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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Dec 10. 2022

방구석 영화관 - 윤희에게


이혼 후 고등학생 딸 새봄과 함께  살아가는 윤희에게는 잊히지 않는 인연이 있다. 20살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의 나라 일본으로 간 쥰. 아직도 당신 꿈을 꾼다며  윤희에게 편지를 보내온다. 딸 새봄이 윤희에게 온 편지를 발견하고 몰래 읽게 되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고졸 여성으로 식품  공장에서 일하는 윤희는 팍팍한 일상도, 술만 마시면 자신의 집 앞에 찾아오는 전남편도 모두 힘들기만 하다. 

새봄은  궁금하다. 엄마는 왜 아빠와 헤어졌을까? 어딘가 슬프고 항상 멀리 있는 것만 같은 엄마의 삶은 어땠을까? 속내를 읽었는지 윤희는  딸의 요청대로 일본으로 간다. 엄마와 일본으로 향한 새봄은 대학 진학 계획도 없고 부유하기만 한 철없는 남자 친구 경수를 몰래  데려와 아침이면 경수의 숙소에서 만나, 엄마에게 편지를 보낸 쥰의 주소를 추적한다. 내내 쥰을 그리워했던 윤희도 쥰의 근처를  서성이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고 결국 딸의 계획으로 여행 마지막 날 둘은 마침내 서로를 만난다. 

윤희에게는 두 여성의  성장담으로 보인다. 영화는 내내 두 가지 관계의 양상을 다루는데 하나는 연인과의 관계이고 다른 것은 모녀 간의 감정이다. 동성  연인을 만났다는 이유로 강제로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한 어머니 때문에 억지로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윤희는 여전히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 나머지 취한 밤 찾아오는 전남편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한편으로 딸 새봄은 서울 대학 진학을 앞두고 두 가지 과제에 직면해  있다. 영화 초반, 새봄은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빠랑 엄마랑 이혼했을 때, 내가 왜 엄마랑 산다고 했게? 엄마가 아빠보다 더 외로워 보였어. 혼자서 잘 못 살 것 같더라고 근데 다 내 착각이었네, 난 엄마한테 그냥 짐이었던 것 같애.” 

새봄은  자신만을 삶의 이유라고 말하는 엄마가 걱정되고 반대로 어쩐지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엄마라는 존재에 애타게 닿고 싶다. 남자친구  경수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인서울 대학 진학에 관심이 없고, 앞으로의 삶에 계획도 없는 남자친구와의 관계는 부담과 걱정으로  머뭇거리게 한다. 

모녀의 여행으로 두 사람의 과제가 해결되는데 그 과정이 아주 아름답다. 윤희는 새봄의 행동 덕분에  과거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고, 한국에 돌아오자 듣게 된 전남편의 재혼 소식에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새봄은 마침내 엄마의 삶에 다가갈 수 있었고 다시 삶을 살아가려는 엄마의 모습을 확인하며 안도하고 자신의 삶을 찾아갈 수  있게 된다. 앞으로의 관계를 확신할 수 없던 남자친구와도 일본 여행에서만큼은 마음 놓고 사랑을 표현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 사진이 중요한 기능을 하는데, 사진은 과거의 한 장면을 박제하여 추억하거나 벗어날 수 없는 고정된 진실로 만들기도 하지만  과거와 삶에 마침표를 찍고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순간을 상징하기도 한다. 새봄의 졸업식과 엄마의 취업 도전에서의 사진은  전과는 달리 추억의 용도가 아닌 산뜻한 출발을 알리는 도구다. 윤희에게는 사랑의 완성과 해방을 꿈꾸지 않고 여성과 여성 또  엄마와 딸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며 둘의 성장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윤희에게는 완전한 여성 서사 영화다. 

윤희와  쥰의 만남을 앞두고 달의 상징성을 부각하거나, 쥰의 편지로 영화를 열고 윤희의 답신으로 영화를 닫는 구조를 보면 모녀 그리고  윤희와 쥰의 일본 여행이 달의 고요, 여성성, 영성과 조응해 시간들을 꿈결같이 느껴지게 하는 것 같다. 그 꿈결이 세 여성 배우의  아름다운 나레이션으로 완성됐다. 

마지막 나레이션은 영화를 본 누구에게나 한 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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