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의 과학 에세이
그런데 이것은 현대 과학에서 또 다른 선물을 주기도 했다. 바로 빅뱅을 이해하는 중요한 논리가 된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빅뱅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사실 우주가 탄생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땅, 호흡하는 공기, 마시는 물과 같은 물질이 없었고, 전기나 햇빛과 같은 에너지도 없었다. 심지어 물질과 물질 사이의 비어 있는 곳도 없었다. 공간이란 것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어제, 오늘, 내일이라고 말하는 시간조차 없었다.
그런데 137억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큰 변화가 일어났다. 원자보다도 작은 무언가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우주의 씨앗이었다.
이 씨앗은 가장 뜨거운 곳이라고 생각했던 태양의 핵보다도 10의 25 제곱 배나 뜨거웠다. 얼마나 뜨거운지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끓는 물을 생각해 보자. 물은 10에 동그라미 하나가 붙은 100도에서 끓는다. 우리는 그 온도에서도 쉽게 화상을 입게 된다. 그런데 우주의 씨앗은 10에 동그라미 25개를 붙인 만큼 뜨거웠다.
그런데 그 뜨거운 씨앗이 갑자기 폭발했다. 이 폭발이 바로 ‘빅뱅’이다. 소리를 전달할 물질이 없어 큰 폭발을 뜻하는 빅뱅이란 말과는 다르게 조용히 폭발을 일으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 폭발은 우주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우리가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별과 태양, 그리고 태양계의 행성들, 온 우주에 흩어져 있는 가스 구름과 같은 물질이 그 씨앗으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폭발 이후 시간의 흐름이 시작되고, 처음 1초가 지나기도 전에 우주를 만들기 위한 기본 설계가 완성되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어떻게 1초 동안에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다.
지금도 호기심 많은 과학자들이 맨 처음 1초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왜 이런 연구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이것이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고 우주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알기 위해서다. 처음 세상이 만들어질 때로 돌아가 어떻게 해서 그 작은 씨앗이 폭발해 지금의 우주로 되었는지를 알면 우주의 미래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시작을 알려는 생각들은 굉장히 획기적이었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우주가 아주 작은 점에서 출발했다는 최초의 생각은 채 100년도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빅뱅에 의해 우주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80년 전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과학자는 우주는 움직이지도 않고,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히 존재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1929년 이러한 생각을 뒤집는 중요한 발견이 이루어졌다. 그 역사적인 사건은 윌슨 산 천문대에서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에드윈 허블’이란 사람이 멀리 은하에서 날아오는 빛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사실을 발견한다. 가까운 은하보다 먼 은하에서 오는 빛일수록 더 붉은색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뭐 그리 대단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겐 아주 중요한 발견이었다.
앞에서 파장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물에 돌을 던지면 돌이 빠진 그 주변은 물결이 높고 사이가 좁지만, 점점 멀어질수록 물의 높이 차이도 완만하고 간격도 넓어진다.
음파도 이와 비슷한데 자동차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자동차가 다가오면 소리가 크고 선명하지만, 지나간 다음 멀어질수록 소리는 작아지고 점점 잘 들리지 않다가 사라진다. 자동차가 멀어질수록 더 먼 거리까지 소리를 전달해야 하므로 파장이 길어지고 소리의 높낮이도 약해진다.
별의 빛도 마찬가지로 지구를 향해 다가오면 파란빛의 짧은 파장이 오지만, 반대로 멀어지게 되면 그 빛은 더 먼 거리를 가야 하기 때문에 긴 파장의 붉은빛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빛의 파장도 멀리 이동할수록 완만한 파장으로 더 늘어나다가 점차 전파와 같은 것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하늘을 관찰하면 알 수 있다. 낮에 보는 하늘의 색과 해 질 녘에 보는 하늘의 색이 다르다. 왜 그렇게 보일까?
지구에 비스듬하게 오는 빛을 생각해 보자. 거리가 멀고 가로막는 공기층이 많아 느려지는 빛일수록 파장이 길어지고 붉은빛으로 변한다.
