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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작가 Feb 21. 2021

다시 채울 수 있는 용기

아무튼 마흔

음식에 인생의 어떤 순간이 담겨 있는 것처럼 어떤 노래에는 그 노래와 얽힌 주변적인 기억들이 저장된다. 어떤 심리적 상태에서 누구와 들었고 그 주변의 풍경은 어땠는지. 코미디는 예측 불가능한 반전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지만 노래는 예측 가능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감동이 인다고 조성관 작가는 말했다.     

신랑이 즐겨보는 프로그램 ‘20세기 히트 송’도 노래 속에 지나간 시간들을 느낄 수 있어서 티브이를 보면서 라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도 하다.    



수년 째 소리 ** 라는 음악 앱을 사용하고 있다. 음악 플레이 앱이 그렇듯 좋아하는 음악을 저장하는 기능이 있다. 엄마와 함께 아이디를 공유해서 서로 자신의 앨범에 이름을 붙이고 좋아하는 노래들, 처음 들었는데 다시 듣고 싶은 노래 등을 담았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앨범 모두 갑자기 사라졌다. 고객센터에도 전화했었는데 원인을 자신들은 확인할 수 없으며 복구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수년 동안 모아 왔던 음악들이 다 사라졌다니 뒤통수 맞은 것처럼 “띵”했다. 기억하고 싶었지만 저장만 하면 되겠지 하고 다운로드하지 않았던 노래들을 다시는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서운하고 속상했다.    



얼마 전 신문 기사에서 이런 단어를 알게 되었다.  조모란 ‘Joy Of Missing Out’의 약자로, ‘놓치는 것의 즐거움’이라는 뜻이다. 사실 조모는 이미 많은 이들이 경험한 즐거움이기도 하다. 일정에 없던 우연한 만남, 지도에 없는 길을 여행할 때 느끼는 뜻밖의 즐거움을 떠올리면 되지 않을까라는 기자의 말이 신선했다.



    

단순히 몇 년 동안 모았던 음악은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정말 좋아하는 노래는 당연히 기억을 한다. 나의 노래 서랍이 비워졌으니 다시 채울 기회라고 생각하니 이것 또한 조모처럼 생각하고 즐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언젠가 갑자기 나의 앨범들이 비워지더라도 다시 채울 수 있는 용기를 가져보자는 생각으로 채우기로 했다. 이것이 나의 조모가 된 것이다.    



 사소한 음악처럼 일상 속에서의 다른 물건들, 혹은 관계들 또한 정말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잘 구분하고 비우고 채울 수 있는 용기를 계속 지녔으면 좋겠다. 나의 마흔에는 단단하면서도 말랑말랑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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