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앙데팡당X아트렉처/우유]
학부에서 현대미술 과목을 수강하면서 광고에 나타난 이미지도 미술사의 영역에 포함시키면 어떨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Contemporary는 ‘temporary’ 라는 특정 시기를 ‘Con’ 함께한다는 뜻이다. 동시대를 함께하는 것이 현대미술이라면, 광고 이미지도 당연히 미술사의 연구 영역에 포함되는 게 맞다. 마케팅 전문가 존 마셜은 현대인은 하루 동안 4천 번에서 1만 번까지 광고와 브랜드에 노출된 채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5년도 얘기다. 존 마셜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현대인은 다양한 형태의 광고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광고에는 이미지가 담기고, 이미지에는 소비 심리, 사회문화적 논리가 반영된다. 따라서 이 글은 회화에서 광고로 이어지는 예술 이미지 간에 혹시 먹이사슬 같은 관계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가정에서 출발했음을 밝힌다.
19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앵그르의 회화 <샘>에는 단순히 누드화를 넘어 신화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림 속 여인은 고대 그리스 조각의 느낌을 나타내기 위해 몸의 모든 치모는 제거되었고 자세는 상체와 하체가 서로 어긋나게 비틀어진 형태를 하고 있다. 또한 한쪽 발에 무게중심을 둔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취함으로써 서양 누드의 정석을 보여준다. 몸 이외의 구성을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깨에 진 물병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에서 술을 담는 항아리 ‘앙포르’인데 물이 쏟아지고 있다. ‘샘’의 사전적 의미는 ‘물이 땅에서 솟아나는 곳. 또는 그 물’ 이다. 앵그르는 ‘솟아나는 물’ 대신 ‘쏟아지는 물’을 선택함으로써 계곡의 물이 ‘샘’이 아니라 물을 쏟고 있는 여인이 바로 ‘샘’임을 암시한다.
여인이 샘이라면, 샘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물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렇다면 이 여인이 누구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상징성을 잔뜩 담은 이 여인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요정 ‘에코’로, 그녀의 오른발 옆에는 그녀가 사랑하던 나르키소스가 죽은 자리에서 다시 피어난 수선화를 발견할 수 있다. 수선화 옆을 지키는 에코와 에코로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물을 통해 나르키소스를 향한 에코의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이제 바네사 파라디가 등장하는 샤넬의 향수 광고를 보자. 인물의 포즈나 향수병을 어깨에 이고 있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앵그르의 <샘>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두 이미지의 결정적인 차이는 물과 향수가 흘러내리는 모양에 있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앵그르의 물과 달리, 광고 속 향수는 인물의 신체 굴곡을 따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흘러내린다. 이런 차이에 담겨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힌트는 광고 속 카피 문구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COCO THE SPIRIT OF CHANEL”에서 “SPIRIT”은 가벼운 영혼을 의미하는데 동시에 알코올 성분을 뜻하는 화학적 용어이기도 하다. 이때문에 향수는 종종 ‘불이 포함된 물’이라고 표현된다. 불의 타오르는 성질은 물의 자유낙하를 방해하는데, 이런 성질이 향수가 흘러내리는 모습에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순수한 물과 달리 향수는 위험하다. 지나가는 여인에게서 훅 하고 풍기는 향수 내음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앵그르를 통해 순수하고 투명한 물의 이미지를 인식하고 샤넬의 광고를 다시 보면 향수의 이미지가 더 강렬하고 매혹적으로 느껴진다.
프랑스의 명화와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브랜드의 정체성이 비슷한 이미지로 표현되는 것을 보며 예술은 어쩌면 상업과 사회로부터 멀어질 수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게 된다. 이는 광고와 회화가 일종의 먹이사슬로 이어져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광고는 회화를 재해석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회화가 있고, 광고가 나왔다. 하지만 이제는 꼭 회화가 우선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광고와 예술이라는 콘텐츠가 구체적으로 이미지화되기 전부터 언제든 융합될 수 있도록 서로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광고와 예술 사이에는 접점이 있었고, 누군가 이 경계를 허물어 하나의 사슬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서로 다른 두 분야의 접점을 찾기보다는 차이점을 찾는 것이 훨씬 빠르고 명료하다. 하지만 각자의 고유성을 유지한 채 접점을 포갰을 때 세상에 새로운 콘텐츠가 등장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독창적인 아이디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모방과 융합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회화와 광고, 나아가 예술과 산업을 바라보는 관점은 중요하다. 더 나은 삶을 향해 행동하는 인간의 본능과, 그것을 소비하며 충족시키는 문화적 방법. 이 서로 다른 영역들의 접점을 인식하고 향유하면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들을 더욱 새롭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정장진, 『광고로 읽는 미술사』, 미메시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