이렇게 지구로 다가오는 빛의 색과 멀어지는 빛이 색이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을 ‘적색편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허블이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프리즘을 통해 보는 가시광선의 스펙트럼을 보면 한쪽 끝은 적색이고 반대쪽 끝은 청색이다. 프리즘으로 보는 붉은색은 파장이 길고 푸른색은 파장이 짧다. 우주의 멀리 있는 별에서 온 빛도 어느 정도 거리에서 오느냐에 따라 다른 색이 된다. 멀리에서 온 빛이나 점점 멀어지는 빛은 붉은색으로 나타난다.
이렇듯 빛의 색이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 주변의 은하들이 모두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속도도 다르다는 것을 알아냈다.
예를 들어 풍선에 점을 찍고 불어보자. 그럼 가까이 있는 은하는 조금 멀어지지만 멀리 있는 은하는 상대적으로 더 빨리 멀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멀어지는 은하를 발견하면서부터 ‘우주는 움직이지 않고 항상 영원할 것’이라는 이전의 생각은 수정되었다.
지금 현재도 모든 은하는 시속 160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 이렇게 은하가 멀어지고 있다면 과거 언젠가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가깝고 작았을 것이고, 그보다 더 오래전에는 우주는 우리 태양계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는 구슬보다 더 작고, 원자보다 더 작은 점이었을 것이다.
우주의 시작점이 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렇게 우주는 한 점에서 시작해 사방으로 팽창해 나갔을 것이다. 누구도 우주의 시작을 본 적은 없지만, 허블의 이 발견은 많은 과학자가 연구하고 증거를 찾으면서 하나의 이론으로 만들어졌다.
그 이론이 바로 ‘빅뱅’이다.
빅뱅이론에 따르면 대폭발이 일어나고 1/1024초도 안 되는 순간의 작은 우주는 매우 불안정했고, 엄청난 속도로 팽창했다.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팽창한 것이다.
허블은 자신이 발견한 우주의 팽창 속도를 기준으로 해서 우주의 나이까지 계산했다. 자신이 관찰한 자료를 가지고 우주의 나이가 20억 년이라고 했다. 현재 밝혀진 지구의 나이보다는 적었다. 하지만 그가 계산한 방식은 정확했다. 단지 그가 관측한 자료에 문제가 있었을 뿐이었다.
현대의 과학자들이 조사한 자료를 허블의 방식으로 계산하면, 우주의 나이는 대략 137억 년 정도다. 허블의 업적은 과학자들에게 너무나 소중한 것이어서 나사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천체 망원경을 우주로 쏘아 올리기도 했다.
사실 원시시대부터 사람들은 태양과 달과 별을 관찰하며 그것들이 언제,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를 알고자 했다. 그리고 수천 년 동안 그 해답을 찾으려고 애썼다.
과학자들은 종교의 창조론과 달리 그 원리를 알고자 했기 때문에 종교와 과학은 아주 심각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그것은 종교나 과학 둘 다 진리가 무엇인지를 찾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방법으로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종교와 과학이 서로 정반대의 관점에 있었음에도 우주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인 이론을 맨 처음 제시한 사람은 의외로 ‘조르주 르메트르’라는 가톨릭 신부였다.
르메트르의 이론이 나오기 전까지 우주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과학과 종교의 중요한 문제였다. 지금도 종교에서는 신이 세상을 창조함으로써 시작되었다고 하고, 과학에서는 ‘빅뱅’이라는 사건을 통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 치의 양보 없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그 당시의 분위기는 더 심했지만 조르주 르메트르는 ‘우주의 탄생은 작은 점의 폭발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했다. 1920년대 르메트르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연구하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그는 우주는 언제나 그 상태 그대로 있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우주는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팽창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옛날에는 우주가 더 작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그것을 밝혀 보기로 한 것이다.
그는 우주가 팽창한다면 어제의 우주가 오늘보다 더 작았을 것이고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작았을 때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우주가 원시원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상상할 수조차 없는 밀도를 가진 뜨거운 우주의 씨앗이 폭발하면서 우주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모양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수학적인 계산으로는 맞지만, 그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너무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이론’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1929년, 그 이론은 허블에 의해 현실이 되었다. 우주는 정지해 있으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허물어뜨리는 현상을 찾아냈다. 이렇게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증거들이 나타나면서 빅뱅이론은 든든한 지지 기반을 얻었다.
