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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기록] 11월

by Yujin

1. 황야의 이리

2. 돌봄과 작업

3. 이세돌, 인생의 수 읽기

4. 아이엠댓(별도로 정리)

5. 당분간 인간

6. 네버 라이



1. 황야의 이리 - 헤르만 헤세 지음 / 김누리 옮김


-그는 온전히 그 자리에 있는 사람 같지 않았고, 자기가 하는 일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본래 맘속으로는 전혀 딴생각하면서, 방을 빌리고 독일 말을 지껄인다는 것이 아주 이상하고 새롭기라도 한 듯 그의 태도에는 진지함이 없었다.


-그의 태도는 공손하고 상냥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 같기는 했지만 거만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정반대였다. 그의 태도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 어떤 간절함 같은 것이 배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것 때문에 나는 곧바로 그에게 마음이 끌렸던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생각했고, 지적인 문제에서는 실로 정신적인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싸늘할 정도의 냉정함과 확고한 생각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명예욕이라곤 털끝만치도 없어서, 결코 사람들 사이에서 두드러져 보이거나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혹은 논쟁하여 이기기를 바라지 않는 인간이었다.


-나는 계단에서 정숙, 질서, 청결, 예절, 규율의 냄새를 맡는 게 좋다. 거기엔 시민 세계를 싫어하는 나까지도 감동하게 하는 무언가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내 방 문턱을 넘어서는 것도 나는 좋아한다. 이 문턱에서 모든 것이 끝난다.


- 인생의 목적이 더 이상 자기 자신의 완성과 실현에 있지 않고 자신의 해체, 즉 어머니에게로, 신에게로, 전체에게로 돌아가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러한 천성을 가진 사람들 대부분은 실제로 자살을 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자살이 죄악임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그들은 자살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삶에서가 아니라 죽음에서 구원을 보며, 자기 자신을 비치고, 내던지고, 지워 버리고, 시원(始源)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 성자에게는 죄인을 긍정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역으로 죄인이 성자를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성자나 죄인 모두에게, 그리고 절대적인 것을 추구하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 시민성이라는 저 미지근한 중용을 긍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유머만이 인간 존재의 모든 영역을 망라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프리즘을 통과하는 빛들과 통합시킬 수 있다. 세상을 부정하면서 세상에 사는 것, 법을 존중하면서도 법을 넘어서는 것, 소유하지 않는 듯이 소유하는 것, 포기하지 않는 듯이 포기하는 것, 자주 인용되고 즐겨 요구되는 이 모든 고귀한 삶의 지혜들을 실현해 주는 건 오직 유머뿐이다.


- 실제로 어떤 자아도, 그것이 아무리 소박한 것이라 해도, 하나의 통일체가 아니라 지극히 다양한 세계, 별들이 빛나는 작은 하늘, 형식과 단계와 상태들의 혼돈, 유산과 가능성의 카오스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혼돈을 통일체로 보고, 자아가 마치 확고한 형태와 분명한 윤곽을 지닌 소박한 현상인 양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만을 누구나 (심지어 최고의 인간까지도) 마치 당연한 것처럼 행한다. 이 망상은 호흡하거나 음식을 먹는 것처럼 삶에 꼭 필요한 요구인 것 같다.


- 인도 서사시의 주인공은 개인이 아니라 개인의 집합체였으며 의인화된 집단이었다. 우리 현대 서구 사회에도 작가조차 완전히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인물극과 성격극의 베일 뒤에서 정신의 다원성을 표현하려는 문학이 있다.


- 인간은 수백 개의 껍질로 된 양파이고, 수많은 실로 짜인 천이다.


- 정한 인간에 이르는 길, 불멸에 이르는 길을 하리는 분명 예감할 수 있고, 또한 때때로 주저하면서도 그 길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그 대가로 견디기 힘든 괴로움과 고통스러운 외로움을 겪지만, 하리는 하나뿐인 불멸로의 좁은 길을 가라는 저 지고의 요구와 정신이 추구하는 저 진정한 인간됨을 긍정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마음 깊은 곳에서 두려워하고 있다.


