 아닐까? 혹시 모르지, 숨겨진 달성 과제가 이루어졌다며 세상이 내 목에 메달을 달아줄지도.
우리는 모두, 언젠가 백수가 된다. 그것이 결코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 다르게 살아볼 때가 왔을 뿐이다. 그러니 하다보면은 뭐라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