허블의 발견 전까지 우주는 우리은하가 전부였다. 밤하늘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은하수가 바로 그것이다. 허블에 의해 천억 개의 별들로 이루어진 10만 광년의 작은 우주의 개념이 수십억 광년 이상의 넓은 우주로 확장되었다. 하룻밤 사이에 전혀 새로운 우주가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은하들이 서로 멀어지고 있다고 결론지은 것이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고 이로 인해 더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허블의 발견으로 르메트르가 주장한 체계적인 이론은 당시의 과학자들에게 우주 기원의 궁금증에 대한 답으로 인정받는 듯했다.
하지만 허블이 계산한 우주의 나이가 잘못된 관측 자료로 인해 20억 년밖에 나오지 않자, 다시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우주가 당시 밝혀진 지구의 나이보다 더 어렸기 때문이다.
사실 우주의 나이를 떠나서 과학자들은 르메트르의 이론 자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르메트르가 과학의 반대편에 서 있는 가톨릭 신부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견 때문에 그의 이론을 증명할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빅뱅이 일어나고 너무도 많은 시간이 흘러 도무지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심지어 르메트르의 이론을 반박하며 새로운 우주이론까지 등장했다. 바로 ‘정상우주론’이다.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에 의해 세상에 나온 ‘정상우주론’은 아인슈타인이 생각한 우주론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호일은 지금의 우주가 항상 존재해 왔으며 시작도 끝도 없는 안정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또한, 우주는 늘 똑같은 밀도와 온도를 유지했다고 주장했다.
정상우주론을 주장하는 호일과 빅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빅뱅이란 말도 호일이 어느 라디오 방송국에서 비꼬면서 지어낸 말이다. 그는 방송국에서 놀리듯이 말했다.
‘우주가 어느 날 폭발하면서 만들어졌다고? 빅뱅이라고 부르면 딱 맞겠군.’
하지만 호일의 주장에도 문제가 있었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검증된 사실 때문이다. 우주가 팽창한다면 공간이 많이 생겨 밀도가 낮아지는데, 그렇게 되면 똑같은 상태의 우주로 남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답변이 궁색해진 호일은 물질이 우주에서 끊임없이 창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러시아 출신의 ‘조지 가모브’라는 물리학자의 공격을 받게 된다. 호일과 가모브의 대결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진 것이 우주를 이루는 물질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수소 원자 4개가 결합해 헬륨을 만들고, 이것이 다시 결합해 더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는데, 호일은 질소, 탄소 등 100여 개의 원소가 빅뱅이 아닌 아주 뜨거운 별의 핵융합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도 이 모든 원소를 만들게 될 수소가 어떻게 생겨났고 헬륨은 어떻게 해서 형성되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는 우주에 74%나 존재하고 있는 수소가 항상 존재해 왔던 것이라고만 했다.
하지만 가모브는 수소나 헬륨, 그 밖의 원소들이 빅뱅과 함께 창조되었고, 당시 온도는 지금 별의 내부 온도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고 주장했다.
가모브의 주장은 그의 제자인 랄프 앨퍼와 로버트 허먼이 더 체계적으로 다듬었다. 결국, 그가 예상한 우주 탄생의 시나리오가 관측 결과와 일치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마지막 결정타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가모브와 그의 제자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빅뱅이 그렇게 엄청나게 뜨거웠다면 그로 인한 충격과 열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가모브가 현재까지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빅뱅으로 생긴 방사능이나 열을 감지할 장비가 없어서 증명할 수가 없었다. 또한, 빅뱅 이론으로는 수소나 헬륨 이외의 다른 원소들의 기원에 대해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중 1960년대에 이르러 우주 나이를 계산하기 위한 허블의 정확한 수치가 밝혀져 빅뱅을 증명하기 위한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빅뱅우주론과 정상우주론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우주에서는 이들의 싸움을 끝낼 증거들을 쉬지 않고 보내고 있었지만, 그것을 확인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벨 연구소에서 일하던 로버트 윌슨과 아노 펜지어스가 빅뱅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반가운 증거를 발견했다. 우주가 처음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만들어진 오래된 증거였다.
