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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Jun 18. 2024

외로우니까 작가지

브리저튼, 시즌3을 보고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 시즌3> 완주를 끝냈다. 점점 더 자극적으로 발전하는 연애물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다른 방에 있는 남편에게 들릴까 봐 자꾸만 볼륨을 줄이게 되는 낯뜨거움이란), 화려한 고전 의상과 소품, 두근거림 가득한 무도회를 보며 사랑의 서사를 즐기는 행복 또한 부인할 수 없는 드라마. 이번 시즌에서는 특히 세상의 많은 '작가'의 입장을 대변해준 듯한 마지막 화에서 예상 밖의 감동을 수확했다.


 전 시즌에서 한 번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주인공 - 페넬로페 페더링턴은 보수적인 19세기 상류층의 사교계에서 자신 있게 활동하기가 어려운 인물이다. 당시의 미적 기준에서 벗어난 뚱뚱한 몸, 수를 놓기보다는 책을 탐하는 지적이고 진취적인 성향, 가장의 부재로 형편이 풍족하지 않지만 허영스럽고 경박한 가문의 분위기까지.


 뭇 남성들에게 춤 신청을 한 번이라도 받는 대신 늘 구석에 숨거나 벽에 붙어있던 그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가장 발 빠르게 사교계의 소문을 전하는 소식지를 발행하게 된다. 필명은 레이디 휘슬다운. 때로는 위험하지만 사실에 근거한 뉴스를 공정하게 폭로한다는 신념으로 자신과 가족, 친구, 친구의 가족까지 공공연히 도마에 올린다. 이로 인해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절친은 그로부터 등을 돌리기도.또 다른 오랜 친구이자 사랑인 콜린 브리저튼과의 꿈에 그리던 결혼 다음날, 돈을 주지 않으면 비밀을 폭로하겠다는 날벼락같은 협박을 당하기도 한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은 물론 글로써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것 또한 당시에 선호된 순종적인 아내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이는 귀족 가문의 명성에 누를 끼칠 수 있다. 휘슬다운을 찾으라는 왕비의 현상금까지 더해져 점점 좁혀져 오는 탄로의 위기. 나고 자란 페더링턴과 앞으로 함께할 브리저튼 가문 모두 위기에 처하자, 결국 그는 무도회 중앙으로 나가 스스로 휘슬다운임을 밝히기로 선택한다.


 오랜 시간 숨어서 외로웠다고, 공개된 자리에서 항상 소외됐지만 글을 쓰면서 문득 존재하고 권력이 생기는 듯했다고. 가십은 정보이며 그것을 다루는 자신이 때로는 타인을 아프게 하는 권력을 휘둘렀음을 인정하면서. 보다 성숙한 태도로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아량을 베풀어달라고 여왕에게 간청한다.



 

 

글 쓰는 이는 외롭다. 글을 쓰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 아니라 외롭기 때문에 쓴다. 지금 내 곁에는 없어도 세상 어딘가에는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최소한 어느 한 부분은 그럴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쓴다.


 예를 들어 나는 어제 4시간 명상을 했지만 그에 대한 어려움과 기쁨을 나눌 이가 주변에 단 한 명도 없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10편 이상 글을 쓴다는 목표를 지키는 중이지만, 그런 다짐을 서로 응원해 줄 이가 바로 주위에는 없다.

 지난 일요일은 우리 매장의 최고 매출을 찍은 날이었지만, 남편조차 기뻐하지 않아 혼자서 조용히 뿌듯해해야 했다.

 같은 날 반려묘 뽀가 갑자기 침대에 올라와 이불에 실수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캠으로 겨우 증거 확보), 지저분하다며 펄쩍 뛸 시어머니 외에 그런 이야기를 웃으며 할만한 곳이 없다.  


 누군가와 관심사를 깊이 공유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으면 점점 말하지 않게 되고, 사람은 점점 더 외로워진다. 언젠가는 시댁뿐만이 아닌 친가 가족들과 다 함께 살기를 꿈꾸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따뜻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작가모임. 비건모임. 봉사모임. 명상모임. 언어교환모임. 낭독모임 등을 생각해 본다. 물론 모임을 만들고 운영하는 일보다 혼자서 글을 쓰는 일이 훨씬 쉽고 빠르겠지만.




 자신이 휘슬다운임을 천명한 페넬로페는 본명으로 마지막 소식지를 발행한다. 외로웠던 오랜 과거를 알고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가 평생 곁에 있겠다고 약속했으니, 앞으로는 어둠 속이 아닌 빛 속으로 걸어 나와 다른 작품을 쓸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지만 작가는 그 외로움을 원동력으로 세상의 숨은 말들을 대신 꺼내는 사람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나약하다는 공통점을 익히 알면서도, 글을 통해 낱낱이 알아갈수록 우리는 외로움의 실체를 이해하고 완전히 혼자는 아니게 된다. 그러기에 가장 먼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작가로서의 나, 혹은 그 뒤에 숨어있는 더 높은 차원의 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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