- 자아를 향한 절망적인 집착과 죽지 않으려는 절망적인 의지가 영원한 죽음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이며, 오히려 죽을 수 있는 능력, 즉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영원에게 자신을 바치는 것이 불멸로 통한다는 사실 앞에 그는 애써 눈을 감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 창조되기 이전의 순수 상태로, 신에게로 이르는 길은 뒤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리나 어린아이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죄 속으로 깊이 빠져드는 것, 즉 점점 더 인간이 되어 가는 것이다.


- 모든 것으로 되돌아간다는 것, 고통스러운 개성화를 지양한다는 것, 즉 신이 된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다시 포용할 수 있을 만큼 정신을 넓히는 것을 의미한다.


- 진지함이란 시간을 과대평가하는 데서 생겨나는 거라네. 나도 한때는 시간의 가치를 과대평가한 적이 있었네. 그래서 백 살까지 살고 싶어 했지. 그러나 영원 속에선, 자네도 알다시피, 시간이란 없다네. 영원은 한순간에 불과한 것이라네. 즐거운 일을 하나쯤 할 수 있는 딱 그만한 시간이지


- 당신에게 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현명할 거야. 하지만 난 현명하고 싶지 않아, 하리. 이번 일만은 그래. 나는 전혀 다른 것을 원해. 가만히 들어 봐! 당신은 그것을 듣고, 다시 잊어버리고, 그것 때문에 웃고 울 거야. 주의해서 들어 봐. 나는 당신과 생사를 건 도박을 할 거야. 그리고 나는 우리가 도박을 시작하기도 전에 당신에게 내 카드를 모두 보여 줄 거야.


- 당신은 절망에 싸여 있고, 당신에겐 당신을 물속에 처넣어 다시 활기를 불어넣어 줄 어떤 충격이 필요해. 당신은 내가 필요해. 춤추는 걸 배우기 위해서, 웃는 걸 배우기 위해서, 사는 걸 배우기 위해서 말이야. 그러나 나에게 당신이 필요한 건 지금이 아니라 훗날이야. 그것도 어떤 중요하고 멋진 일을 위해서지. 당신이 나를 사랑하게 되면 나는 당신에게 내 마지막 명령을 내릴 거야. 당신은 그것에 따를 것이고, 그건 당신을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좋은 일일 거야.”


- “당신의 투쟁이 아무런 성과가 없으리란 걸 당신이 알고 있다 해도, 당신의 삶은 천박하고 무미건조해지지 않아. 하리, 당신이 어떤 훌륭한 이상을 위해 싸우고, 그것을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훨씬 더 천박해. 이상이란 것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건가? 우리 인간은 죽음을 없애기 위해 사는 건가? 아니,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런 다음 다시 죽음을 사랑하기 위해 사는 거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보잘것없는 인생도 어느 순간 그렇게 아름답게 불타오르는 거고.


- 파블로는 나의 판단 따위는 묻지도 않았다. 그것은 그에게는 내 음악 이론 만큼이나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공손하고 상냥하게 웃으면서 나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정말로 반응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신은 틀림없이 모든 것을 제대로 처리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 연주자들은 우리 몫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임무와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바로 지금 사람들이 갈망하는 것을 연주해야 하고, 그것도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연주해야 하는 겁니다.”


-헤르미네의 말은 모두가 그녀 자신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내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혜안을 가진 헤르미네가 내 생각을 읽고, 거기에 숨을 불어넣어 다시 나에게 제시함으로써, 내 생각은 모양이 잡혀 새롭게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번호표를 잃어버렸나?” 내 옆에서 붉고 노란 작은 악마가 째지는 소리로 물었다. “그렇다면, 친구, 내 것을 갖게.” 벌써 그는 자기 것을 내밀고 있었다. 내가 그것을 기계적으로 받아 손가락 사이에 끼고 돌리고 있는 동안 그 재빠른 녀석은 벌써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들어 머리를 고쳤다. 그녀의 겨드랑이가 불빛을 받아 빛났다. 너무나 부드러운 옅은 그림자가 거기서부터 그녀의 가려진 가슴으로 이어졌다. 흔들리는 작은 그림자의 선은 그녀의 모든 매력, 그녀의 아름다운 육체의 모든 유희와 가능성을 종합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미소와 같았다.