펜지어스와 윌슨은 빅뱅이론을 연구하던 과학자는 아니었다. 그들은 위성통신을 연구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들이 사용하던 전파망원경이 하늘로 향했을 때, 규칙적인 전파잡음이 나타난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우주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소리였다.
이상한 이 잡음이 어디에서 오는지 몰랐던 그들은 혹시 지나가는 비행기의 신호가 아닌가 하여 열심히 귀를 기울였고, 비둘기의 배설물 때문이 아닌가 하고 청소도 해 보았다. 하지만 그 잡음은 여전했다. 게다가 어느 한 곳에서 오는 게 아니라 사방에서 일정하게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 잡음이 바로 빅뱅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그토록 애타게 찾던 결정적인 증거였다. 바로 ‘우주배경복사’, 즉 빅뱅으로 발생한 최초의 빛의 흔적이었던 것이다.
이 증거는 지금도 누구나 관찰할 수 있다. 여러분의 집에 있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켜고 방송이 없는 채널을 돌려 보자. 이때 나타나는 규칙적인 화면과 잡음이 바로 그것이다.
이 발견으로 우주가 폭발에 의해 생겨났다는 이론은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이 되었다. 물론 정상우주론은 더 이상 설 곳을 잃고 말았다. 1978년 펜지어스와 윌슨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았다. 프레드 호일도 손해 본 장사는 아니었다. 비록 그의 정상우주론은 폐기되었지만, 수소와 헬륨을 제외한 나머지 원소가 뜨거운 별의 핵이나 초신성의 폭발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과학계에서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고 생각할 즈음에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났다. 빅뱅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우주의 모든 곳이 똑같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하고 놀라운 것이었다. 우리가 욕조에 찬물을 받아놓고 한쪽에서 뜨거운 물을 부으면 시간이 지나야만 전체가 고른 온도가 되는데 우주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직 우주가 똑같은 온도를 이룰 만큼 나이가 많지 않음에도 실재 관측 결과를 보면 같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과학자가 혼란에 휩싸여 있을 무렵 ‘엘런 구스’라는 사람이 이것을 증명하는 이론을 들고 나왔다.
그의 이론은 빅뱅이 일어나 우주가 어떻게 성장했는가를 보여주었다. 그는 처음 우주의 시작은 작은 점이었기 때문에 고른 온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이 가장 빠른 속도라고 얘기했던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우주가 팽창했기 때문에 우주가 아주 작았을 때의 고른 온도 분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은 2001년 나사에서 쏘아 올린 WMAP위성에서 찍어 지구로 전송한 사진에서 더 명확히 밝혀졌다. 사진은 언뜻 보면 얼룩덜룩한 메추리알처럼 생겼지만, 과학자들에겐 보물지도와 같았다. 이로써 우주가 아주 빠른 속도로 팽창해 동일한 온도가 유지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제 우리는 우주로 쏘아 올린 관측위성들의 도움으로 우주의 나이를 헤아릴 수 있고,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앞으로 우주의 운명은 어떠할까를 예측할 수 있다. 바로 르메트르와 가모브, 랄프 앨퍼와 로버트 허먼, 펜지어스와 윌슨의 노력과 현대적인 관측 장비들에 의해 사실로 증명된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우주가 빅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 처음 들어보는 말도 많고, 난생 처음 듣는 이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빅뱅으로 나온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에너지뿐인데 어떻게 이것이 세상의 모든 물질을 이루는 원소라고 하는 것일까?
