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가리며 즐기는 여행
낯선 도시에 여행을 가면 설레지만 동시에 어색하다. 괜히 이 도시에 동떨어진 이방인이 된 것 같다. 물론 이런 감정들이 나에게 큰 설렘과 탐색의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여행의 목적이 관광이나 체험인 경우에는 이런 낯선 설렘이 반갑다. 하지만 힐링 여행인 경우에는 내가 정말 완벽하게 푹 쉬고 온 경우가 많지 않다.
이번 애틀랜타 여행의 목적은 힐링 반, 관광 반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나는 80 정도로 모험을 하고, 20만큼의 휴식을 취한 것 같다. 왜 이런 격차가 생겼을까?
숙소가 호텔일 경우, 나에게 가장 여행스러운 임무는 조식을 먹는 것이다. 평생 동안 아침에 손도 안대는 나도 왜인지 호텔 조식은 꼭 먹어야 하는 숙제다. 그런데 이 조식 때문에 도저히 늦잠을 잘 수가 없다. 평소 관심도 없었던 조식을 위해 일어나야 하는 것이 여행이다. 아무도 나보고 먹으라고 강요한 적은 없다. 그냥 내 마음에 깊이 박힌 주문이다. 이번 애틀랜타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식은 야속하게 10시 반이면 끝이 난다. 부지런한 누군가들은 아침부터 일어나 뷔페를 먹지만, 10시 반에 겨우 도착한 나는 단품메뉴만 고를 수 있다. 아침잠 많고, 아침에 식욕도 없지만 호텔조식을 가는 이유는 호텔조식이 너무 즐겁기 때문이다. 단지 맛 때문이 아니다. 이건 하나의 경험으로 취급해야 한다. 호텔 조식은 휴식이 아니라 즐거운 모험이고 체험이다. 정말 쉬고 싶으면 조식 먹고 그날 하루종일 호텔에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2박 3일의 짧은 일정에 일반 호텔에 하루종일 있기에는 심심하다. 아무래도 조식 먹고 쉴 거면 리조트형 호텔을 가야 할 것 같다.
이번 애틀랜타 관광은 세계최대의 크기의 아쿠아리움인 "Georgia Aquarium"인 "World of Coca-Cola"였다. 이 두 개는 바로 옆 건물로 서로 딱 붙어있다. 그리고 이 두 건물 사이에 있는 큰 공터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자세하게는, 아이 들고 함께 온 가족단위로 가득하다.
호텔도 한적해서 애틀랜타 전반적으로 조용한 도시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정말 모든 종류의 가족들이 모였다. 마치 이곳만 애틀랜타 아닌 것처럼 복작거렸다. 별생각 없이 당일 티켓을 끊으려고 했는데, 이미 모든 티켓이 품절되어서 계획이 바뀌기도 했다.
처음에는 코카콜라 뮤지엄에 갔다. 우린 원래 한가롭게 코카콜라나 좀 마시다 갈 생각이었는데, 줄이 정말 엄청나게 길었다. 긴 줄을 뚫고 들어가면, 여러 개의 전시실이 있다. 그리고 각 전시실에도 엄청난 줄이 서있다. 그렇게 코카콜라 뮤지엄은 달콤한 체험에서 극악의 줄 서기를 요구하는 모험이 됐다.
그래도 코카콜라 뮤지엄은 꽤 즐거웠다. 브랜딩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전 세계 코카콜라 회사가 만드는 여러 음료도 마실 수 있다. 향을 맡는 체험도 할 수 있고, 곳곳에 다양한 인터랙티브 기기들이 많았다. 굿즈 스토어는 최고였다. 종류도 다양하고 퀄리티도 상당해서 한참 즐겁게 구경했다. 적당히 알고 싶었던 코카콜라를 긴 줄을 기다리며 간절하게 많이 알게 되었다.
셋째 날에는 아쿠아리움에 갔다. 나는 아쿠아리움을 좋아한다. 조용하고 넓은 아쿠아리움을 걸어 다니면 심해에 온 것 같기도 하고, 제각각으로 생긴 생명체를 보면서 경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코카콜라와는 비교가 안되게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정말 미국은 저출산 국가는 아닌가 보다. 걸을 때마다 내 무릎정도 키의 애기들이 뛰어다녔다. 사실 아이들이 많은 게 싫은 것이 아니다. 귀여운 아기들이 눈을 동그랗게 떠서 이리저리 구경하는 걸 보면 사랑스럽다. 그저 나도 눈 네모나게 뜨고 이리저리 구경하고 싶을 뿐이다. 이 수많은 아이들도 나중에 나처럼 어른이 되어도 아쿠아리움에도 위로받는 사람으로 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너희들처럼 아쿠아리움을 온몸으로 열정적이게 즐기고 싶단 말이야!
다행히 조지아 아쿠아리움은 정말 즐거웠다. 사람들이 많았지만, 모든 것을 찬찬히 음미할 수 있었다. 다른 아쿠아리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처음 보는 생명체들도 볼 수 있었다. 중간중간 "쟤네들도 답답하겠지? 이곳은 설비와 생명들을 잘 관리하나?"와 같은 어른의 대화를 하기도 했다. 특히 고래상어들이 있는 대형수조가 최고였다. 사람들에게 치여 조금 진이 빠진 나에게 휴식이 되었던 순간이었다.
생각보다 아쿠아리움과 코카콜라 뮤지엄에서 사람들에게 치였다. 그래서 우리는 이럴 줄 알고(?) 마지막 날에는 오로지 힐링을 위해 찜질방에 갔다. 킹스파라는 애틀랜타에서 꽤 새로 지어진 한인 찜질방이었다. 평소에 집 근처 찜질방에 가면 평온하게 푹 쉬다 올 수 있었다. 그래서 여기서도 그렇게 푹 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평온하지 못했다. 왜냐면 우리는 여행 타임라인에 민감한 J 인간들이었기 때문이다.
왜인지 공항 체크인 시간이 다가올수록, 조금 긴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 가는 찜질방은 낯설기 그지없었다. 난 또 새로운 환경에 낯가리는 고양이가 된 것 같았다. 이리저리 냄새 맡고 두리번거리다 보니 낮잠이 안 오는 것이다. 그렇게 겨우 익숙해질 즈음에는 이미 4시간 정도가 지나 그곳을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이제야 막 즐길 수 있는데! 나에게 4시간이 더 있었으면, 세신도 하고 간식도 한번 더 먹고, tv도 멍하니 볼 수 있는데! 나의 교감신경들이 조용해지고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될 무렵 아깝게 공항으로 향했다.
10대 20대에는 관광과 체험위주의 발 바쁜 여행을 다녔다. 아침부터 사원에 가고 밤늦게까지 야시장을 돌아다냐고 마냥 즐거웠다. 잠 한번 자면 다음날 회복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직장에 다니고, 30대가 되면서 푹 쉬는 여행이 점점 하고 싶어 진다. 왜 부모님들이 리조트 호텔에 가는지, 친구들이 호캉스를 가는지 알 것 같다. 그렇다고 쉬자니 모험에 익숙해진 내 몸이 가만있지를 않는다. 애틀랜타에서는 반쯤 눈뜬 길고양이였다. 언제쯤 여행 가서 낯을 그만 가리고, 온순한 집고양이처럼 푸욱 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