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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Jul 16. 2024

소강상태는 끝나고


 매장을 계약한지 3년째였던 어제.

 목표매출을 달성하지 못하면 나가서 다른 일을 할거라고, 함께 일하는 사장이자 반려인께서 못박은 날이었다. 들쭉날쭉한 매출에 비해 그가 제시한 수치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고, 애썼지만 이르지는 못했다. 쉬는 날이기도 해서 앞으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오전 명상을 마치고 쉬다 오후 2시가 넘도록 자는 그를 깨웠다. 토스터를 들고 시부모님이 계신 1층으로 내려간다. 언제나처럼 냉동실에 저장해둔 베이글들 중 시나몬과 블루베리를 골라 바싹하게 구워먹고 차에 올랐다. 어머님 드릴 생활비를 찾으러 은행에 들렀다가 근처 노브랜드로. 일주일에 하루인 휴일은 시부모님과 함께 노브랜드 -> 하나로마트 -> 홈플러스로 돌며 장을 보는 게 루틴이다.


 체리와 자두 가격이 좋아 몇 팩 사고 좋아하는 콩나물을 담아 하나로마트로. 평택은 농협 지점이 많고 하나로마트도 많은데 채소가 싱싱하고 다양해 파프리카, 애호박, 당근 등을 주로 구입한다. 로컬코너도 따로 있어 못생긴 오이나 꼬꼬마 딸기같은 것들이 예쁜 가격에 나올 때도 많고. 색과 무늬가 옅지만 옆으로 퍼진 몸이 튼실해보이는 단호박을 샀다.


 홈플에서는 수입채소와 버섯, 순두부와 가공식품을 사는 편이다. 삼겹살과 쌈이 먹고 싶다는 남편의 말에 큰손 시어머니는 쌈채소를 어마하게 담으셨다. 나는 구워먹을 버섯을 담고 나서 쌈들을 친환경으로 하나씩 바꿔놓았다. 소용량으로 포장된 물도 샀다. 가게에 택배 및 배달 기사님이 오시면 늘 번개처럼 사라지곤 하시는데, 그분들께 늘 얼음물을 드리고 싶다. 컵으로 드리면 다 드실때까지 기다렸다 받아서 씻기 서로 부담스럽지 않을까? 페트병이 싫지만 무더위에 기사님들 목을 축일 수 있다면, 시원하게 드릴 생각을 하니 벌써 기분이 좋다.


 집에 와서 명절용 잔치팬의 한쪽에 삼겹살, 다른 한쪽에는 찢어놓은 버섯과 김치를 굽는다. 논비건과 비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구성. 2층에 올라가 무알콜 맥주와 남편의 사이다를 가져온다. 홉 향이 살짝 나는 무알콜 맥주는 알콜에 대한 부담없이도 즐거운 분위기를 더한다. 케일, 버터헤드, 상추, 깻잎, 미나리, 셀러리 등 각종 채소에 싸먹는 버섯과 김치가 고기보다 더 맛있다는 걸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만 더 있다면 금상첨화일텐데. 쩝.


 정리 후 2층으로 돌아와 샤워했다. 비건을 지향하지만 지속적인 노푸에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구입한 멧돼지털빗으로 머리를 꼼꼼히 빗고 물로만 감는다. 사용한 빗은 따로 세척해두기. 씻고 나오는데 오빠가 어머님이 머리를 잘라달라고 하셨다기에 부랴부랴 다시 1층으로. 끝이 둥근 문구용 가위로 뒷머리를 조금만 잘라달라는 어머님. 휴일에는 렌즈를 빼고 지내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최대한 다듬어드렸다. 막 씻고 온터라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오늘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침실로 돌아와 남편에게 (당신이) 그동안 모아온 로또들을 맞춰보자고 말했다.  모든 '만약'을 제거하기 위해. 혹시 로또가 되면 우리가 따로 떨어져서 일할 필요는 없는 거니까.

 애석하게도 이변은 없었다.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이야기를 시작할 차례다.


 "그럼... 이제부터 구직하는거야? 언제까지 있을 수 있어? 내 욕심은 8월 15일까지이긴 한데."


 오빠는 당장 내일부터라도 일할 수 있다고 한다. 쿠팡 물류센터로 가겠다며. 하지만 나는 오빠처럼 당장 혼자서 매장을 운영할 자신이 없다. 무더위에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겠다는 말이 기껍지도 않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정리를 해볼테니 7월말까지는 있어줘."


 작년에 혼자서 물류센터 일용직 체험을 해보았더랬다. '웰컴데이'라는 귀여운 제목에 적당히 편할 줄 알았는데 왠걸, 힘들어서 하루만에 몸져누웠다. 일하는 중에 팀장이 옆에 와서 "도와줄까요?"라고 하면 그건 당장 피치를 올리라는 뜻이었다. 나보다 10살쯤 어린 듯한 그가 자기만의 빠른 템포로 나를 '도와주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힘들어도 1초도 쉬지 못하고 기계처럼 일하는 지옥을 맛봐야했다. 무거워봐야 개당 5kg가 넘지않는 우유, 과일, 세제류도 계속 옮기고 분류하니 금세 팔이 떨어질 것 같다. 분류할 새로운 품목들이 들어올 때마다 쉴새없이 사이렌이 울렸다.


 평소에 가만히 앉아있어도 늘 피곤하다는 사람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의구심에 좀 더 알아보니 일용직이 아닌 계약직은 그나마 복리후생이 괜찮은 편이고 센터에 따라 지게차교육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곳도 있다고 했다. 우선 지게차에 대한 정보를 그에게 알려주고 혹시 다른 일을 할 수는 없는지 알아보기를 권했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혼자서 40평 매장을 어떻게 운영할지 고민할 시간.  

 노트북 화면에 수많은 생각을 썼다 지웠다 했다. 여러가지 변화를 상상해보는 일은 재미있기도 불안하기도 하다. 전투력이 얼마나 상승했는지 결국 아드레날린 폭발.

새벽 내내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트립토판 세 알을 입에 털어넣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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