이제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로 들어갈 것이다. 바로 물질들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어.’라고 누군가가 말할 때, 우리는 아주 짧은 순간의 시간을 떠올린다. 우주의 탄생은 눈 깜짝할 사이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다. 그래서 우주의 시작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빅뱅 이후 극도의 짧은 순간에 있었던 일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우주의 시작인 빅뱅은 1조분의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작은 점이 우리 태양계보다 더 크고 빠르게 팽창했다고 믿고 있다. 이때 걸린 시간은 초, 분, 시와 같은 시간으로 잴 수 없는 아주 짧은 시간이다. 그래서 1초를 아주 잘게 나눈 ‘프랑크’라는 단위를 쓰고 있다.
이제 이 프랑크라는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여행할 것이다.
우선 빅뱅의 순간을 상상해 보자.
처음, 원자보다도 작았던 아주 뜨거운 둥근 공 모양의 우주가 나타나 1/11,000,000,000,000초, 다시 말해 1초를 1조만큼 나눈 시간 만에 손바닥에 올려놓을 만큼의 크기가 되었다. 이때의 우주는 에너지와 복사선으로만 가득했다.
이 손바닥 크기의 우주가 팽창하고 냉각되면서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이제 우주가 물질로 가득한 지금의 모습을 할지, 아니면 에너지만 가득한 끔찍한 우주가 될지 그 운명이 결정될 순간이다.
아직은 작은 찻잔 크기의 우주에 물질로 바뀔 준비가 되어 있는 재료들만 넘쳐 흐르고 있다. 그것은 에너지이다. 에너지는 열, 빛, 위치 등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순수한 에너지가 보고 만질 수 있는 질량을 가진 물질로 변했을까?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자. 모든 만물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우리가 앉아 있는 의자, 책상과 같은 물건이나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 물, 식물, 동물. 그리고 땅을 이루고 있는 흙이나 바위 등. 이렇듯 행성 전체가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물질은 아주 작은 원자들이 모여 형태를 이룬다.
빅뱅이 일어나고 1초 동안 원자를 이루기 위한 구성 요소가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에너지로부터 어떻게 물질이 나타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1905년 아인슈타인이 가장 유명한 방정식을 내놓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방정식은 바로 지금까지 알아본 E=mc2이다.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에서 에너지 E와 질량 m이 형태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질과 에너지는 서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변신하는 것이다.
이 글의 시작에서 이야기했지만, 과학자들은 이 방정식을 이용해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무기인 원자폭탄을 만들었다. 바로 E=mc2 공식에서 물질이 에너지로 변하는 원리를 이용해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해 질량이 사라지면 그만큼의 가공할만한 에너지가 생기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아무리 작은 질량이라도 빛의 속도, 다시 말해 초속 30만 킬로미터라는 엄청난 수를 제곱한 값의 에너지로 되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힘이다.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이 에너지의 비밀이 처음 1초 동안 일어난 사건의 단서를 제공했다. 핵폭발에서 물질이 질량을 잃으며 엄청난 양의 에너지로 변하는데, 빅뱅에서는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물질로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은 다음 결론을 이끌어낸다.
아기 우주가 팽창하며 식을 때, 빅뱅으로 생성된 에너지가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로 모습을 바꾼다는 것이다.
1초도 지나지 않은 우주에 최초의 물질을 구성할 입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 입자가 나타났다고 해서 원자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빅뱅 당시의 우주는 지금의 태양 핵보다 100만 배나 더 뜨거웠다. 에너지가 변해 만들어진 입자들이 결합해 원자를 형성할 수 없다. 너무 뜨겁기 때문이다. 이 문제로 과학자들은 또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이 초기 물질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양성자와 중성자와 전자가 되어 우주를 이룰 원자로 자랄 수 있었을까? 분명한 것은 앞에서 얘기한 대로 최초의 우주 환경에서는 원자를 생성할 수 없가는 것이다.