-당신의 개성은 당신이 들어앉아 있는 감옥입니다. 당신이 지금 모습 그대로 극장에 들어간다면, 당신은 모든 것을 하리의 눈으로, 황야의 이리의 고리타분한 안경을 통해 볼 겁니다. 당신을 여기 초대한 건 이 안경을, 그리고 당신의 훌륭한 개성을 여기 의상실에 벗어 놓게 하기 위한 겁니다. 물론 원하시면 언제라도 다시 찾아갈 수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유머의 학교에 와 있는 겁니다. 웃음을 배우셔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고급 유머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을 때 시작됩니다.”


-내 인생 전체가, 내 보잘것없는 행복과 사랑이 바로 이 굳어 버린 입술과 같았다. 죽은 자의 얼굴 위에 그려진 약간의 빨간색 립스틱 같은 것이었다.


-자네는 죽기를 바라는 겁쟁이야. 살기를 바라지 않으니. 그러나 자네는 바로 그 삶을 살아야 한다네. 자네가 아무리 엄중한 벌을 받더라도, 그건 자네가 당연히 받아야 할 벌이라네.


- 생이라는 유희의 수십만 개의 체스 말이 모두 내 주머니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충격 속에서 그 의미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다시 한번 그 유희를 시작해 보고, 다시 한번 그 고통을 맛보고, 다시 한번 그 무의미 앞에서 전율하고, 다시 한번 더 내 마음속의 지옥을 이리저리 헤매고 싶었다. 언젠가는 체스 말 놀이를 더 잘할 수 있겠지. 언젠가는 웃음을 배우게 되겠지. 파블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차르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2. 돌봄과 작업 - 정서경, 서유미, 홍한별, 임소연, 장하원, 전유진, 박재연, 엄지혜, 이설아, 김희진, 서수연 저


- 인간의 성장은 날개를 펴는 것처럼 자유로워지거나 꽃이 피듯 눈부신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떤 일을 통과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다른 곳에 도달하게 되는 일인 것 같다. 자고 일어나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키가 자라는 것처럼 어떤 길을 지나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가는 과정 속에서 성장이 일어나는 것이다.


- 한 인간을 잉태해서 키워내는 수많은 여자들의 말씀이 포함되지 않은 철학은 아무리 고상해도, 아니 고상할수록 더더욱 ‘다 무효다!’라고 외치고 싶다


- 열 살 된 아이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그 속에 좀 더 어린 아이, 그보다 더 어린 아이가 들어 있을 것 같다.


- 하지만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창조적인 작업은 정지되고 고독한 시간 속에서가 아니라 흘러가는 분주한 일상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진짜 나다운 것은 너를 보살피고 너에게 침범당하며 너와 뒤섞이는 와중에 만들어진다. 진짜 창조물은 머리만이 아니라 손발과 팔다리로, 마음과 오장육부를 거쳐 만들어진다.


- 인간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취약성을 수용하고 서로 의존하고 보살피며 살아가자는 태도는 능력주의와는 정 반대편에 놓인 것이고, 다양한 존재들이 외부의 잣대에 상처받지 않고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모양으로 꽃피우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3. 이세돌, 인생의 수 읽기 - 이세돌


- 바둑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자신이 유리할 때다. 생각이 많아져 실수를 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불리할 때는 두어야 할 수가 명확해지고,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고 상황을 돌파할 힘이 생긴다.



4. 아이엠댓(별도로 정리) - 스리 니사르가닷따 마하라지 저 / 대성, 모리스 프리드먼 역



5. 당분간 인간 - 서유미


6. 네버 라이 - 프리다 맥파든 지음 / 이민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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