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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Jun 25. 2024

집사님께 보내는 편지


안녕하세요, 집사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오랜만에 너스 소식 전해드려요.


너스가 집사님께 구조되어 이곳에 온 지 벌써 1년 3개월도 더 지났네요. 놀숲믹스답게 아직도 성장 중인 너스는 칠흑같이 검은 털색이 연갈색으로 달라진 부분이 생겼어요! 좌우 대칭으로요~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건 여전한데 좀처럼 집사들과 거리가 좁혀지지는 않아요. 더 빨리 연락드리지 못하고 망설인 까닭이랄까요? 그래도 1년이 지나면 좀 친해졌다고 말씀드릴 수 있길 바랐는데. 제 욕심일뿐, 고양이에게 필요한 시간은 저마다 다른가 봐요.



아직도 가까이 다가가면 하악-하거나 캣타워에서 갑자기 풀쩍 뛰어내려 도망가요. 기회가 있을 때 발이나 꼬리를 터치한 적이 있는데 그런 행동들이 많이 귀찮았던 걸까(남편피셜) 생각해요. 싫다는데 그냥 두자고 다짐하다가도 숨숨집 밖으로 삐져나온 꼬리나 손발을 보면 그게 또 참을 수 없이 예뻐서 슬쩍 만지고 싶죠. 조금씩 더 참는 중이에요. ‘너스는 소중한 묘격체다…!’



 좋아하는 북어트릿을 달라고 문지방에 걸터앉아 집사들을 빤히 바라보는 때가 가장 초롱초롱한 순간인 것 같아요.



 뽀와는 여전히 사이좋게 매일밤 우다다하며 잘 놀고 있어요. 이제 체격 차이가 커서 마음만 먹으면 뽀를 가볍게 제압하는 너스지만, 장난치다가도 뽀를 배려해 주는 모습이 감동적이고 예뻐요. 다만 집사들과는 꿋꿋이 가까워지지 않으니. 뽀와 너스에게 가끔 1:1로 조용히 호소해보기도 하는 나날이랍니다.


 

 털은 아직도 전혀 빗겨주지 못해서, 너스 스스로 뭉친 털을 잘라내는 습관이 생겼어요. 가끔씩 밧줄처럼 튼튼하고 딱딱하게 뭉친 털이 거실에 놓여있는데, 스스로 그걸 잘라내는 게 신기하고 한편으로 다행스러워요. 집에 오기 전에 넥카라를 했던 목 부근의 털을 자기가 뜯었다고 하신 이야기도 생각이 났네요. 하지만 등 쪽에 뭉친 털은 자기가 뜯을 수 없는 위치다 보니 계속 그대로여서 볼 때마다 애잔해져요.


 

 언제나 사랑받는 쪽이 아닌 사랑하는 쪽이 수업료를 내죠. 매일 더 사랑하는 만큼 더 인내하고, 행복하게 해 줄 방법을 고민해요.

 그런데 주는 사람이 더 많이 받잖아요. 고양이를 키우며 바라보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다채로운 감정, 예컨대 섭섭하거나 미안하다가도 곁에 와있으면 갑자기 환해지는 마음, 힘든 날에도 잔잔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귀여움은 녀석들이 주는 끝없는 선물이에요. 비록 집사에겐 까칠하지만, 잘 놀고 건강하게 자라주니 더 자주 고맙다고 말하고 싶고요.



참. 전에 선물로 보내주신 스크래처는 도착한 때부터 아이들의 최애 쉼터가 되었어요. 얼마 전에 쿨매트, 쿨방석을 사줬는데 두 녀석 다 쓰진 않고 스크래처처럼 박박 긁기만 해요. 반면에 스크래처는 편한 데다 시원한지 요즘도 둘 다 거기서 잔답니다ㅎㅎ


 올해는 작년보다 무더운 여름이 될 거라는데

집사님 곁에 항상 시원하고 고마운 바람이 불기를,

너스와 잠시 묘연을 맺었던 반해찌에게도 안부와 사랑을 전해요.


 까도 까도 끝없는 양파,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색으로 빛나는 보석같은  너스를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슈퍼 겁쟁이에게 앞으로 최대한 만만한 집사가 되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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