얼음을 펄펄 끓는 용암 속에 넣는다고 상상해 보자. 그 얼음은 즉시 녹아 기체가 되어 날아가 버릴 것이다. 적당히 따뜻하다면 얼음은 물이 되겠지만, 너무 뜨거우면 기체 상태의 수증기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체를 상상할 수조차 없는 온도로 가열하면 열 때문에 원자마저 쪼개져 버린다. 이처럼 처음 1초 동안의 우주도 너무 뜨거워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의 구성 물질로만 존재할 수 있었다. 우리가 만약 우주가 탄생한 직후로 컵을 하나 던져 넣으면 그 컵은 완전히 분해되고 심지어 원자마저도 분해될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그 환경을 직접 만들어 어떻게 원자가 만들어지는지 실험해 볼 수밖에 없었다. 원자의 탄생을 설명하지 못하면 현재의 우주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우주의 탄생을 볼 수 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아니면 마법의 도움을 받아 과거로 떠나야 하나?
다행히도 빅뱅 직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별의 내부 온도인 수천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10의 24 제곱℃까지 온도를 올려보는 것이다. 입자가속기가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 입자가속기에서는 우주 탄생 이래로 볼 수 없었던 온도까지 올라가게 된다. 탄생의 순간을 재현할 수 있는 것이다.
입자가속기에서 원자핵을 빛에 가까운 속도로 충돌시키면 엄청난 열과 함께 수많은 파편이 발생한다. 과학자들은 이 충돌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충돌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아주 작은 원자핵 하나만으로도 태초의 아기 우주를 재현할 수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 에너지는 양성자들과 중성자들을 떼어놓고도 남을 정도이다.
원자핵이 결합하는 것은 ‘강한 핵력’이라는 힘으로 붙어 있는데 이 힘은 세상 그 어떤 힘보다도 강하다. 이것을 떼어놓을 만한 힘이라는 것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다.
이 실험을 오랜 시간 분석해 과학자들은 물질의 구성 요소를 발견한다. ‘쿼크’라는 양성자보다 작은 입자이다. 이 입자를 발견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의 크기가 너무 작고, 움직임도 너무 빨라 추적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앞으로 이 쿼크의 움직임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면 아직 풀리지 않은 물질의 비밀들도 모두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발견만으로도 의학의 혁명을 가져왔고, 우주를 향한 꿈도 새로운 도약을 맞았으니 당연한 기대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그 실험으로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혀 예상 밖의 결과였다. 충돌로 태초의 우주는 가스처럼 될 줄 알았는데 그 모습이 액체 수프에 더 가까웠던 것이다.
이로써 과학자들은 우주에 물질이 처음 나타났을 때 쿼크의 밀도가 너무 높고 활동도 너무 격렬해서 우주 전체는 액체와 같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들 앞에 빅뱅 직후 우주의 모습이 다시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우주가 공 모양의 팽창하는 에너지에서 쿼크 수프로 순식간에 변한 모습이었다. 액체 상태의 우주는 뜨겁고 밀도가 높으며 격렬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부딪히며 상호작용하는 작은 입자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우주 시계가 100만 분의 1초에 도달했을 때 우주는 여전히 팽창하지만, 지나치게 뜨거웠던 온도는 서서히 내려갔다. 농구공 크기에서 태양계 크기로 커지고 순수한 에너지와 물질이 가득해졌다. 그 과정에서 물질과 반물질이란 게 동시에 나타나 서로 충돌하는 바람에 사라져버릴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반물질보다 물질이 아주 약간 많아 다행히 우주는 무사했다.
이제 우주는 태어난 지 정확히 1초가 되었다.
크기는 태양계의 약 1,000배 정도로 커졌다. 우주는 쿼크 입자 3개가 모여 양성자와 중성자를 형성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차가워져 최초의 원자핵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30만 년이 흐른 후 원자핵과 전자가 결합해 원자가 출현한다. 다시 수억 년이 지나면서 그 원자들이 서로 뭉쳐 최초의 별을 만든다. 10억 년 후 이러한 별들이 모여 은하수와 같은 은하들이 생겨났다.
이때 얼마나 많은 별이 만들어졌을까?
무려 10,000,000,000,000,000,000,000개나 되었다. 너무 길어 읽기조차 어려운 숫자다. 자그마치 1,000억 개가 1,000억 개 모인 숫자다.
우리의 태양계와 지구는 빅뱅이 일어나고 90억 년이 훨씬 지난 후 태어났다. 그동안 우주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별이 생겼다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